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학교 개교준비위원회
나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중이다. 말 그대로 없던 학교를 새로 짓는 중이다. 내가 이사를 가려고 하는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꽤나 큰 규모의 단지라 단지 안에 학교가 새로 생긴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로 공문이 하나 전해졌다. 신설학교를 개교하기 위한 개교준비위원을 선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바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크게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제출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앞으로는 더 이상 신설 학교를 경험해 볼 계기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국적으로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하는 추세에서 학교가 점차 줄어들고 없어지면 없어졌지, 새로 생겨나는 경우를 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사실 이 학교 또한 도심지에 새로운 학교를 하나 신설하기 위하여 시골의 작은 몇 개의 학교가 폐교하거나 통합하는 조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학교와 교육이라는 문제는 마냥 경제 논리로만 이득, 손해를 따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육 사업이 그러한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학교를 새로 신설하는 문제와 같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경제 논리를 온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와도 정말 가깝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렇기에 학군이 겹쳐서 새로운 학군과 동네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이 적을 것 같았다. 또한 새로 생긴 학교에는 정말 자잘한 일들이 많기에 많은 사람들이 첫 해에 가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를 상징하는 꽃이나 나무를 정하는 일부터, 벽의 색깔, 교실 문 손잡이의 재질 하나까지 모든 것을 고려하고 선정해야 한다. 학교의 규칙도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야 하며, 교사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학교 문화 또한 바닥부터 다시 새롭게 쌓아가야 한다. 어찌보면 힘든 앞날이 선명하지만 반대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할 일이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려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열심히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여러 지원서를 작성하여 난 뒤 운 좋게도 개교준비위원에 선정되었다. 선정된 후 임명장도 받기 전에 했던 일이 있다. 바로 옆 도시에 있는 신설학교를 견학하는 것이었다. 사실 다른 학교를 방문해보는 자체가 드문 일이었는데, 거기에 새로 지어진 활기찬 학교를 견학한다는 것은 정말 인상 깊었다. 그 학교 또한 개교준비위원회의 준비를 통하여 이번 3월에 개교한 학교였다. 다른 신설 학교들보다 교사의 시각에서 본 실질적인 조언과 의견이 들어가도록 설계되고, 구성된 것이 돋보였다. 다수의 학교를 건축하고, 디자인 한 업체들이 물론 트렌드에 맞추어 좋은 학교를 지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학교 현장에서 직접 생활하고 아이들과 활동할 선생님들이 그 과정에 참여한다면 조금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멋진 결과가 나올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학교 또한 그러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임명장을 받고는 한동안 쭉 시설과 설계에 관련하여 논의를 하였다. 다른 신설학교들보다 더 내실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보통의 경우보다 1년 더 많은, 총 2년의 준비기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기본 설계를 건축회사로부터 받아서 하나하나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건설이 완료된 뒤에 참여하여 이미 주어진 시설에 억지로 이리저리 끼워맞출 수밖에 없는 답답함보다는, 서로의 뜻에 맞게 시설과 설계를 직접 협의하여 변경할 수 있다는 자율성이 더 만족스럽긴 했다.
수 차례의 협의를 거쳐서 시설에 대한 설계를 완료했다. 그러는 도중에 우리들의 협의에 따라 설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지하 층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 온라인과 가정통신문을 통해 예상 입학생과 전입생을 조사해 보았다.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전학을 희망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착공과 동시에 증축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사실 희망하는 모든 아이들이 쾌적하게 함께 수업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에는 공간적으로 부족함이 많이 남아있다.
새로 지어지는 이 학교는 조금은 특이한 구조를 지닌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는 형태다. 병설이나 같은 공간을 단순히 함께 사용하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정말 하나의 학교로 통합되어 있는 ‘통합학교’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OO초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되기 때문에 학교장 또한 한 명이다. 1000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에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에 조금은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열심히 협의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은 조금씩 안심으로 바뀌어갔다. 기존의 학교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와 부족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이 많이 나타났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협의회 과정에서 초등학교 입장에서 주로 의견을 내곤 한다. 중등 선생님들은 중학교 입장에서 의견을 내곤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느낀 점은 딱 한가지다. 초등과 중등은 너무나도 다르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나, 학습 수준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이 바로 교무실에 대한 논의였다. 우리는 교무실을 두 개로 만들 것인지, 통합학교답게 하나의 교무실로 통합하여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같은 공간에 대하여 협의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초등학교의 교무실은 정말 작은 공간이다.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 연구부장 선생님, 그리고 학교의 규모에 따라 1~3명 정도의 행정사(실무사) 선생님들이 상주한다. 보통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각자의 교실이나 학년 별로 위치한 교사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중학교에 경우에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자리를 두고 생활하는 듯 했다. 요즘은 연구부, 체육부, 생활부 등 부서별로 사무실을 만들어서 부서 별 업무 추진이나 협의에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무실은 여전히 넓고 많은 선생님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다른 부분이 많았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의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새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기에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우선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협의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어른스러운 대화가 무엇인지 배웠다. 또 평소 잘 읽지 않던 교육에 관련된 전문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웠고, 다양한 학교에서 모인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간보다 앞으로 더 많은 기간을 개교준비위원으로 활동해야 한다. 내가 정성을 쏟아서 만든 학교라는 자부심이 생길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참여 해야겠다. 그리고 내후년, 그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생활하면서 행복해 할 그 날을 항상 머릿속에 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