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두분을 보며] 하늘의 별이 된 강수연/ 타는목마름으로 /김지하 떠나다
오늘 아침 영화배우 강수연과 타는 목마름으로 시인 김지하 별세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간추려 봤다.
배우 강수연은 지난 4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7일 하늘의 별이 됐다. 삼성 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이며 8일 오전부터 조문객들의 출입이 시작됐다. 향년 55세다.
강수연은 3세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서 손창민과 호흡하며 연기를 펼쳤다.
영화 씨받이로 1987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언론에서는 배우 강수연이 영화계의 ‘억대 개런티’라는 개념을 처음 실현한 장본인이라고 했다. 1992년 출연한 ‘그대 안의 블루’에서 고인은 게런티로만 2억 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시를 남긴 영원한 저항 시인 김지하 시인은 8일 영면했다. 빈소는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 장례식장이다. 향년 81세다. 그는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0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생애 전반에 집필한 작품들은 저항 시인으로 명성을 남겼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고인이 된 두 분을 보며 나훈아의 ‘공’가사가 생각났다. 배우 강수연은 55세에 이생을 떠났고, 김지하 시인은 81세에 영면하였다. 배우 강수연은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진 뒤 3일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 50대의 나이에 죽는다고 누가 생각을 했을까? 본인도,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어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가수 나훈아는 이 세상에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 죽음을 인지하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에 모가지가 안 끌려가려면, 안 해 본 것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현재 활동 상태를 보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여지없이 나타났다.
내가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문제는 심오한 깨달음이 내 가슴 밑바탕에서 살아 숨 쉬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내 자신도 가끔씩 망각하며 살았던 시간이 생각났다. 고인이 된 두 분을 보며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내가 1년 안에 죽는다면 지금 후회하지 않고 살았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근태 박사가 얘기했던 문장이다. 한때 스스로에게 수시로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부모님, 아내, 형님, 누님은 저세상 가 계신다. 뜻하지 않게 가족을 먼저 떠난 나로서는 죽음이 남다르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최근 읽었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분명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이 책에서 ‘내면을 성장하고 영혼을 갈고닦기 위해 살아가라고 했다. 죽을 때는 그 사람의 영혼만 가지고 떠난다고 했다.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영혼을 갈고닦아야 하는지가 자명하다.
앞으로 넉넉히 잡아도 50년 안에 땅속으로 가야 하는 존재다. 아니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이 정답이다.
소설가 이외수, 문학가 이어령 선생 등 최근 사회 저명인사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녹슨 삶을 살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도 생각났다.
한때의 명성과 부귀영화도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두고 영혼만 가지고 저세상에 간다.
고인이 된 두 분의 뉴스를 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의미를 되새긴다. 고인이 된 두 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