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극P러 Aug 29. 2024

도파민 디톡스

애증의 친구

  제목을 '도파민 디톡스'라고 적었지만, 사실 도파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도파민은 인간의 성취 및 보상회로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작용을 한다.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조현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뇌 속 전두엽에서 도파민이 제 기능을 못 하면 ADHD가, 뇌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되면 파킨슨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도파민에 관심이 많다. 도파민의 여러 역할 오늘은 '보상회로', 그리고 '중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배달 어플 삭제 프로젝트를 선언한 지 10일 정도가 지났다. 배달 어플과의 단절 10일째, 어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이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배달음식 주문은 나에게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다. '쇼핑 중독', '인터넷 중독' 등처럼, '주문하는 행위' 그 자체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중독은 도파민의 보상체계와 관련이 있다.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을수록(그러니까, 빠르고 쉽게 도파민을 분출시킬수록), 도파민의 분비량이 많을수록 중독이 잘 된다. 배달 어플 주문의 경우, 버튼 한 번 누르면 바깥 음식이 배달되고(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음), 집에 있는 음식을 꺼내먹는 것보다 훨씬 자극이 세므로(쇼핑하듯이 다양한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고, 주문 한 번에 새로운 음식(새로운 자극)이 배달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파민 분비량 ↑) 중독이 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을 때에도 충동적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배달 주문을 누르곤 했고, 음식을 받기도 전에, 그러니까 주문을 누르자마자 이미 그 욕구가 해결되어 후회를 하는 일도 잦았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인간의 삶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하셨다. 옛날 수렵·채집하던 시절에, '비만'이라는 게 있었겠냐라는 거다. 그것도 그렇다. 모든 것을 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것에 중독되지 않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난 안 그래도 특정 자극에 대해 감탄을 잘하고, 감정을 깊게 느끼는 편이라, 무언가에 중독이 잘 되는 성향이다. 한 번 무언가에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고 계속한다. 예전에 영화 하나에 빠지면 한 장면만 100번 넘게 돌려보는 일이 흔했다. 라이온킹에 중독되었을 땐 '하쿠나마타타' 넘버만 그렇게 봐서 모든 가사를 외워버렸다. 또 집에 혼자 있을 땐 다른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마치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처럼(필자는 비흡연자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 영상을 멈추지 못하고 붙잡고 있곤 했다. 그럴 땐 마치 내가 실험 케이지 안에 갇힌 쥐가 된 느낌이었다. 쥐의 쾌감중추에 전극을 연결했을 때, 쥐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그 스위치를 쉴 새 없이 눌러댔던 그 실험 속 쥐 말이다.


  배달 어플 삭제 후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니,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이나 폭식이 줄어들긴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빠르게, 폭발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는 것들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피아노 연주이다. 악기 연주는 내가 1시간 이상 연속으로 집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 중 하나인데, 첫 번째 레슨 때 초견을 한 이후 거의 매일 연습을 해서 오늘 두 번째 레슨 날, 선생님이 놀라시는 모습으로 칭찬도 해주셨다(뿌듯). 악기 연주도 나에겐 중독의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중독과는 조금 다르다. 내 몸의 감각으로 음악을 직접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음악을 섬세하게 느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통해 빠르게 얻는 쾌락이 아닌 조금 느리고 노력이 들어가더라도 '창조'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순수한 기쁨이다.


  하루에 짧은 시간 집안일을 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려고 한다. 어젠 설거지를 하면서 어린 시절 했던 '엄마 놀이'를 하는 상상을 나도 모르게 했다. 그래. 어렸을 땐 '숏폼'이니, '인스타', ' 유튜브' 이런 것들이 없었어서 온갖 상상의 나래로 매 순간을 채워가던 나였었는데. 그리고 씻고나서 머리를 빗는 시간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긴 머리를 빗는 그 짧은 순간도 너무나 재미없고 지겨워서 아이패드를 붙잡고 유튜브를 보면서 했었는데, 이제는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서, 부드럽고 귀여운 고양이 러그 위에 발을 올려두고 동그란 마사지볼을 이용해 발 마사지를 한다. 발을 통해 온몸까지 퍼지는 듯한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 뚱냥이 미니러그와 발마사지볼, 나만의 힐링 공간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다. 요즘엔 누군가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데에서 도파민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정신을 직접 움직여 창조해 내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창조(창작) 활동'은 소비와 비교해 보면 더 어렵다. 도파민을 빠르고 쉽게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거쳐 무언가를 창조해 냈을 때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 기세를 몰아 더 창의적인 활동에 계속 도전해보고 있다. '애증의 도파민', 이 친구를 잘 다스리고 이용해 볼 방법을 고민해 보는 요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