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생각이 나는 날
오랜만이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적어보는 것.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 내려가야겠다며 쏟아내던 용기와 의지는 정말 과분하게도 한 권의 책이 되어 돌아왔다. 잘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직도 누군가가 내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민망함이 먼저 나서는 그런 책이다.
그런 탓일까, 그 이후로도 무언가를 적어보자는, 아니 그때처럼 그저 쏟아내 보자는 생각을 꾸준히 해 왔지만, 첫 문단을 적어보고는 모두 접어버렸다. 실제로 블로그던, 브런치던 발행되지 않은 글 목록에는 첫 문단만 남아 있는 멈춰 있는 글들이 한가득이다. 귀찮음과 답답함 때문이었다. 사실 그 둘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무엇에 관해 적을지, 어떤 내용으로 적을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청산유수다. 다만, 글로 쏟아내는 과정에서 모든 것은 날아간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비어 간다. 텅-
새로운 글 작성을 해보고는 싶지만 막상 시도하면 하기 어려웠던 그러한 마음을 나름 달래보고자, 괜히 이전에 적었던 브런치 속 글들을 이리저리 바꾸고, 묶어서 브런치 북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전에 적었던 글이라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을까?
그러다가 벌써 2년이 지나가는 미국 여행 글을 정주행 했다. 다시 한번 놀라웠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고, 그 당시의 여행 추억이 다시금 떠올라서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7일간의 여행을 총 43편의 글로 풀어냈는가, 그때의 나는 어떤 열정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글을 썼던 것일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를 얻는 그 시점이기도 했고, 정들었던 첫 학교를 옮겨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주변의 환경 대부분이 변하는 그 시점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러다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나는 어떻게 무언가를 추진할 동력을 느꼈을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꼭 글을 쓰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관심사에서 '이거다!'싶은 원동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이 줄었고, 사고 싶은 것이 간절하지 않으며, 관심 있던 것들이 그저 그런 것들로 희미해져 간다. 그래서인가 할만한 일은 말 그대로 '일'밖에는 없다. 바쁘게 살아가는 그것밖에는 없는 지금의 내 일상에 다시 한번 글이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싶다.
이런 게 글의 감성일까.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일까. 글이 주는 힘일까. 사실 나는 엄청 글을 쓰고 싶어 했었던 것은 아닐까. 무수히 많은 '한 문단짜리 글'들을 만들어내며 나는 어서 결심을 하자는 무의식의 다짐을 한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왜인지 동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동력을 느낄 이유를, 아니 동력 그 자체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