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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Dec 27. 2021

#2. 하루 시작 네 시간째

바쁜데도 긴 하루. 생각만 많아지게 한다.

보통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너무 바쁘거나, 시간이 흘러가는지 확인할 겨를조차 없는 상황에서 쓰이는 말들이다.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고, 오후가 어떻게 채워졌는지 모르게 퇴근시간이 다가오곤 하는 그런 상황이 떠오른다. 


여덟 시 반, 학교에 들어와서 앉았다. 그 동시에 연락을 한 통 받게 되었다. "학생 확진자 발생!"


벌써 수 차례 학생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들을 줄곧 해왔던 경험치가 쌓여서일까 당황하기보다는 안쓰러운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고, 평소에도 열심히 모든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하지 않고 말썽만 부리는 학생이 확진되었다고 해도 똑같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첫 확진자가 발생하였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첫 학생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은 건 오후 8시경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래간만에 일찍 퇴근하여 집 근처에 있는 밀키트 가게에 들렀다. 대구매운탕과 제육볶음 밀 키트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얼마만인지 맛난 음식을 해 먹을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었던 탓일까, 요리는 진도가 나가질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구 매운탕은 왜 이리 끓지를 않는지, 왜 아무리 끓여도 생선이, 채소가 익지 않는 것 같은지.. 


2-30분이면 된다고 적혀있던 그 요리를 한 시간 가량에 걸쳐 완성하였을 때, 이제 맛있게 먹어보자며 밥을 떠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락을 받았다. "학생 확진자 첫 발생, 가능한 교직원은 학교로 모여 회의에 참석 바람"


배고픔이 사라졌다. 정말로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된 음식이 눈앞에 차려져 있는데도 입맛이 딱 사라졌다. 식탁을 그대로 둔 채로 부랴부랴 옷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장 가까이 살아서일까, 다른 선생님들보다 먼저 교문에 도착했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은 그 학급 수업에 들어가니까 오늘은 오지 마시고 집에서 기다려주세요." 


집에 돌아와 입맛이 뚝 떨어진 채로 대구매운탕을 다시 끓이고, 제육볶음을 곁들여 밥을 먹었다. 참석하지 못한 그 회의는 밤 11시가 가까워져서야 끝이 났다고 한다. 그 당시 학교에서 열심히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딱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뒤로 몇 차례의 학생 확진자가 발생했다. 준비해야 할 서류는 모두 구비되어 있었고, 안내해야 하는 내용도 모두가 파악하고 있었다. 사안에 따라 추가로 조사해야 할 내용이 그때그때 달라지기는 했지만, 다른 행정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어서일까 바빠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걸쳐 오늘 아침이 되었다. 오늘 오전 시간도 참 바쁘게, 솔직히는 바쁜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항상 도망가듯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오늘은 왜 멈춰 있는 듯 제자리일까. 저 많은 일을 오늘 겪어냈는데 왜 아직도 오전인가. 왜 오늘 하루는 여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가. 실제로 날이 길어졌는가? 우주의 무언가가 흐트러져서 시간이 이제는 늦게 흘러가는가? 내 마음과 정신이 이상한가? 아니면, 내가 또 한 차례 담담해졌는가.


흐르지 않는 시간은 쓸데없는 생각만 쌓여가게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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