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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by 제이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이야기', '도서관' 같은 단어를 품고 있는 제목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사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주인공이 청소부란다. 이렇게 흥미로운 요소들이 모인 책은 읽고 봐야 한다.






화면 캡처 2025-12-10 102912.png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출판사 다산책방

2025년 3월 출간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재니스라는 이름의 청소부다.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어서 여러 집에 청소를 다니는 걸 보면 실력이 좋은 듯하다. 몇몇 오랜 고객들과는 신뢰도 꽤 쌓은 모습이다. 그런 그가 남몰래 오래 이어오고 있는 일이 있는데, 바로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그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객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으나 가령 버스에서 얼핏 들은 대화, 혹은 조금 눈에 띄는 모습만 보고 거기에서 멋대로 살을 붙인 것도 끼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재니스가 모은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재니스를 위한 이야기인데, 자신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얘기는 감추고 회피하는 주인공의 성격처럼 그 방향성이 드러나기까지는 꽤 많은 책장을 넘겨야 한다. 그 과정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재니스가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며 남편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초반부터 드러나긴 하지만, 어쨌든 재니스는 혼인한 상태이므로 그가 버스에서 종종 마주치는 버스 기사에게 호감을 품는 초중반 묘사가 어떤 독자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대신 그 굼뜬 전반부를 버티고 나서 도달하는 후반부 내용은 그야말로 독자의 시간을 단번에 뺏어갈 정도의 마력이 있다. 재니스가 용기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케케묵은 감정과 상처와 걱정이 풀어지는 게 흥미롭고 시원시원하다. 재니스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계기가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다소 수동적인 계기이긴 하나 그래서 오히려 현실성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인생은 보통 그렇게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나 급히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한다.


책의 뒤표지에 이 책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 "새로운 인생의 기회는 아직 꺼내지 못한 내 이야기 속에 있었다." 펼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두려웠던 것들, 그것을 마주하면서부터 재니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처럼 의외로 꽤 많은 부분에 관한 실마리는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재니스처럼 50년 이상을 살았다면 그럴 확률이 더욱 높다.


새삼 자신에게 솔직하고, 엉킨 매듭을 푸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할 건 직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위와 같은 일을 벌인다고 해서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확실한 교훈은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지키기만 하지 않고 필요할 때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정리하자면 지지부진한 느낌이 드는 초반부를 잘 버텨내면 몰입도 높은 전개와 멋진 메시지가 기다리는 책. 볼륨이 다소 있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힘을 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보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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