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여러 번 짜릿한 순간들이 있었다. 어젠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었는데, 목요일쯤 되니 몸도 너무 피곤하고 갑자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오면서 우울했었다. 그래서 점심때 약간 폭식을 했다(심각한 정도로는 아니고, 더부룩한데 계속 먹은 정도). 그러고선 잠에 빠져들었다.
1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어느새 시계는 3시 반(피아노 레슨 4시)을 나타내고 있었고 허겁지겁 준비한 뒤 피아노 학원으로 뛰어갔다.
자다 와서 아직 뇌가 덜 깬 상태였다. 그런데 그 비몽사몽 한 듯한 뇌가 그 순간 도움이 되더라. 긴장을 할 정신이 아직 안 돌아와서, 선생님 앞에서 연주할 때도 평소 내가 혼자 연습했던 것과 같이 집중할 수 있었다. 원래는 긴장하고 떨어서 혼자 연습 때보다 잘 안 되는데! 긴장의 스위치가 꺼지니 너무 편안했다.
이번엔 정말 더 열심히 연습했었다. 완성됐다고 생각했던 왼손 리듬이 아직 덜 됐다는 피드백을 받고서 말이다. 지난번엔 50% 정도 완성됐다는 말을 듣고 조금 좌절했었다. 이번에는 과연?
선생님의 피드백은 어땠을까?
"98% 완성됐네요!"
"정말요??!?"
1차 짜릿함. 게다가 연주를 빠른 속도로 몇 번 더 하니 이젠 100%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12월에 연주할 수 있겠는데요?"
내가 방금 들은 말, 이거 제대로 들은 거 맞지? 2차 짜릿함. 그동안 힘들었어서 그런지 그 말을 들은 그 순간이 더 벅차게 느껴졌다.
사실 즉흥환상곡을 배우고 연습을 하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었다. 12월에 학원에서 연주회를 하는데 원래 연주하려고 계획했던 베토벤의 비창이 아닌, '즉흥환상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해보곤 했었다. 근데 적당히만 상상하고 이내 멈추곤 했었다.
사실 상상, 공상은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취미(?)이다. 그런데 이 상상,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 상상에 너무 깊게 빠져드는 건 종종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긍정적인 상상, 부정적인 상상 둘 다 마찬가지로 말이다.
긍정적인 상상을 할 땐 행복하다. 거기에 깊게 몰입한다. 그런데 그 달콤함을 즐기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고통이 찾아온다. 어쨌거나 상상이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된다. '그걸 이룬 순간을 상상해 보면 너무 행복해. 그런데, 혹시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지?'
부정적인 상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 글쎄... 이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부정적인 상상은 걱정을 불러일으켜 쓸데없이 긴장도와 스트레스를 높이기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상상이 아예 나쁘다거나,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상상은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내 기분을 당장 좋게 만들어주고, 희망을 주며 목표를 갖게 만든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그려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또, 하지 말라고 해서 아예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어쨌든 상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되, 너무 몰입하지 말고 잠깐으로 그칠 것. 그러고 나서 그 상상이 이뤄지기 위한 방향으로 실제로 행동 또는 도전할 것. 그 이후 계속해서 덤덤히 노력할 것. 그다음에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는?
We'll see!
약간은 방관자 같은 태도를 취하는 거다. 기대하거나 열망하는 태도 말고, '어떻게 되나 한번 지켜볼까?'라는 태도 말이다. 미드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를 차용하면, "We'll see...(두고 보자, 지켜보자, 지켜보면 알겠지)"이다.
그러다 보면, 내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정말 달콤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이 꼭 온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내가 상상했던 그 순간과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