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다.

제주도

by 민여름

사실 나는 퇴사를 앞두기 전부터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퇴사 후 자유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정규직이 된 기념으로 연차를 내고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사실 정규직이 쉽게 되지 않는 직장을 다녔는데, 끌어당김의 법칙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터라 정규직이 된다고 강력히 믿고 여행 갔을 때 쓸 돈을 열심히 벌며 계획했던 것이다.


슬프게도 끌어당김이 잘못됐는지 믿음이, 또는 행동이 잘못됐는지 결과적으로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고, 정규직 전환 기념으로 계획했던 여행은 퇴사 후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본다는 것으로 그 목적이 변질되고 말았다.


어쨌든 친구랑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다. 나 같은 집순이에게 여행이란 체력의 사치 같은 것이어서, 제주도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간 것 말고는 처음이었다. 원래 둘이서 가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한 명 더 끼게 되어서 여행은 더욱 즐거워졌다.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처음부터 고난 아닌 고난을 겪었다.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렌터카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갈 때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날씨가, 밥을 먹고 스누피가든에 도착했을 때는 누가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지 비가 마구 쏟아져내렸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일행 중 우산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는 작은 우산에 옹기종기 붙어 종종걸음으로 스누피가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건물 안을 전부 구경하고 나니 비는 그쳤다. 밖의 정원도 구경을 끝내고 시장을 가서 먹고 싶은 거 종류별로 1인분씩 사서 숙소에서 펼쳐놓고 먹었다. 사실 장소만 특별하고 하는 건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그다음 날은 고등학교 때 가보고 싶었던 테디베어 박물관을 갔다. 원래도 가보고 싶었는데 선생님들이 그 장소를 별로 안 좋아해서 여행 코스에서 제외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더더욱 가보고 싶어 졌기 때문에 꼭 가야 한다고 친구를 꼬드겼다. 전날 갔던 스누피가든을 기대하고 갔는데 좀 실망이었다. '가든'과 '박물관'의 차이점을 깊게 생각해 봤다면 아마 난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역시 선생님은 아무나 못하는 것이다.


제주도에 와서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라고는 수영 뿐이었는데, 나는 그나마도 못했다. 친구들은 수영복을 다 챙겨 와서 바다에 들어가 놀았는데, 나는 생리하는 날과 겹쳐서 숙소 안에서 넷플릭스를 봤다. 결국 나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서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멋진 자연경관에 속았었던 것 같다.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속속들이 파헤쳐보니 사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에 실망하기보다는, 그 생각을 역전시켜 보기로 한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특별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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