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하는 한 마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을 할 때도 좋고, 삶을 살아가면서도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내 편으로 인해서 힘을 얻고 뿌듯하게 생활하는 날이 있는 반면,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아픈 마음을 갖게 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힘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 내 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보통 가장 큰 내 편, 언제나 변치 않는 내 편이라 하면 대부분 가족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에게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있었던 힘든 일들을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첫 발령을 받았던 그 해를 빼고는 말이다. 굳이 집까지 학교의, 직장 생활의 힘듦을 끌고 오는 것이 우선 싫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시 싫은 일과 싫은 사람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들과 내가 생활하는 직장 환경이 서로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점이 힘들다고 말할 때면 “원래 직장생활이 그렇지 뭐”, “그래도 학교가 다른 직장들 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건 뭐야? 학교에선 그렇게 해?”와 같은 대답과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생겨난 힘든 감정들은 집 밖에서 주로 해소하곤 했다. 친구들, 동료 선생님들, 하다 못해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에게 투덜거리고, 이야기하고, 호소하면서 해소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학교에서의 힘듦이 학교 바깥의 생활까지 이어져서 제대로 생활하기가 힘든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때도 그랬다. 스스로 굳게 지키는 감정의 틈새로, 차마 숨길 수 없었던 한숨과 한 풀 꺾인 목소리만 새어나왔을 것이다. 문득 지금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가족들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 아무 내색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내 편은 친구들이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친구 두 명과 술을 한 잔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은 내가 여름이 오기 전에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고 서로 웃으며 놀리기 좋아하는 친한 사이라 이번에도 대충 넘어갈 거라 생각했었다. 표현은 그렇더라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응이 내 생각과 너무 달랐다. 친구는 ‘근데 왜 전화 안했어?’라며 속상해했다. 힘들 때는 전화 좀 하라며, 자기는 힘들면 아침이고 저녁이고 전화하지 않냐며 오히려 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해주는 내 편이라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그리고 학교에 근무하는 친한 선생님들 또한 내 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맛난 것을 함께 즐기고, 별거 아닌 일에도 본인들의 일 처럼 집중하여 고민하고, 진심으로 조언하며 이야기 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장황한 설명 없이도 키워드 만으로 서로의 고민을 표현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진심으로 걱정해줄 수 있고 유용한 해결책이나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가족들보다도 이 선생님들에게 더 의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강하지 않고, 독립적이지 않아서 항상 누군가 나의 편이 되어준다는 확신을 가져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성격인 듯 하다. 그래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확신’을 생각하며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자그마한 상실감은 금새 내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해지고 어느새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나는 모두의 진심어린 편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도 작은 힘이나마 나한테 내 편이 되어 다가오면 좋겠다.
한창 힘들었던 때, 집에 가면 항상 한숨과 풀 죽은 목소리만 뱉어내던 때의 한 아침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옷을 챙겨입고 출근을 하려 현관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갑자기 한 마디를 전했다. “오늘 옷 예쁘다~”
이 한 마디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그 한마디에 굉장히 큰 마음의 회복을 했던 것 같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인데도, 그 한마디에 나는 출근길 내내 울컥했었다. 따뜻하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내 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