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P, 자극추구형 인간. 그러나 예민하고 위험회피성향도 높아, 늘 딜레마에 시달리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고 받아들인 내 모습이다. 새로운 자극을 늘 원하지만, 바보 같아 보일까 봐, 실패할까 봐 등 두려움이 많아 위험회피적 선택을 해왔다.
결과는? 우울증이었다.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러웠다. 내가 삶을 사는 건지, 내가 삶이라는 굴레에 갇힌 건지, 이미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었다. 어떤 느낌이었냐고 묻는다면, 길고 지루한 강의 시간이 내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긴 강의 시간을 유독 힘들어했다. 집중을 못 하고 핸드폰을 수시로 쳐다보거나, 의미 없는 낙서를 끄적이고는 했다. 강의 시간이 길어지면 실제로 숨이 막혀오는 느낌까지 들었다. 고통스러워서 원망하는 마음으로 죄 없는 교수님을 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이런 느낌이었었다. 살아 숨 쉬는 1분 1초가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또다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우울증은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으니까,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두려워서 남들의 말을 듣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랑 맞지 않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젠 내가 하나하나 직접 찍어 먹어보며, 판단하고 나아가야 했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약 9개월이 지났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엄청난 성취와 목표를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누군가에겐 거북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9개월 동안 늘 상승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up down을 반복하면서 점차 올라왔다.
9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및 통제권을 더 갖게 되었다. 예전에 쓰레기장 같던 방이 이제는 사람 사는 곳 같이 나름 쾌적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실천하는 능력을 좀 더 길렀다. 막연히 너무 크게만 느껴져서 부담 갖고 미루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작더라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글쓰기도, 운동과 청소도 매일매일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정말 누워서 '유튜브만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먹는 것'밖엔 할 수가 없던 나였다. 침대 밖을 벗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었고, 하루 종일 보는 영상조차도 긴 영상은 힘들었다. 여전히 영상은 많이 보지만, 이젠 긴 영상인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물론 엄청 쪼개서 보긴 한다..ㅎ).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도 많이 좋아졌음을 실감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인드' 및 '멘탈'의 변화이다. 나는 이제 타협하지 않는다. 새로 산 발레바에 새길 각인 문구를 고민하던 중, 정말 마음에 드는 라틴어 문장을 발견했다.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
'Desidero ergo sum(데지데로 에르고 숨).'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욕망, 감정은 인간이 지닌 에너지이다. 삶의 동기 부여 및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 순수한 에너지로 움직일 때 가장 자신의 잠재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늘 해오던 생각을 대변해 주는 말처럼 느껴져 무릎을 쳤다! 몇몇 친구들에게 말로도 내뱉어 봤는데, 아무도 진정하게 이해해 준 적이 없었던 생각이다. 그건 바로, "나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이다.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은, 욕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나만의 욕망이 기반이 된 삶을 살지 않으면, 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과도 같다.
"나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말을 좀 더 부연 설명해 보자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살 수 있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나로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직 나이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이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 이런 생각이 자의식 과잉으로 가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고, 모든 면에서 저런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하나 이상의 돌파구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또 우울증행일 것이다.
그럼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갖춰야 할, 또는 바꿔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미래를 예측하려 하고', 'risk를 최대한 피하려 하는 것'이었다. 난 이게 효율적인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해왔었던 건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족쇄와도 같은 태도였다. 저런 태도로 하니까 나는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계속 멈춰있었고, 그 고인 물 같은 삶 속에서 나는 질식해 갔다.
심지어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와 맞는 방식도 아니었다. MBTI 유형에서 극 P인간인 나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으며,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대로 지키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똑같은 일도 즉흥적으로 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계획을 세운 순간 바로 '노잼'이 되어버려 거부감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나와 맞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탐험가" 혹은 "모험가" 방식이었다. 탐험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탐험가의 미래는 '해봐야 안다'이다. 해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탐험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청난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괴물을 마주칠 수도 있다. 즉, risk가 있다. 그러나 장점은, 과정 하나하나에서 수많은 갈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방식에 흥미와 흥분을 느낀다.
이전에 읽은 『시작의 기술(개리비숍 지음)』이라는 책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성공은 늘 불확실성 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감히 꿈을 꾸고, 감히 위험을 감수하라. 일상의 루틴을 흔들어라
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안전지대 자체를 완전히 날려버리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결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행동하라'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지난 9개월 동안 이런 자세로 도전했던 일은 다음과 같다. 이전의 나와 비교해서 말해 볼 것이다. 첫 번째, 새로운 파트타임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원래는 처음부터 완벽히 잘 맞는 곳을 골라서 오래 일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지원할 곳을 고민하다가 시간만 보냈었다. 또, 처음 일하는 곳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두려워 '완벽히 공부하고 지원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미뤘다. 결과는? 공부도 안 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꿨다. 일단 어디든 '2개월 일하고 판단해야지', '안 맞으면 그만둘 거야'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그러니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괜찮은 곳을 만났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많은 걸 배웠으며, 7개월 이상 근무 중이다.
또 두 번째는, '프로필 사진 촬영'에 도전한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시행했고, 많은 insight를 얻었다. 이것에 대해선 나중에 더 자세히 적어보려고 한다.
세 번째는, '거절하기'였다. 무리할 정도로 거절을 했다. 무엇을? 인간관계, 약속, 만남을 말이다. '현재는 불편하고 그 자리가 즐겁지 않지만, 미래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관계를 유지하자'라는 생각을 버렸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며, 나는 그 불확실성 속에서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과감하게, 애매하고 즐거움 보단 시간 낭비의 감정을 더 크게 느끼는 관계들을 정리했다. 네 번째로는, '작사가'라는 믿기 어려운 꿈을 가지고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앞으로의 나는 더 적극적인 탐험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멈추고, 일단 찍어 먹어 볼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해보지 않은 것들에 계속해서 도전해 볼 생각이다. 물론, 모두 내가 욕망하는,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한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여러 인사이트들과 가능성들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그 과정을 앞으로 같이 느껴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