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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Mar 20. 2023

경제적 비용이 우리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로부터 출발한 감상

  나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열렬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부터 시상식에서 주목 받는 영화들에 관해서는 나름 관심을 가지고 관람하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건 아주 낯설거나 모험적인 일이 아니었다. 수준 있는 작품을 만든다고 알려진 영화감독에, 아카데미 각본상은 이 영화에게 줬어도 좋았을 거라는 평도 있었으니 객관적으로 못 만든 영화는 아닐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내가 공감하거나 몰입해서 볼 수는 없는 캐릭터와 서사였지만, 한정된 배경과 어떻게 보면 별 것도 아닌 줄거리를 갖고 그토록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건 각본과 감독의 힘이었을 터다. 영상미도 있었다. 그렇게 내 관점에서 재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얻어갈 요소는 분명히 있었던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썩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볼 때는 꽤 집중해서 봤는데 말이다. 약간의 허탈함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나는 조금 쉬는 시간을 갖고 보려던 다른 영화표를 취소하고 귀가하고 말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흔히 말하는 '망작'을 본 게 아니었는데.


  금요일이 아닌 평일 오전 11시 30분, 특별관이 아닌 일반관에서 2시간이 안 되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지불해야 했던 비용은 13000원. 올*브영에서 모은 포인트 5200원을 탈탈 털어서 7800원을 지불했지만 포인트도 현금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나는 13000원을 온전히 다 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취향, 영화의 특색 등을 고려했을 때 <이니셰린의 밴시>가 나에게 13000원의 효용을 준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영화 값이 8000원~9000원이었다면 나는 그 영화에 더 후한 평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조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 나서 딱 알맞게 점심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표에 나는 13000원을 내야 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깐깐하게 만들었다.


아무 변화 없이 높아지기만 하는 티켓의 가격은 소비자를 인색하게 만든다


  영화 티켓뿐만 아니라 요새는 미술 전시회의 관람료도 많이 올랐다. 외국에서 유화를 들여오면 입장권이 20000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시설 입장권이 저렴한 축에 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령 구글에서 바티칸 박물관의 표값을 검색했을 때 8유로에서 17유로라고 하고,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장 구매시 일반 입장권은 14유로란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특별히 싼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종종 '얼리버드 티켓으로 왔으니 다행이지, 제값을 그대로 냈으면 돈이 좀 아까웠겠다'라는 생각부터 들 때가 꽤 있었다.


  나라고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 감상한 어떤 콘텐츠에 야박한 평가를 내리고, 그것의 퀄리티를 논하기에 앞서 돈 얘기부터 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월급 빼고 다 오르는 나라 사정, 심지어 가격 인상의 요인이 사라져도 한 번 올라갔으면 내려올 줄 모르는 온갖 것들의 가격들, 하지만 오른 것에 비해 나아지지 않는 서비스 등을 생각하자면 평론가들보다 더 짠 소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다못해 보통 평론가들은 한적한 전시장에서 무료로 관람하지 않는가. 우리는 값도 지불하고, 인파에 치이기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영업이 되지 않는 만큼 국내 영화관 업체들은 직원 수를 감축하고 줄어든 이익을 채우기 위해 티켓 값을 올렸지만,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관람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직원들의 숫자는 전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자율입장제라는 명목 하에 3D 영화를 볼 때도 관객이 알아서 입체 안경을 들고 가야 한다. (타이타닉 4K 3D 리마스터링을 보러 갔을 때 내가 겪은 일이다.) 전시회 티켓이 12000원인 시절에도 무료 도슨트가 있어 시간이 맞으면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성인 관람료가 기본적으로 15000원쯤 되는 요새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유료인 경우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겸손하고 즐거운 마음과 수용적인 시선을 갖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감상하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이 아파서 그렇다. 순수하게 문화 콘텐츠를 즐기지 못하게 하고 효율성과 가성비부터 찾게 만든다.


  다시 말해 경제적 비용이 우리의 감수성을 메마르게 한다.


  기본적으로 개인은 기분이 좋아지려고 콘텐츠를 소비한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건 여전히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쉽게 취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 중에 하나이며, 소비자들은 본인이 즐겁기 위해 무언가를 찾는 거지 처음부터 무언가를 깎아내리고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영화관이나 미술관에 입장할 때 내가 보게 될 것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품고 들어간다. 보통 '재밌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 '현 물가를 고려했을 때 이것의 품질이 얼마나 될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겠다'라는 각오를 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자기 이익만 아는 이 이기적인 경제라는 것이 우리에게 자꾸 후자의 시선을 주입한다.


나도 가성비 걱정하지 않고 영화관에 가고 싶다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으니 영화관 얘기로 포스팅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제는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일상이 돌아오고 있는데, 여전히 손님들이 만족스러울 만큼 찾지 않는다면서 멀티플렉스들이 별 사업 아이템을 다 내놓는 것 같다. 부디 사람들이 가장 접근성 좋은 문화 생활에 이토록 싸늘해졌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주말 조조 영화에도 11000원을 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온갖 사이트의 리뷰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면 거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발 고찰해달라. 


  순하고 관대한 소비자들을 되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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