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북경부자

신흥계급

by 신정훈




중국엔 셀 수 없이 많은 부자들이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 휴가철 모래사장에 버려진 담배꽁초만큼이나 많아요. 이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요. 모두가 중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국보급의 유물들을 도굴해 팔아먹었거나 외국인이 기껏 투자해 놓은 멀쩡한 공장을 “공산당의 이름으로” 빼앗아 부자가 되었을까요? 알 수 없죠. 알 수 없지만 제가 북경에서 만나본 부자들의 모습을 잠깐 소개하려 합니다. 맛보기로요.



建外SOHO

재개발을 통해 한때 북경 내 최신식의 쇼핑타운으로 거듭났던 소호에서 쇼핑하는 여성들




북경에서 제가 자주 묵는 호텔은 싸구렵니다. 아마 그 지역에선 외국인이 묵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박시설일 거예요. 호텔이란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우리네 모텔보다 조금 더 큰 규모로 흔히 빈관(宾馆)이라고 불리는 숙박시설이죠. 관광지가 가까운 몇 곳을 빼고는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중국인들이 주로 묵는 곳입니다.(빈관에도 종류가 있어 중국인이 아니면 묵을 수 없는 곳들도 많다.)


어느 날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소박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저와 엘리베이터 입구 간의 간격은 고작 30cm. 문이 열리기 직전에 웬 아주머니가 저와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급하게 끼어듭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와 20대로 보이는 아들 녀석도 잽싸게 끼어들더군요.(상기하자. 30cm다.) 문이 열리자 입구로 다 함께 몰려들면서 아들놈의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이 제 정강이를 걷어찼습니다.

"아야~"



북경의 거리를 걷다 보면 홀로 앉아있는 남성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잠깐의 휴식 중이거나 갈 곳이 없거나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쓸쓸해 보인다.




저의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 녀석, 미안해하기는커녕 제가 자신의 가방을 향해 뒷발차기라도 한 양 자신의 가방을 쓰다듬으며 오히려 흘겨보네요.(이눔아, 기대도 안했다!) 그렇게 모두가 엘리베이터를 타 보니 저와 그들 모두 최상층인 5층에 내리나 보더군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 문이 닫히기까지의 그 잠시를 참지 못하고 “닫기”버튼을 삼십 번쯤 눌러댑니다. 매우 거칠게 말이죠. 아줌마 덕분인지 엘리베이터 문이 저절로 닫혔고요.(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이었다니 대박!) 아줌마의 현란한 손놀림과 엘리베이터의 자동문에 감탄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풍겨오며 이내 눈이 따가워져요. 뭐지? 고개를 돌려보니 일행인 아저씨 오른손에 불이 붙은 담배가 들려 있네요.(내가 쳐다보자 차마 피우지는 못한다.) 오마이~


3층이나 올라왔을까, 이번엔 아저씨의 행동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지며 문의 “열기”버튼을 마구 눌러대는 겁니다.(한 손엔 불이 붙은 담배를 여전히 들고) 펌프를 발로 세차게 밟을수록 풍선에 바람이 차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듯이 북경의 엘리베이터는 버튼으로 공기가 주입되는 에어 펌프식이었나 봐요. 그러지 않고서야 누가 3층부터 열기 버튼을 누르겠어요. 그렇게 아저씨가 버튼을 오백 번쯤 눌렀을까, 마침내 엘리베이터는 5층에 도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내릴 수 있게 된 것이죠.(아저씨의 손가락 덕분에) 그러니까 그 엘리베이터는 아줌마의 손가락 힘으로 문이 닫히고 아저씨의 손가락 힘으로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던 것이죠.

아, 몰랐네...


가장 뒤에 타 엘리베이터 문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제가, 내릴 땐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렸음은 물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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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袋斜街

관광객으로 붐비는 전대거리(烟袋斜街)에서 한 소녀가 작은 하모니카를 팔고 있었다.

가끔씩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나타나 남아 있는 하모니카의 개수를 세고 돈통을 비워갔다.




이 가족들, 아까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서 봤었는데 번쩍거리는 독일산 커다란 고급 차를 타고 왔던 사람들입니다. 주차장에서 발렛파킹(valetparking)이 안된다고 소란을 피워 기억하는 것이죠. 뭔 5성 호텔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발렛을 원하는 걸까? 하며 신기해했거든요. 5층에 내리고 보니 이들의 방은 5층도 아니었어요. 내리자마자 뭐가 그리 급한지 서둘러 도미토리(dormitory)가 몰려 있는 6층을 향해 계단을 뛰어 올라가더군요.(나중에 알았지만 도미토리 투숙객들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아침을 먹기 위해 9시까지 식당을 가려 했었나 보다. 호텔을 나가다 보니 그들 세 명이 아무도 없는 식당에 앉아 식판 가득 음식을 담아 먹고 있었다.)


참고로 그 호텔(정확히는 빈관)의 일반 객실은 하루 숙박료가 당시 200위안 정도였지만 도미토리는 1박당 80위안이었습니다. 그들 세 명이 일반 객실을 이용했다면 두 개의 방이 필요했을 테니 도미토리를 이용해 절약할 수 있는 돈은 기껏 160위안인 셈이죠. 그렇게나 돈이 많은 부자가족이 왜 그런 좁고 지저분한 도미토리를 써야 했을까요. 절약? 글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관념 속 통 큰 중국 부자들과는 뭔가 달랐습니다. 중국의 부자들은 자신이 부자라는 “티”만큼은 확실하게 내주니까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죠. 남들 보란 듯 소비에 과시적 성향마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대단히 솔직한 사람들이 중국인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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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祥胡同

수입이 얼마나 되냐는 내 어리석은 질문에 "충분히~" 라고 대답했던 북경 아저씨. 아마 한 달에 내 전 재산보다 많이 벌겠지.




후통을 걷다 만나는 주택이 모두 사합원(四合院)은 아니에요. 오히려 제대로 된 사합원 형태의 집들은 흔하지 않죠. 겉보기엔 사합원과 구별이 되지 않으나 대부분은 공동의 대문을 쓰는 작은 집들의 집합일 뿐입니다. 서울 익선동의 한옥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워요. 그곳의 한옥들은 한옥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 관념 속 전통 한옥은 분명 아니죠. 경제성, 편의성 등 다양한 이유로 한옥의 형태를 살짝 차용한 근현대 식 서민주택입니다. 심지어 이름부터 한옥마을인 북촌의 집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많은 부분이 개선이라는 명목하에 현대적으로 바뀌었으니까요. 그래서 제대로 보존된 사합원들은 역사가 오래된 것들이 많고 터가 넓고 테가 번듯한 곳들은 무척이나 비싸다고 합니다. 한국 돈으로 수십억이 넘는 집들도 흔하고 백억이 넘어가는 집들도 많다고 하죠. 간혹 미국이나 유럽의 재벌들이 북경에서 수백억이 넘는 사합원을 구입했다는 기사도 종종 올라오는데 이런 집들은 집의 태나 크기와 별도로 역사적인 가치도 상당한 곳들이겠죠. 당연히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일 겁니다. 하지만 예전의 북경은 어땠는지 몰라도 현재의 북경 내, 외성 안 후통 지역엔 이런 대형 사합원들과 일반적인 주택들이 마구 섞여 있어요. 서울처럼 부잣집들만 몰려 동네를 이루는 곳이 북경엔 없습니다. 그러니 가끔은 낡은 후통을 걷다가 차고가 딸린 거대한 사합원을 만나게 되곤 하는데 뭔가 많이 어색해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랄까요.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니 주문받은 알바생이 갑자기 제로 투 댄스를 추는 것만큼이나 뜬금없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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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平門

거리를 걷다 보면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적은 종이를 펼쳐놓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만약 공안에게 걸린다면 거리 정화 명목으로 잡혀 가지만 그들이 적어낸 사연만큼이나 딱한 그들의 사정이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데 대부분은 여성들이고 이번엔 만삭의 여성이었다.




유명한 난뤼구샹(南锣鼓巷)과 연결된 어느 후통에서 우연히 이런 부잣집을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북경에선 흙을 밟아보기가 참으로 힘든데 이 집은 마당에 잔디를 깔아 놨네요. 집 주인아저씨는 작은 개와 커다란 개 두 마리를 기르며 자신의 자랑스런 집을 낯선 외국인에게 선뜻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커다란 사합원 주택에 외부 담과 연결된 별채까지 딸린 보기 드물게 큰 집이었죠. 아쉽게도 외관보다 더 근사했던 실내의 사진을 못 찍게 했지만(실내엔 작은 분수가 딸린 장식장과 상아 장식된 포켓볼 당구대도 있었다.)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눠볼 수는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봤고 그는 말해줄 수 없지만 충분히 번다고 대답했어요. 아! 이 얼마나 여유 있어 보이는 대단한 액수인가요. “$ 충분히”라니~ 저도 저에게 뱃살과 식탐 외의 충분한 그 무엇이 있어 봤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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颐和园

건륭제가 터를 닦고 그 유명한 서태후가 가장 많이 이용했다는 이화원의 인공호수인 쿤밍호(昆明湖)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어느 가족. 나도 한번 타 보고 싶었으나 어마무시한 요금에 바로 포기. 인공호수로 알려졌으나 애초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천연호수였고 원나라 시절 본격적인 굴착작업을 통해 규모를 키워 후로 명, 청 시대를 거치며 중국 황실의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하나의 모습으로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중국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게 무엇이든 누구보다도 빨리 타고 빨리 내리세요. 폐병에 걸려 죽든, 정강이가 부러지든 남의 사정 따위에 개의치 마시고요. 쓸데없는 낭비도 최대한 줄이셔야 합니다. 공짜라면 그게 무엇이든 찾아 먹어야 하고요. 그러면 당신도 잔디가 깔린 멋진 사합원에서 커다란 개를 키우며 날마다 상아 장식이 화려한 분수대에서 세수를 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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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单

젊음의 성지인 시단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져 패트병을 줍는 어느 노인. 북경에선 종이나 고철은 물론, 패트병까지 모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낭 옆구리에 먹고 난 패트병을 꼽고 사람 많은 곳을 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패트병이 사라졌던 경험이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패트병을 모으는 사람들이 몰래 뽑아 간 것인데 이들의 손놀림도 놀랍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음료가 넘은 병은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경에서 만나는 부자들은 서민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고,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저 너머 딴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외계인처럼 느껴질지 몰라요. 그들의 돈벌이가 무엇이 되었건 값싼 노동력의 중국에서 그들의 위치는 혁명 후 그들이 그토록 비토하던 부르조아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착취 없는 부의 축적은 구조상 불가능하니까요.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그런 모양새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인들에게 그들의 과오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공산당의 붉은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비토해왔던 자본가들이었어도 지금의 중국에서 부자라는 존재는 모든 이가 부러워하는 대상일 뿐이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의 사람들이 부르주아를 꿈꿉니다. 모두의 인생 목표이자 간절한 꿈이죠. 왕홍을 꿈꾸며 길거리에 넘쳐나는 어린 틱톡커(tiktoker)들이 그러한 지금 중국 젊은이들의 변화된 가치관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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潘家園

북경, 아니 중국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인 판자위엔. 보기에도 부자인듯한 중년의 여성이 골동품을 고르고 있다.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던 등소평의 선부론(先富論)이라는 논리만큼 허황된 것도 없습니다. 우리식 표현대로라면 “낙수효과” 정도 되겠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죠. 표현 자체로도 우스꽝스럽고 내용은 끔찍해요. 허황되고 사기에 가깝습니다. 이상적 선의가 깔린 기대와 달리, 이기적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인간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부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이런 표현, 선동은 흔히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곤 합니다. 선부론, 낙수효과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이니까요.


“내가 먼저 많이 가지고 충분해지면 너도 줄게. 그러니 조용히 기다려. 시끄럽게 굴지 말고.”


그래서 싫어합니다. 이기적인 인간 세상에서 부자는 더욱더 부자가 되려 하지 남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일은 결코 없으니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천석지기가 되면 만석지기를 꿈꾸듯 인간의 욕심에 끝이 있을까요. 아마 등소평은 이미 알았을 겁니다. 똑똑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애초에 인민들에겐 반항할 작은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 오로지 개혁과 개방을 두려워하던 기존의 권력층을 위한 것, 다시 말해 “내 뜻을 따르면 너에게 지금 보다 더 많은 것을 줄게”라는 뜻이었겠죠.


이런 모순은 우리도 많이 봐왔어요. 정치인들이 낙수효과 운운하며 그들과 쿵짝을 하는 대기업들에게 국민들의 혈세를 퍼부으면서도 정작 서민들에게 필요한 금융지원이나 세제 혜택 등 소위 마중물엔 무척이나 인색한 모습들을요. 그러한 정책을 표퓰리즘,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그들의 위선과 탐욕을 말입니다. 복지라는 단어만 입에 올려도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죠. 복지야말로 돌고 돌아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너무 나간 이야긴가요? 그래도 쓰다 보니 뭔가 슬프네요. 아무튼 중국, 북경엔 부자들이 많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꿈꾸며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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