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선생님의 삶

by Trey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기본 덕목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선생님들은 많은 것을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틈틈이 도움을 제공해야 하고,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 도움은 직업을 갖게 된 후부터 아니 직업을 갖기로 결정한 그 때부터 사실 이해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오늘은 학교 내에서 아이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도움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한 때 나는 ‘내가 누군가한테 도움이나 줄 수 있는 사람일까’하는 생각에 빠져 우울하게 지냈던 때가 있다. 내가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도움조차 줄 수 없는 그런 사람같다는 생각이 무지막지하게 들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누군가가 나한테 무언가를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그저 하는 소리겠거니 하며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정말 나는 도움을 아무데도 주지 못했던 사람일까.


방송교육이라는 업무를 하게된 이유도 학교에 도움을 좀 주고 싶어서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공개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것에 대한 수고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벽같이 출근해서 일을 준비해두고, 늦게까지 남아 다음날에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바쁘게 하루 하루를 지내면서도 뿌듯했다. 주변의 여러 선생님들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본인들이 관리자를 찾아가거나, 부장회의에서 대신 업무를 나누어 할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이야기해주겠다며 걱정을 해 주었다. 내가 거절했다. 내가 원해서 맡게 된 업무이고,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것은 익숙함 뿐이었다. 그래도 익숙함 덕분에 처음 해보는 업무지만 큰 실수 없이 꼼꼼히 진행할 수 있었다. 여러 업무를 맡은 선생님들은 여전히 많이 도움을 청하신다. 교사들이 맡는 업무가 대부분 학생들과 관련이 있다보니 학생들의 무슨 무슨 교육과 이런 저런 행사를 위해 방송업무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별 힘든 생각 없이 잘 해내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작은 의문들이 들고 있다. 아무리봐도 나의 업무와는 별 관계가 없는데도 부탁을 받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업무까지 절대로 할 필요 없다고 한다. 내가 맡은 업무의 특성상 관련이 있어보일 뿐 사실은 그들의 업무라는 것이다. 그 말은 한 해를 마치고 내가 한 해동안 이루어낸 업무 상의 실적이나 결과물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경우에 내가 해낸 성과로는 전혀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민에 빠지긴 한다. 솔직히 긴가 민가 싶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별 말 없이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뭐’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나는 올해 초에 업무를 지망하면서 충분히 고민을 해보고, 이러한 도움까지 감당한 채로 시작을 했다.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고, 학교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 업무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이 업무를 맡고 지금처럼 수 많은 전화와 메시지를 통해 부탁을 받게 될 것이다. 올 해 말에 있을 업무 평가 및 건의 시간에 꼭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업무를 함께 나누어 줄 선생님을 한 명 더 뽑아달라고 할 생각이다. 교직원이 60~70명에 달하는 큰 학교에서 사실 불합리적이긴 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채로 쭉 이어질 것이다.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말과 함께.


도움을 주면서 남들도 좋겠지만 나 자신이 함께 좋은 때가 더 많다. 아무도 청소하지 않는 복도나 중앙 계단을 방과 후에 혼자 슬그머니 치워둔다거나, 몇 달째 방치되어 있는 예전 단원의 준비물을 가져다 둔다거나, 학년에서 사용하는 자료들을 미리 만들어 둔다거나 하는 일들은 남들에게도 좋지만 나한테도 좋은 일들이다. 나는 앞으로도 나를 위해서 조금 더 남을 도와줄 생각이다. 언젠간 나도 큰 도움을 받으며 고마워할 날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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