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도쿄 디즈니랜드

by 민여름

때는 퇴사하고 몇 개월쯤 지난 연말이었다. 그맘때면 꼭 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다이어리 사고 새해목표 정하기'이다. 겉으로 보기엔 건실해 보이지만, 사실 새해목표를 써놓긴 해도 실제 이루는 건 잘 봐줘서 한 두 개인, 그저 나에게 보여주기식 행사일 뿐이다.

아무튼 그때 나는 새해목표 중 하나에 '도쿄 디즈니랜드 놀러 가기'를 썼다. 너무 가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칸을 비워놓기 뭐해서 아무거나 쓴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도쿄 디즈니랜드에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자기 계발서 읽으면서 쓰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일어나니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디즈니랜드 이야기는 같이 갔던 친구가 먼저 꺼냈다. 절대 내가 먼저 꺼낸 게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익활동이 없던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나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먹으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행계획을 짜고 숙소 예약을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여기서 꿀팁! 숙소 예약할 때 취소하면 환불이 되는지 안 되는지 꼭 확인할 것! 우리는 확인을 안 해서 멍청비용으로 20만 원을 날려먹었다.


우당탕탕 여행준비를 마친 우리는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에 가는 목적은 오로지 디즈니랜드였기에, 다른 일정은 쇼핑이 전부였다. 쇼핑하고 거리구경 하고 배고프면 밥집 검색해서 먹으러 간 것이 전부다.


이렇듯 단순해 보이는 이번 여행에도 고난이 있었다. 첫날부터 불안하게 숙소 가는 지하철을 잘못 타서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대망의 디즈니랜드 가는 날,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렇다. 나는 또 여행지에서 비를 맞이하고 말았다. 왜 갈 때마다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가 온다고 해서 디즈니랜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디즈니랜드로 갔다.


비가 오면 사람이 적으려니 했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인 미녀와 야수를 타러 갔는데 하필 기계 고장으로 타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다른 놀이기구들을 탔다. 전부 어린이용이라 그런지 타면서 스릴을 느끼지는 못했다. 어이없게도 제일 재밌게 탄 놀이기구는 회전목마였다.


비 때문인지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지쳐버린 우리는 퍼레이드고 나발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비가 거의 그쳐가서 퍼레이드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고난은 숙소로 돌아갈 때 시작되었다.


왜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본은 바람이 엄청나게 세게 불었다. 아마도 바닷가 영향인 것 같았다. 거의 태풍 수준으로 불어 제꼈다. 친구랑 나는 소리를 지르며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호텔에서 빌렸던 우산의 살이 왜인지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었는데, 그제야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은 어이없을 정도로 화창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의 창문을 바라보면서, 친구와 내내 날씨가 아쉽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여행의 교훈은 뭐였을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교훈이 뭐였 건 간에, 이번 여행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 너 그때 기억나냐? 우리 디즈니랜드 갔을 때 바람 엄청 불었던 거. 그래 기억나지. 우산 뒤집어지고 난리도 아니었지. 아마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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