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하나의 거절을 했다. 바로 약속 거절이다. 무려 당일 거절이었다. 찜찜한 마음과 걱정도 분명 들었지만, 지르고 나니 시원함과 승리감이 더 컸다. 왜 이 관계를 계속 지속해 왔을까? 진작 잘랐으면 며칠 간 이런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나 어찌 됐든 결국 난 해냈다.
나는 개인주의자이다. 그리고 1순위로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자유’이다. 조금이라도 구속 받고, 자유를 제한 받는 느낌이 들면 견디질 못 하겠다. 나와 성향이 다른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 ADHD를 의심하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더라고요.’와 같은 말을 해주기도 하였다.
괴로워서 약도 처방 받아 며칠간 먹어봤다. 부작용 때문에 중단했고,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 결국 지금 생각하는 ‘생긴대로 살자’의 방향으로 갈 수 밖에. 난 예민하다.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잘 받는 타입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외부의 방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다. 기분 나쁜 일을 겪거나 감정이 좋지 않을 땐,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오늘 가기로 한 약속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바로, ‘시간낭비처럼 느껴져서’였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목표로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와 결이 별로 맞지 않는 이들과 만나면서 억지로 재미있는 척을 하면서 억지 웃음을 짓고, 또 침묵을 견디지 못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내 이야기를 꺼내면서 집에 오는 길에 후회와 비참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말이다. 그 친구들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지금 내가 유일하게, 또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 바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건 이것이다.
이렇게 원하는 바가 확실하면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해봤다. 첫 번째는, ‘미움과 비난을 받기 싫어서’였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내가, 많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 두 번째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같은 업계에 있으므로 언젠가는 마주칠 가능성, 겹지인이 있을 가능성, 또 인맥을 통해 뭔가 모를 도움을 받을 가능성, 그리고 그 친구들을 내가 싫어하는 게 아니고, 추억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었으므로 언젠가 내가 다시 그 친구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 질 수도 있다는, 그래서 오늘의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그러나 갖고 싶은 모든 것을 취할 수는 없는 법.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아직은 두렵긴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바로 자유를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책임과 용기라는 것 또한 말이다. 선택이 필요하다. 내가 내린 선택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더 좋은 것을 받아들일 가능성’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그럭저럭 좋은 것들에 빠져 위대한 것을 놓치지 마라(If you’re not feeling “hell yeah!” then say no)’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대다수 사람은 그럭저럭한 것이 가득한 삶을 산다고 한다. 진심으로 끌리지 않을 때도 ‘예스’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바빠서 정작 기회가 찾아왔을 때 반응할 수가 없다고 한다. 즉, 그럭저럭한 것들로 바빠(바쁜 이유가 그래서였다니..! 놀랍다) 위대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Hell yeah!”로 느껴지는 것, 즉 “그건 당연히 예스지! 너무 끝내주는 기회야!”라고 느껴지지 않는 일에는 무조건 ‘No’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Hell yeah!”로 느껴지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위해, 그 이외의 것은 놓아주자. 내게 영감을 주지 못하고,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는 시간 및 관계를 정리하고 공간을 만들자. 기존의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새로운 가능성을 원한다면 그 가능성들이 들어올 빈 자리를 만들자. 난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자유로운 이기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율리엔 바크하우스의 저서 ‘자유로운 이기주의자’에 따르면,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를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하나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모든 일은 일종의 자기 학대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은 ‘자유와 솔직함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맞아, 이제 거절을 통해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해서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데 씀으로써 내가 더 원하는 것, 나와 더 어울리는 것을 탐구해 나가야지(그런 삶의 시작으로서, 지금도 약속에 나가 있을 시간에 이 글을 적고 있다). 나 이젠 그렇게 살래! 그러기로 결정했다.
+ 마지막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가사라 들을 때마다 쾌감을 느끼는 노래가사의 일부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