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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늑대 Aug 28. 2020

잘할 자신이 없어서 시작을 못했다.

일광욕으로 깨달은 것.

 일본에 온 지 2년이 훌쩍 지나버렸고 블루보틀에 입사한지는 벌써 1년 반이 지나갔다.


 브런치를 시작해야지, 만화 일기를 그려야지, 블루보틀에 다니면서 느끼는 점 같은 것도 써서 남겨야지, 일본에 있는 유명한 카페들을 간 것들로 글을 써야지.. 하고 싶었던 것은 많았는데 무엇 하나 손댈 수 없었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원하는 수준의 글을 써내려 갈 수 없고, 원하는 수준의 그림을 그릴 수 없고, 그런 엉망진창인 것들을 남한테 내보인다는 거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고 자신에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틀린 완벽주의. 이 글도 쓰다 지우길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이케부쿠로 공원에 일광욕을 하러 갔다. 태어나서 일광욕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출근하는 시간에 햇빛이 너무 강해서 얼굴이랑 팔 바깥쪽만 새까맣게 변했는데 몸만 하애서 전체적으로 몸의 색깔을 맞춰보자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너무 자외선이 강한 시간을 피하는 게 좋다고 해서 늦은 오후 공원에 갔는데 아무도 일광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일광욕을 하고 있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아무도 일광욕을 하지 않는데 막상 혼자 상의를 탈의하고 드러누울려니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이래도 괜찮을 걸까. 아직 제대로 완성한 몸도 아니라서 배에 王자도 없는데, 아직 허리둘레가 얇지 않은데, 팔도 두껍진 않은데, 겨드랑이 제모도 안 했는데..



 그러다 문뜩 아, 모르겠다. 그냥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셔츠를 벗어서 얼굴을 감추고 돗자리 위로 널브러져서 일광욕을 즐겼다.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햇빛도 적당히 따뜻했고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했고 그 날 들었던 음악도 좋았고 그 날 마셨던 커피도, 맥주도 좋았다. 빌딩 숲 사이에 공원이라 그림자가 서서히 공원을 덮을 무렵 다시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나이가 많아서, 경력이 없어서, 잘할 자신이 없어서 안 하던 것들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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