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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 쓰는 보디빌더 May 10. 2020

<나도 작가다>글도 쓰는 트레이너

트레이너가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

삼십 년 남짓 살면서 인생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우연과 타인의 합작으로 시작되었다. 10년 전 만 해도 내가 트레이너로 살고 있을지 몰랐고, 결혼이란 것은 오히려 단칼에 ‘하지 않겠다’ 했으며, 무엇보다 1년 전 오늘의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10년 전, 한 남자를 만났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고, 오직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서울로 온 그는, ‘혼자 하면 심심하니까’라는 정말 단순한 ‘단 하나’의 이유로 나를 헬스장에 데려갔다. 그를 쫓아 설렁설렁 다니던 헬스장을 시작으로, 다이어트를 했다가 또 운동을 조금 쉬면 요요현상을 겪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점점 헬스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 조금 조금씩의 기간이 모여서 어느 날, ‘운동은 매일 해야 하는데, 돈도 벌어야 하고, 운동으로 돈 벌어야겠다’로 발전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지금 나의 남편이 되었고, 나는 8년 차 트레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한 이후 10년 내내, 줄곧 트레이너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트레이너로 6년쯤 살았을 때, 점점 직업이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즈음에 나는, 거의 매일 아침 6시에 첫 레슨이 시작되었고, 퇴근은 밤 10시였다. 보통 하루에 7~8개(1개당 50분)의 레슨, 많을 때는 14개의 레슨을 ‘연속’으로 진행했다. 회원들에게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챙겨라, 조금씩 나눠 먹으라 외치면서 나는 새벽 5시에 눈도 못 뜬 채로 고봉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때 먹어두지 않으면 그날의 식사는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개인 운동은 식사보다 엉망이 되었다. 회원들에게 최소 주 3회는 운동을 권하면서, 정작 나는 한 달에 3번도 힘들었다. 족저근막염, 무릎 통증, 허리, 목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병원에 다니기 바빴다. 다른 사람들 몸을 돌봐 주느라 내 몸은 전혀 돌보지 못했다. 그 날도 물리 치료를 받으며 결심했다. ‘그만해야겠다’ 그길로 퇴사했고, 두 번 다시 트레이너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어디에서도 트레이너를 했었다, 운동하던 사람이란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인생에 또 하나 큰 의미가 있는 ‘글쓰기’가 한 사람을 통해 찾아왔다. 트레이너를 그만두고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를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쓰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글쓰기를 배워야겠다 결심하고, 그렇게 찾아간 특강에서 한 작가를 만났다. 두 시간 정도의 특강이었지만 정말로 ‘내가 어쩌면 잘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그날 나는 직감했다. ‘당분간 글쓰기에 빠져 살겠구나’ 했다. 그때 두근거리던 마음이 운동을 처음 제대로 배웠던 날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을 시작으로 그 작가의 특강, 강연에 거의 모두 참석하며 글쓰기를 진지하게 배워갔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몰랐다. 초고를 수정하기 위해 읽을 때마다 넋두리와 하소연이 전부였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과제를 몇 번이나 받고, 몇 번이나 썼지만 처음 6개월을 감을 못 잡았다. 그저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지금 읽어보면 그 기간에 썼던 글들은 허공에 주먹질을 부른다. 그러다 4번째 ‘나는 왜 쓰는가’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나의 운동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도 우연이었다. 하필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운동 자체를 정말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조금 서글펐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던 10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 회원들에게 알려줬던 정보, 공부했던 전공지식을 남기고 싶었다. 하나하나 글로 쓰기 시작했다.     


 흔적을 남기겠다고 시작한 글은, 트레이너로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내가 어떤 트레이너였는지, 트레이너로서의 신념, 회원들을 대했던 태도가 모두 글에서 드러났다. 글을 쓸 때는 더 정확해야 하기에, 알고 있었던 운동 정보도 다시 보게 했고, 헬스장도 다시 가게 했다. 성과만 쫓아가느라 잊었었던 운동의 즐거움, 내가 좋아했던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다시 사랑하게 해 주었다. 다시 트레이너를 직업으로 삼게 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을 남길 수 있게 하는 글쓰기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쓰려고 애쓴다.    

  

 물론 가끔은 운동처럼 글도 쓰다가 지쳐서 ‘그냥 쓰지 말까, 트레이너를 다시 하게 해 준 거로 글쓰기는 됐어.’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그만두고, 다시 한 과정을 겪으니까 글쓰기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메모든, 일기든 글을 평생 써야 하고, 이왕 배웠으니 ‘글도 쓰는 트레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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