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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Feb 04. 2020

#28. 미국 도로, 시간 없어도 여긴 쉬어가야겠어요

[5일차_머시드]

몬터레이를 출발해서 목적지인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는 3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 사실 마음먹으면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면서 여러 차례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다양한 이유로 쉬어 가게 되었는데 덕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후회는 없다.

이제는 해안도로가 아닌 본격적인 내륙 도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미국이 땅이 넓다고 하는데 운전을 하면 할수록 더욱 그 거대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도로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양 옆으로는 빈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곳곳에 검은 소들이 무리 지어 노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조식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탓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미국에 와서 스타벅스가 굉장히 오밀조밀 있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운전하다가 스타벅스가 보이면 내려서 커피를 한 잔 큰 사이즈로 사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드넓은 허허벌판일 뿐, 스타벅스는 없었다. 시간도 아낄 겸 커피는 참고 조금 더 달려보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우측으로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벨벳 같은 느낌의 포근한 식물들이 뒤덮인 언덕들과, 푸른 호수가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곳도 멈추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지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중간중간 위치해 있었다.

차를 세우고 풀숲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겨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따스한 햇살과 풍경들이 어우러져 매력을 뽐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1426 Gonzaga RdLos Banos, CA  95322,  United States

지도를 켜 찾아보니 이 곳은 큰 저수지였다. 하다 하다 저수지마저도 거대한 바다 같은 이 곳을 보니 정말 미국에 있긴 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이런 평지의 저수지는 농사를 위해 물을 보관하는 용도가 많을 텐데, 이만한 저수지의 용량을 필요로 한다면 그 경작지의 넓이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가 운전하여 오면서 본 그 넓은 땅들이 아무래도 모두 경작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면 그 넓은 땅 전체에 파릇파릇 무언가가 피어나겠지.

한참을 더 달리고 달렸다. 저수지를 지나자 무섭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송전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동네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산 위의 송전탑보다 더 높고 두꺼운 모양새였다. 평소에 거대한 전기 장치들을 좋아하지 않고, 사실 약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터라 얼른 빠져나오기만을 바라고 운전을 했다.

13104 CA-33Santa Nella Village, CA 95322United States

무시무시한 송전탑 숲을 지나자 '이런 곳에 마을이 있네?'싶은 생각이 들 만큼 뜬금없이 마을이 나타났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곳으로부터 두 시간 조금 안되게 달려온 곳에서야 드디어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워낙 여행기간 내내 피곤하게 이동하고, 돌아다닌 덕분에 커피를 먹어도 밤에는 잠만 잘 왔다. 오히려 커피를 먹지 않으면 하루의 활력이 잘 생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커피를 한 잔 얼른 사 가지고 다시 출발했다. 갈 길이 정말 바쁘니까.

요세미티까지 가는 길도 먼데, 나는 머시드(Merced)라는 동네에 한 번 더 멈추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월마트에 들러 사야 하는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스노우 체인! 스노우 체인을 이곳에서 사야 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기에 도로가 잘 얼어붙고 눈이 자주 내린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는 도로들은 시시각각 통제되거나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차만 통과할 수 있도록 제한되곤 한다. 렌터카를 빌리면서 풀사이즈의 4륜 구동 차량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이유도,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을 찾아다닌 이유도 바로 요세미티 때문이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4륜 구동 차량이면서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했음에도 도로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에는 체인을 필수로 장착해야 한다. 만약 체인이 없다면 다시 통제소에서 차를 돌려 되돌아와야 하거나, 현지에서 파는 값비싼 체인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서 장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머시드에서 체인을 구입하면 체인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요세미티에서 내려오는 길에 머시드에 들러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었다. 월마트는 환불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환불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고, 그 제도를 널리 홍보 중이라고 한다.

3055 Loughborough DrMerced, CA  95348United States

머시드에 있는 월마트에 들러 체인을 구입하였다. 문제는 나와 내 친구 모두 체인을 장착해 본 적도, 체인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월마트 직원에게 적절한 체인을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친절하게 차량 모델에 맞는 체인을 골라주었으며, 방법을 유튜브에서 한 번만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장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숙소도, 다음 투어 일정들도 요세미티 안쪽에 모두 예약해 둔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체인을 구매하고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월마트 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시 간단한 점심은 맥도널드가 최고인 것 같다. 기분 탓인지 점점 내용물이 적어져 가고, 맛이 변해가는 듯 한 우리나라 맥도널드와는 다르게, 옛 맥도널드 맛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맥도널드도 하루빨리 다시 예전의 맛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한 시간가량 더 달렸을까, 점차 주변의 풍경이 변한다는 것을 운전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드넓은 평지와 호수가 보이던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양 옆으로는 높은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가는 내내 날씨가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물론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가장 걱정했던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덕분에 아무런 도로 통제도 없었고, 체인을 설치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어가는 입장권 매표소가 있었다. 차에 탄 채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인원 수가 아니라, 들어가는 차량 1대 당 요금을 지불해야 했고, 한 번 요금을 지불하면 1주일가량 언제든 공원을 드나들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날이 맑아 걱정이 없지만, 밤사이 눈 예보가 되어 있던 터라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직원은 오늘은 공원 곳곳을 다니더라도 체인이 필요 없겠지만, 내일은 아마 체인을 달고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오늘도 이동하느라 하루를 거의 다 흘려보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자 해가 천천히 자태를 숨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높은 산골짜기 속이라 더욱 그 시간이 일렀던 것 같다. 서둘러 공원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곧 체크인도 잊은 채 차를 세우고는, 넋 놓고 한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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