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맛 없는데.
아침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집안 가득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다.
아 새해 아침이니 떡국이구나.
떡국이라면 좋아하지.
거실로 나가보니 딸아이는 자기 방에서 여전히 자고 있고
와이프 혼자 식탁에 앉아 떡국을 먹고 있네.
어쩌지
어떡할까.
모른척 옆에 앉아 먹을까
떡국은 불면 맛 없는데.
와이프와의 냉전은 오래 되었다.
아마
몇 달은 되었을게다.
부부싸움은 일상이지만 이렇게 오래 가긴 처음이다.
보통은 어색함을 못 견딘 내가 먼저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겠지만
뭔가, 이번은 다르다.
내 속에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흡사 잔불같은 무언가가 여전히 타고 있으니까.
활활
아니 타닥타닥 인가?
아무튼 이건
나이를 먹어 내 속이 좁아졌다기 보다는
누구라도 내용을 알면
누구라도 내 하소연을 듣게 되면
내 어꺠 위에 손을 올리고 토닥일 그런 억울함이 좀 있다.
하지만 떡국이다.
무심한 듯 내 방으로 들어와도 문틈으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참 좋다.
아, 떡국은 불면 맛이 없는데.
어쩜좋아.
하지만 체면을 구기지 않고 떡국을 먹으려면 딸아이가 있어야 한다.
아빠 밥먹어~ 라고 외쳐주면 그제야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앉으면 되니까.
부른다고 냉큼 튀어 나가도 안된다.
천천히
수저도 천천히 들고 식사 내내 근엄한 표정을 잃어도 안되지.
"나는 아직 화가 안 풀렸지만 성의를 봐서 먹는다~ "는 자세를 유지해야 해.
갓 꺼낸 김장 김치와 뜨끈한 떡국의 발란스가 아무리 좋아도
동치미가 톡 쏘며 아무리 시원해도
신음소릴 내거나 눈이 동그래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새해 첫날부터 늦잠이야.
이제 성년이라고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다 왔으니 일찍 일어나긴 글러 보인다.
아니 그래도 새해, 아니 떡국인데.
얼음 낀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안되겠다.
결국 참지 못하고 화장실이라도 가는 양 무표정한 얼굴로 와이프를 지나쳐
그녀의 사각에서 급히 90도로 몸을 꺽어 딸아이의 방으로 달려 들어 가
자고 있는 아이의 귀에다 속삭여 본다.
"일어나~ 떡국이야~"
"응.........."
"일어나! 떡.국. 이라고!"
"아 자는데! 어쩌라고~"
"아니... 떡국이라니까?"
"아... 먼저 먹어 쫌!!"
"아니... 떡국은 불면 맛없으니까... 일어나 같이 먹자는 거지.."
"아, 나는 더 잔다니까?"
"그럼 한숟갈만 먹고 자. 너 약도 먹어야 하잖아~"
"아, 제발 쫌!! 왜? 엄마가 떡국 안줘?"
"무슨? 아빠가 먹음 되지?"
"그러지말고 엄마한테 달라 해~"
"아니라니까? 뭔 소리야~ 아빠가 먹음 되지 뭔 엄마가..."
"엄마! 아빠가 떡국 달래~~"
"그만! 스, 스톱!!!"
황급히 손으로 딸아이의 입을 틀어 막는데 이내 등 뒤의 문이 열리며...
"딸아~ 아빠 나와서 떡국 먹으라 해~ 으이그.."
떡국은 여느날 처럼 맛있었다.
얼음이 사르르 낀 동치미도 시원했고.
다행히 많이 불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꾸만 귀에 맴도는 한마디.
"으이그.."
새해 아침부터 치열하게 사는구나 나.
뭔가 대견하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