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약대를 입학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지만, 그땐 내가 돈을 벌어 쓰는 상태가 아니었어서 방 인테리어를 한다고 할 게 딱히 없었다. 그냥 생활에 필요한 것들만 놓아두기 급급했었고, 정리 상태도 늘 엉망이었다. 1년 반 전부터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하긴 했다. 드디어 월세나 생활비 전부를 내가 부담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나한테는 인테리어를 생각할 수 있는 여력이나, 능력이 없었다.
이전 세입자가 두고 간 책상, 의자 등을 버리기 아까워서 1년 이상이나 그냥 놓아두었고, 그래서 공간 활용이 효율적으로 잘 되지 않았음은 물론, 뭔가 내 공간인데 '나 친화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랐고, 설상가상으로 방도 늘 엉망이어서 정리 그 이상을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약을 먹기 시작하고, 방 정리를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되자, 다음 단계로 내 공간을 본격적으로 탈바꿈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서 볼 수 있는 예쁜 인테리어는 아직 내가 욕심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내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나 친화적'인 공간이었다. 내가 들어와서 쉬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글 쓰기 등의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어야 하고(즉, 일이나 공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해주는 공간이어야 했다), 내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공간이 되어야 했다.
그동안 아까워서 쓰지도 않으면서 멀쩡하다고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수납장, 책상, 의자 등을 모두 새로 구매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공간은 내 생각보다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간을 바꾸니까, 능률이 올라갔다. 마음도 훨씬 더 안정됐으며, 예전에 하기 싫다고 여겼던 집안일들이나 홈트도 비교적 잘 해내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의 취향만을 반영한, 오로지 나를 위한, 즉 나 친화적인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노력들을, 이제 나는 비교적 꾸준히 잘해나가고 있다. 마치 텃밭을 정성스럽게 가꾸듯 말이다.
내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새로 장만한 것들 중에서 단연코 내 '최애템'은, 바로 "트롤리"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보기만 해도 흐뭇하면서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가구였다. 트롤리는 여러 층의 선반을 가지고 있는 이동식 수레이다. 예전부터 트롤리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직접 구매해서 사용하게 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미용실에서나 볼 수 있는 트롤리를 나는 내 방 한가운데에, 또는 구석에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이동시키며 사용하고 있다.
트롤리가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끌고 다닐 수 있어 효율적이다. 트롤리에 놓는 물건들을 고정된 수납장에 놓는다면, 그 위치까지 가기가 너무 귀찮을 것이다. 그런데 트롤리는 손을 뻗어서, 내 쪽으로 끌고 오면 된다. 귀찮음이 많은 나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두 번째, 자주 쓰는 물건들을 나와 가까이 둘 수 있다. 가위나 리모컨 등 자주 쓰는 물건들을 사용하고 나서 예전에는 그냥 책상이나 침대, 아무 곳에나 두고 찾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트롤리 옆 수납함에 쏙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 긴 충전기들도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인데, 충전이 끝나면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다시 꺼내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멀티탭에 꽂아두자니, 안 그래도 좁은 바닥이 더 정신없어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트롤리 옆 판 고리에 걸기만 하면 되니, 저절로 정리를 하게 되어 너무 좋다. 세 번째는 바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책, 물건들을 내 의식의 흐름에 따라 놓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밑에서 다시 이야기해 볼 것이다.
내 트롤리. 맨 위 칸은 영양제, 옆 선반엔 영감을 주는 책을 두었다. 고리에 걸린 건 충전기이다. 맨 밑 칸은 마음대로 어지럽히는 공간이다.
트롤리를 들여놓은 이후로 정리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내가 나름대로 정리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니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맞는 삶을 찾는 것"의 중요성이었다. 나에게 맞는 물건을 찾고 활용한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삶이 달라지는데, 삶 자체를 나에게 맞는 형태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까.
그리고 트롤리를 통해 내가 그동안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오해는 주로 엄마가 나에 대해 한 말과 관련이 깊었다. 엄마는 늘, "ㅇㅇ이는 정리를 너무 못 해", "ㅇㅇ이 방만 들어가면 어지러워. 머리가 너무 아파"라는 말을 하시곤 했었다. 물론 지난 내 모습을 생가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정리를 못 하는, 싫어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자신에게 맞는, 적합한 도구(방식)'를 찾기만 하면 그런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동안 내 방식이 마냥 잘못된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책상에 책 한 권만 펼쳐놓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을 겹쳐서 펼쳐놓고 공부했었는데, "정신없고 지저분하니까 한 권씩만 꺼내놓으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참조해 가면서 공부해 가는 공부 방식 때문이었다. 또 읽던 책들을 제자리에 꽂아두지 않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길 원했다. 책장에 책을 꽂아두면, 그 연결고리가 끊기는 느낌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장소, 나와 좀 더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책이 놓여있음으로써 나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기 원했다. 그런데 "봤던 책은 제발 다시 꽂아놓아라"라는 잔소리를 숱하게 듣곤 했었다. 원래는 이런 나의 고집을 꺾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타협점을 찾지도 못한 채 그냥 살고 있었다. 내 방식의 단점은 바로 '어지럽혀진 방'이었다. 이것을 해결해 준 것이 트롤리였다. 트롤리 옆 선반에 꽂아두면 되었다. 이러니 어떻게 트롤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도 이와 같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말에 의해 섣불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되어야 할 것은 '나에 대해 제대로 알기'이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다양한 경험, 시도 및 시행착오는 필수이다. 주저하지 말자. 남들이 하는 방법, 성공 노하우, 맞다고 하는 길을 무조건 쫓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길 및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내가 주체적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관찰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너 도대체 왜 그래?'라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할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주어야 한다. 그럼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남들이 아니라고, 별로라고 하는 길이 자신에겐 효율적이고 잘 맞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그게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타인이 나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에 나의 정체성을 내맡겨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트롤리를 내 삶에 활용하기 전 까지는 내가 정리에도 최악이고, 내 방은 영원히 깨끗해질 수 없을 줄 알았다. 트롤리를 사고 난 이후에 내가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정리를 잘하진 않지만 정리에 대한 의지가 있고 적합한 도구만 찾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 그동안 나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이유 말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게 영감을 주는 책이 내 근처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땐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트롤리에 꽂힌 책을 볼 때마다 내가 행복한 걸 보면, 이게 적어도 나 자신에겐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삶의 형태(영감을 주는 것을 곁에 두고, 이를 이용한 창작 활동 하기)를 통해 삶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트롤리의 마지막 장점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트롤리는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재밌다. 흔한 가구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이다. 일상적인 공간의 '비일상적'인 느낌. 바로 내가 원하는 그것이다. 방 안에서 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난 이런 느낌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젠 내 인생도 그렇게 디자인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