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인형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나오느라 여름의 수중에는 스마트폰뿐이었다. 갈 곳도 정하고 나온 것이 아니어서 걸으면서 생각해야 했다. 조금 생각하다가 도서관을 가기로 결정했다. 거기라면 카페처럼 돈을 내지 않고도 오랜 시간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는?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도서관에 도착한 여름은 사람들이 반납한 책 카트에 있던 책 중 아무거나 한 권 집어 들고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물론 집안에 덩그러니 두고 온 복제인형 때문이었다. 여름이 제대로 작동시킨 게 맞는다면, 지금쯤 널브러진 이삿짐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데 대신해 줄 존재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막상 기분은 정반대였다. 여름은 괜히 입술 껍질을 이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여름은 금방 자신이 겪은 일을 되돌아보았다. 곰인형 몸통에 사람 얼굴을 닮은 어딘지 기묘했던 인형, 그 인형의 손에 들어있던 버튼의 촉감, 속에서 차오르듯 생기려 했던 눈코입, 그리고 편지.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는 말이 떠오르자 생각의 흐름이 뚝 멈췄다. 그제야 여름이 불안해하던 이유를 알았다. 바로 '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느 누가 선물과 함께 건넨 편지에 죽는다는 단어를 쓸까. 협박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여름은 그 말을 계속해서 되뇌어보기 시작했다.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 과연 누가 죽는다는 걸까? 여름이 알기로는 죽는 쪽은 가짜였다. 그렇다면 인형이 죽는 게 틀림없다. 여름일리가 없다. 결론이 여기까지 도달했는데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쥐가 손톱 먹는 그 전래동화는 어떻게 끝나더라? 여름은 책상 위에 여전히 펼쳐진 채로 있던 책을 서둘러 정리하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갔다. 제목을 잘 몰라 대충 '손톱 먹은 쥐'로 찾아보니 있었다. 처음 부분은 다 건너뛰고 결말 부분만 보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뒷내용은 무시무시했다. 손톱 먹은 쥐가 사람이 되어 진짜 행세를 하는 대신에, 손톱을 버린 사람은 쥐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여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동화를 지금의 여름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가짜가 되어 죽는 것은 여름 자신이었다. 그 복제인형은 지금 여름이 할 일을 대신하며 점점 진짜 여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야 했다. 복제인형이 진짜가 되기 전에 일부러 눈을 맞춰 인형을 없애야 했다. 여름은 보던 동화 반납하고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여름은 집까지 달려가며 생각했다.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는 그 경고는 사실 완전한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문구가 아닐까. 손톱의 주인이 원래 해야 할 일을 하루동안 완수해야 복제가 완전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남에게 미룬 대가가 죽음이라니. 받은 것에 비해 대가가 너무 크다.
기분 탓인지 체력 탓인지 여름은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팔다리가 짧아져만 가는 것 같았다. 신발도 커진 건지 자꾸 벗어지려 했다. 신발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이대로 점점 작아져 인형이 되어버리는 건가 싶었다. '이건 말도 안 돼!!'여름은 속으로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집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