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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Mar 16. 2023

7박 9일 이탈리아 여행 후기 (2)

  3일차: 오르비에토, 피렌체


  3일차부터는 중간중간에 소도시와 작은 마을들이 일정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오르비에토는 꼭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볼 법한 아주 가파른 트램을 탄 뒤에 버스까지 타야 진입할 수 있는 아담하고 분위기 있는 마을이었다. 이런 곳은 확실히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서 조용하게 돌아다니기 좋다. 


오르비에토


  앞에서 가파른 높이의 트램을 타고 올라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 정도로 꽤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도 어마어마하게 큰 성당이 있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참 많이 만나게 되는 '두오모'다. 그 대성당을 중심으로 여러 골목길이 뻗어 있는데 분위기와 외관이 훌륭하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의 도시 미관은 형편없고 지평선이 너무나 답답하다. 이탈리아에 있으면서 하늘이 나에게 친절하게 보일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다는 기분을 많이 느꼈더랜다.


  그리고 피렌체로 이동했는데, 일정표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달리 자유시간을 너무 조금 주었고 약간 비바람이 쳤다. 단테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을 잠시 지났는데 꽤 검소하다. 피렌체의 주요 관광 포인트에는 인파가 상당하고, 각 포인트의 입장표를 사는 것만으로도 꽤 고생스러워 보인다. 만약 내가 자유롭게 관광을 하러 왔다면 우피치 미술관과 피렌체 대성당의 입장권을 당연히 미리 구입했을 것이다. 


  

피렌체에 있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날이 흐렸기 때문에 제대로 사진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피렌체의 두오모는 진심으로 아름답다. 그 규모에도 감탄하지만 무엇보다 색채의 조화가 예술적이다. 바로 옆에 있는 예배당에는 그 유명한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이 있으니 놓치지 말기. 그 문에 있는 부조들은 내가 눈만 깜빡하면 튀어나올 것처럼 사실적인 힘이 있다. 이 두오모 대성당에서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는 명품 부티크와 여러 상점이 많아 쇼핑하기 좋다. 혹은 나처럼 수공예 제품들을 파는 작은 포인트들을 눈여겨봐도 좋을 것이다. 


  피렌체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역사적인 예술에 파묻혀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모든 게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무감해졌을까. 관광객들 때문에 불편하려나. 나는 이 곳에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없다는 게 원통할 지경이었다. 다른 분들은 부디 나 대신에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방을 들어가 보셨으면 좋겠다.  


  참고로 로마에도 그렇고 피렌체에도 강이 있는데(피렌체에 있는 강은 '아르노강'이라고 한다), 유럽의 거의 어느 강을 가도 한강보다 크지 않다. 또 물이 별로 맑지 않다^^; 강물을 내려다볼 바에는 도시나 하늘을 바라보는 게 지혜로운 일이라고 본다. 낮은 시선 높이에서도 하늘이 보이는 경험은 귀하다.




  4일차: 피사, 친퀘테레의 리오마조레


  피사는 정말 피사의 사탑 말고는 특별히 볼 게 없는 곳이다. 적어도 내 일정에서는 그랬다. 역시 사탑 근처에 볼만한 두오모가 있지만 입장 시간이 10시부터라 일찌감치 움직였고 시간이 정해져 있는 여행자라면 들어가지 못할 듯. 사탑이 있는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해지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흑인들이 많이 살아 외국인 여행자에겐 조금 위협적일 수도 있단다. 사실 그 주변에서의 볼거리는 어떻게든 피사의 사탑과 원근법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보려는 관광객들이다. 다들 창의적인 포즈들을 취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는 친퀘테레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기차를 타기까지도 꽤 많이 걸어야 했는데, 아뿔싸 기차가 파업이란다! 일정표에도 기상 악화, 파업 등으로 여정을 진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기에 이런 불운이 닥칠 줄은 몰랐으나, 가이드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표를 구매했고 놀랍게도 기차가 정상 운행하였다. 어휴, 다행이다. 


  친퀘테레는 5개로 이루어진 해안 도시인데,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리오마조레만 갔다.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비수기 시즌이라 조용하고 상점도 거의 열지 않았던 곳. 해안 절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정말 가파르고 위험천만하다. 


리오마조레의 해안


  리오마조레역에서 내려서 약간의 터널 같은 곳을 통과하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전망대로 가는 곳, 해안가로 내려가는 곳, 마을을 둘러보는 곳. 전망대로 가는 곳은 험난함 그 자체였기 때문에 마을의 오르막을 올라보고 바다를 보았다. 성수기에는 배를 빌려주는 모양이다. 바닷소리는 어디서나 듣기 좋은데, 이탈리아의 구름은 유독 다채롭고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5일차: 베네치아


  여행하면서 가장 날씨가 무난했던 날. 베네치아의 본섬은 당연히 배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평균 수심이 1.5미터에서 2미터밖에 되지 않는단다. 가장 넉넉하게 자유시간을 가졌고 그 덕에 내가 할 수 있는대로 즐겨보려 노력했다. 베네치아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의미가 있는 곳인데 날이 좋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일단 베네치아에는 사람이 많다. 내가 갔던 곳 중 가장 붐볐던 곳을 꼽으라면 로마, 피렌체, 그리고 베네치아가 되겠다. 그리고 우리 같은 외국인의 눈에는 골목길이 거의 다 비슷비슷해 보이므로 혹시 길을 잃지 않게 유의하자. 가이드도 데이터가 안 켜질 수 있다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당부했다. 어쨌든 섬 지역이기 때문에 물가는 좀 비싸다.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한 카페의 에스프레소 가격이 8유로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산 마르코 대성당


  베네치아에도 역시 본섬의 주요 광장에 대성당이 자리한다. 간단히 짐 검사를 하기도 하며, 지나친 노출 복장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표지판이 적혀 있다. 입장료를 내면 내부와 박물관, 그리고 한 층 올라간 곳에서 광장을 살짝 조망해볼 수 있다. 건너편에는 커다란 종탑이 있는데 거기에도 입장료를 내면 올라갈 수 있는 듯하다. 유럽의 성당은 언제나 이방인의 눈을 즐겁고 경이롭게 한다. 나는 성경을 거의 모르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레퍼런스를 알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다.


  이 대성당이 있는 곳에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면 온갖 가게들을 포함해 이런 풍경을 곧잘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의 모습


  참고로 나는 물속을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고(...) 아마 물 위에 세워진 건물의 바닥 근처는 분명히 더러울 것이다. 물과 가까이 있으면 아무래도 온갖 곰팡이가 끼지 않겠나. 하지만 예쁜 걸 보려고 하면 그만큼 예쁜 게 보이는 법이고, 나는 뱃사공들이 일일이 꾸몄다는 곤돌라의 고풍스러운 좌석이라든가 수제 그림이 들어간 엽서, 온갖 유리 세공품 등을 구경했다. 이런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배들이 정착하는 곳으로 나가면 개방된 정원이 하나 있는데, 노란 수선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앉을 자리도 많고 조용한 분위기라 기분 좋은 적막을 즐길 수 있다. 


  충분한 자유시간 이후 나는 선택관광으로 부라노섬을 가는 걸 택했다. 아이유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소라고 하는데, 나는 어차피 다시 올 일이 없는 만큼 새로운 장소를 가는 것에 관한 선택관광은 해보자는 입장이라 추가 요금을 냈다. 수상택시를 타고 부라노섬까지 꽤 들어가는데, 이 수상택시를 타는 게 정말 재밌다. 기회가 된다면 운전석 뒤에 타보시길 권한다. I FEEL THE NEED, NEED FOR SPEED! (feat. 탑건)의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언제 그토록 시원하게 아드리아해를 갈라보겠나.


기분 좋게 타보는 수상 택시


  참고로 바닷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 너무 춥지 않나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저 날이 날씨가 춥지 않기도 했지만, 일단 천막 아래로 살짝 들어가면 바람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배는 바깥에서 타야 제맛이다. 근처에 공항이 있기 때문에 하늘에 남은 비행기의 궤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부라노섬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그다지 북적거리지 않는 분위기. 양옆으로 예쁘게 늘어선 건물들은 거의 다 가정집인 듯하다. 사진을 마음껏 찍어도 좋으니 발자국은 내지 말라는 표지판 등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는 레고 블럭들이 쭉 늘어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달까.

 

부라노섬


  보다시피 일반 주택도 사이에 많이 끼어 있기 때문에 구경할 만한 상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핵심은 저렇게 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건물인 듯하다.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 


  이 베네치아 일정은 부모님도 가장 즐기신 것 같다. 나무 말뚝을 박아놓고 이렇게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에 신기해하신 듯하다. 날씨가 무척 좋았던 점도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요새는 물도 적다고 하고, 더럽다고 소문이 난 베네치아지만 긍정적으로 즐기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6일차: 산지미냐노, 시에나


  6일차에 둘러본 두 곳은 그야말로 중세풍이었다. 평균 800년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곳들. 그래서인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타이틀이 있다. 


산지미냐노의 흔한 구석


  산지미냐노 역시 지대가 꽤 높은 곳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이 많이 풍긴다. 예전에는 귀족들의 경쟁으로 수십 개의 탑들이 세워진 것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10개 남짓이 남았다고. 역시나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은 한가로운 중세 마을인데, 여기에 젤라또 월드 챔피언의 가게가 있다! 나는 유럽에 오면 피스타치오맛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는 독특한 신조가 있어, 피스타치오에 레몬맛을 선택해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참고로 이 두 가지 맛은 그 가게의 시그니처가 아니다.)


  내 기준으로 유럽에서 파는 피스타치오맛 아이스크림은 한국에 없다. 난 견과류를 거의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데도 그 독특한 풍미에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어 굳이 피스타치오맛을 선택하는 편이다. 엄마가 무척 마음에 들어하면서, 아빠가 혼자 먹을 몫에 그 맛을 섞으라고 할 정도였다. 이래서 이탈리아에서는 1일 1젤라또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날이 너무 춥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했을 텐데. 훌쩍.


시에나의 광장


  시에나에는 피렌체 대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시에나 대성당이 있으며, 산지미냐노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느낌이 가득 풍기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광장의 모양새가 특히 아름답고 시청사 건물도 멋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토스카나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탑은 입장할 수 없으므로 유의. 


  중간 정도 규모의 도시를 경험할 수 있으며, 옛날에 마차가 지나다녔을 법한 거대한 철문이 있는 건물들이 주거 용도 등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며 신기해할 수 있다. 광장에는 아담한 분수대가 있고 사람들이 햇빛을 즐기느라 그냥 땅바닥에 앉아 있기도 하다. 한국에는 없는 유복한 여유로움이다.




  7일차: 아씨씨


  7일차는 사실상 귀국하는 여정으로, 로마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아씨씨라는 곳에 들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씨씨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탄생했던 곳이라 성지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성스러운 마을이다. 천주교를 믿는 분들은 클라라라는 성인도 아실 것 같은데, 이분 역시 아씨씨와 관련이 깊단다.


멀리서 본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저 날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왔기 때문에 하늘이 우중충한 빛이다ㅠ_ㅠ 프란체스코 대성당을 입장하는 데에 돈은 들지 않지만 정숙해야 하며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군데군데 돈을 내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가 배치되어 있고 사제복을 입은 분들이 일종의 직원처럼 활동하고 계셨다. 예약을 해야 입성할 수 있는 고해실이 있는 구역 중 한 곳에도 불이 들어와 성직자의 그림자를 불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2유로를 내고 각각 전기 촛불을 밝히고, 프란체스코 성인의 무덤이 있는 지하에서 축복의 카드를 집어 왔다. 무덤 역시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데 분위기가 정말 진지하다. 성인의 무덤을 지날 때 성호를 긋고 무릎을 굽히는 이들과 근처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교인들에겐 여러모로 귀중한 곳이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 역시 내가 살면서 어떻게 성인이 묻혀 있는 곳을 볼 수 있을까 하면서 최대한 예의를 차리려 고개를 약간 숙여 보였다.




  어떤 자아 탐구, 깊은 사유를 할 수 없는 여행이었음은 분명하다. 사실 단체 여행에 그런 걸 바라서는 안 되겠지. 한국과 비교했을 때의 불편함, 아름다움, 특이점 등을 체감했다. 어쨌든 여행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현존하기'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까닭은 다른 게 아니라 그러한 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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