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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Feb 02. 2020

#24. 운전하다 보면 지나칠 수가 없어, 빅서에서는.

[4일차_빅서]

밥을 먹고 두 시간 정도를 더 운전해야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몬터레이에 갈 수 있다. 오늘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목적을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는 날이다. 고속도로도 아닌 정말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며 북쪽으로 향해 올라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왼편으로는 드넓은 태평양 바다가, 오른편으로는 미국의 큼직큼직한 산과 바위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해안 도로의 불편한 점이 몇 가지 느껴졌다. 먼저 길이 너무 구불구불하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는데, 조수석에 타 있으면 멀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고속도로와는 다르게 해안 도로가 왕복 2차선의 중간에 출구가 없는 형태라 한번 진입하면 다음번 출구까지 몇십 마일을 그냥 주행해야 했다. 또, 거대한 미국 대륙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전화나 데이터 신호가 전혀 잡히질 않았다. 휴대폰을 이용해서 내비게이션을 실행하다가도 부득이하게 이 곳 해안 도로에서는 표지판만 보고 달려가야 했다. 그런데 몇십 마일을 그저 길을 따라 직진하는 코스라 내비게이션이 없다고 하더라도 길을 잃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은 없었다.

멀미 기운도 좀 이겨낼 겸 안전한 곳에 차를 잠시 주차했다.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중간 갓길보다 넓은 마치 주차장 같은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 두었다. 느린 속도의 차는 그곳에서 뒷 차를 먼저 보내주기도 하고, 우리처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공간이다. 가는 길 곳곳마다 멋진 바다와 멋진 바위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는 바다와, 산, 그리고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지도로만 마주하던 그 해안선 한 굽이, 한 굽이를 따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차에 올라 남은 길을 따라 운전을 시작했다. 이동하는 내내 왼쪽에는 바다, 오른쪽에는 산, 앞에는 도로. 이 세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지루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질 않았다. 바다의 모습은 시간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였다. 산의 모습도 주변 풍경에 따라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얼마를 더 달렸을까, 운전을 하다가 "우와"하는 소리를 나도 모르게 뱉었다. 예전 캘리포니아 해안도로 여행을 처음 꿈꾸었던 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차를 어서 안전한 곳에 멈추어야 했다. 이 광경을 지나쳐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비슷 한지, 많은 차들을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거대한 바위들과, 바다가 함께 만들어 낸 최고의 경치였다. 이 곳을 빅 서(Big Sur)라고 부른다.

Big Sur, CA, USA

빅 서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경치에 한 번 더 놀랐다. 운전을 하고 오느라 시간이 벌써 어둑어둑 해 진 탓에 노을빛이 더해졌다. 빛바랜 갈색 식물들로 덮인 산, 그리고 회색 빛 바위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들과 조금은 어둡게 느껴지는 바닷물, 그리고 흐린 구름들 사이로 펼쳐져 내려오는 따스한 노을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람이 건들지 않은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도시를 만들고, 길을 만들고,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개척해서 살아간다. 그럴수록 자연이 만들어낸,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것들은 하나씩 사라진다. 우리가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어내는 것들이 어찌 보면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아름다움을 깎아내는 일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이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정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넋 놓고 바다와 풍경을 보다 보니 다시 다급해졌다. 해가 지기 전에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다. 벌써 조금씩 해가 져 가는 듯하여 아쉽지만 멋진 풍경을 뒤로한 채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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