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도파민 디톡스'라고 적었지만, 사실 도파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도파민은 인간의 성취 및 보상회로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작용을 한다.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조현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뇌 속 전두엽에서 도파민이 제 기능을 못 하면 ADHD가, 뇌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되면 파킨슨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우리 몸속에존재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 도파민에 관심이 많다. 도파민의 여러 역할 중 오늘은 '보상회로', 그리고 '중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배달 어플 삭제 프로젝트를 선언한 지 10일 정도가 지났다. 배달 어플과의 단절 10일째, 어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이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배달음식 주문은 나에게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다. '쇼핑 중독', '인터넷 중독' 등처럼, '주문하는 행위' 그 자체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중독은 도파민의 보상체계와 관련이 있다.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을수록(그러니까, 빠르고 쉽게 도파민을 분출시킬수록), 도파민의 분비량이 많을수록 중독이 잘 된다. 배달 어플 주문의 경우, 버튼 한 번 누르면 바깥 음식이 배달되고(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음), 집에 있는 음식을 꺼내먹는 것보다 훨씬 자극이 세므로(쇼핑하듯이 다양한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고, 주문 한 번에 새로운 음식(새로운 자극)이 배달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파민 분비량 ↑) 중독이 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을 때에도 충동적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배달 주문을 누르곤 했고, 음식을 받기도 전에, 그러니까 주문을 누르자마자 이미 그 욕구가 해결되어 후회를 하는 일도 잦았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인간의 삶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하셨다. 옛날 수렵·채집하던 시절에, '비만'이라는 게 있었겠냐라는 거다. 그것도 그렇다. 모든 것을 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것에 중독되지 않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난 안 그래도 특정 자극에 대해 감탄을 잘하고, 감정을 깊게 느끼는 편이라, 무언가에 중독이 잘 되는 성향이다. 한 번 무언가에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하고 계속한다. 예전에 영화 하나에 빠지면 한 장면만 100번 넘게 돌려보는 일이 흔했다. 라이온킹에 중독되었을 땐 '하쿠나마타타' 넘버만 그렇게 봐서 모든 가사를 외워버렸다. 또 집에 혼자 있을 땐 다른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마치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처럼(필자는 비흡연자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 영상을 멈추지 못하고 붙잡고 있곤 했다. 그럴 땐 마치 내가 실험 케이지 안에 갇힌 쥐가 된 느낌이었다. 쥐의 쾌감중추에 전극을 연결했을 때, 쥐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그 스위치를 쉴 새 없이 눌러댔던 그 실험 속 쥐 말이다.
배달 어플 삭제 후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니,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이나 폭식이 줄어들긴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빠르게, 폭발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는 것들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피아노 연주이다. 악기 연주는 내가 1시간 이상 연속으로 집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활동 중 하나인데, 첫 번째 레슨 때 초견을 한 이후 거의 매일 연습을 해서 오늘 두 번째 레슨 날, 선생님이 놀라시는 모습으로 칭찬도 해주셨다(뿌듯). 악기 연주도 나에겐 중독의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중독과는 조금 다르다. 내 몸의 감각으로 음악을 직접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음악을 섬세하게 느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통해 빠르게 얻는 쾌락이 아닌 조금 느리고 노력이 들어가더라도 '창조'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순수한 기쁨이다.
하루에 짧은 시간 집안일을 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려고 한다. 어젠 설거지를 하면서 어린 시절 했던 '엄마 놀이'를 하는 상상을 나도 모르게 했다. 그래. 어렸을 땐 '숏폼'이니, '인스타', ' 유튜브' 이런 것들이 없었어서 온갖 상상의 나래로 매 순간을 채워가던 나였었는데. 그리고 씻고나서 머리를 빗는 시간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긴 머리를 빗는 그 짧은 순간도 너무나 재미없고 지겨워서 아이패드를 붙잡고 유튜브를 보면서 했었는데, 이제는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서, 부드럽고 귀여운 고양이 러그 위에 발을 올려두고 동그란 마사지볼을 이용해 발 마사지를 한다. 발을 통해 온몸까지 퍼지는 듯한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 뚱냥이 미니러그와 발마사지볼, 나만의 힐링 공간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다. 요즘엔 누군가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데에서 도파민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정신을 직접 움직여 창조해 내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창조(창작) 활동'은 소비와 비교해 보면 더 어렵다. 도파민을 빠르고 쉽게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거쳐 무언가를 창조해 냈을 때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 기세를 몰아 더 창의적인 활동에 계속 도전해보고 있다. '애증의 도파민', 이 친구를 잘 다스리고 이용해 볼 방법을 고민해 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