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이 못난 세상에 흔들릴 때
나는 뉴스나 신문보다는 차라리 책을 읽는 사람이다. 종종 내 멘탈이 상당히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약간은 의식적으로 비극적이거나 자극적인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또 나는 미래보다는 하루하루 다가오는 현실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예상한, 혹은 밀어붙이겠다고 다짐했던 미래의 청사진에 배신당한 경험이 많아서 그렇다. 솔직히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도 진이 빠진다. 통근 시간을 빼놓고도 9시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직장인이라면 다 공감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일상을 그런대로 잘 채워가면 나중에 분명 좋은 자산이 될 거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지내도 이런저런 외부 요인으로 몸과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사람 한숨 나오게 하는 누군가의 끝없고 불성실한 행태라든가 뿌리 뽑히지 않는 혐오, 범죄, 온갖 정치사회적 무능과 탐욕이 얽힌 뉴스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 기후 위기… 세상을 미워하고 비관해야 할 이유가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아예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를 부제로 내걸고 있는 책인 <팩트풀니스>를 최근에 읽었는데도 찐득찐득한 좌절감이 느껴진다.
솔직히 이럴 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것들은 대개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다. 내가 갑자기 권력자가 될 수도 없고, 전쟁을 끝내거나 세상 사람들의 사고를 뜯어고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이산화탄소와 쓰레기를 증발시키는 초능력은 더더욱 없다. 후원금과 기부금을 내면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조차 너무 피상적으로 다가와 어쩔 줄 모를 때가 있다.
그러면 결국 이런 물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계속 나의 일상을 고수하고 있어도 되는가? 미래적이고 거시적인 고민에 짓눌리며 사는 게 차라리 당연한 걸까? 세상이 멸망하고 있을 때 나는 언제까지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걸까?
안타까운, 혹은 다행인 것은 저런 회의감과는 상관없이 핸드폰 액정 위에 떠오르는 요일과 날짜는 계속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주말이 아닌 이상 출근은 해야 하고, 잠을 설치거나 무력하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결국 내일의 내가 그 여파를 떠안게 된다. 미리 취소해두지 않은 이상 예약되어 있는 필라테스 수업도 가야 한다(그냥 빠졌다간 6만 원이나 손해 보는 셈이니까!). 입맛이 없다고 아무거나 대충 먹으면 내가 배고파진다. 한 마디로 나를 둘러싼 모든 시공간과 나의 존재 그 자체가 속된 말로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라고 외치는 셈이다.
정치적 대리인, 법적 대리인을 세울 수 있듯이 존재적 대리인을 임명할 수 없는 한, 어쩌면 당장 머리 위로 불덩이가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 내가 나에게 계속 사과나무를 심으라고 독촉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허겁지겁 일어나 필라테스를 하고 눈물을 쪽 뺀 다음 출근하여 단백질바를 씹고 짬이 날 때 현재 수강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과제를 손봤다. ‘오운완’이 아니라 ‘오일완(오늘의 일상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