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동경
편지를 씁니다. 누구한테 가닿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써내려가봅니다.
벌써 한국에서 거처를 옮긴지 3년이 되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고갔던 한국인데 1년이 다 되도록 한국에 가질 못하고 있네요. 만나고 싶은 사람들,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한가득입니다.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 되려 그립다는 것이 어찌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도망치듯 왔기 때문에 두고 온 것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그리운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커피를 보냅니다. 물론 커피를 보낸다면 뭐가 좋을까, 어느 카페의 커피가 좋을까 부던히 고민했습니다.
이번에 보내는 커피는 글리치의 에티오피아와 오브스쿠라의 과테말라입니다.
글리치는 반짝거린다는 뜻이고 오브스쿠라는 암실이란 뜻이잖아요. 참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글리치는 선명하고 뚜렷한 산미를 가진 커피를 만들고, 오브스쿠라는 어둡지만 침착한 커피를 만듭니다.
제가 처음으로 여행으로 왔던 일본에서, 처음으로 방문했던 첫 커피는 글리치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커피집이고, 묵던 호텔이랑 가까웠으니까 가보자 하고 찾아갔던 길들도 모두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연보라색 건물에 어두운 분위기의 카페에서 라마르조꼬 머그컵에 담긴 크레마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에스프레소가 왜 그렇게도 맛있었는지...선명하고 확실한 산미와 화사한 향,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머물렀던 4박 5일 동안 매일 갔었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저한테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카페입니다.
오브스쿠라는 일본으로 생활하러 오고 나서 한두번밖에 방문하지 못한 카페입니다. 집에서 아주 멀거든요. 그렇게 자주 가지도 못한 카페였는데 어째선지 마음 한 켠에 항상 머물던 카페였습니다.
어느 선선한 가을날 해질무렵에 마셨던 사이폰 커피가 너무너무 맛있었고 같이 주문한 애플파이도 너무 맛있었고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백발의 할머니도 뚜렷하게 기억날만큼. 마지막에 할머님은 자리를 뜨며 저를 보며 우루사캇다데쇼, 고멘나사이네. 하고 홀홀 떠나가셨었습니다. 시끄러웠지? 미안했어. 라고. 시끄러웠지만 그게 싫지 않더라구요 할머니.
저는 커피를 마신다는게, 품종이 어떻고 지역의 고도가 어떻고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그 날, 커피를 접할 때의 기분이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그 갬성 말이죠. 그런 게 제가 보내드린 커피에서 느껴질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담을 수 있는 갬성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