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꽃
영화 “낭만자객”이란 영화를 보면 바보같은 주인공들이 나와 러닝타임 내내 바보짓만 하다 허무하게 끝나 버립니다.(관객들까지 바보를 만든 채로) 영화에서 관념 속 보편적인 낭만은 찾을 수 없었으니 영화제목에 쓰인 낭만이란 단어가 그저 추억의 뜻으로 쓰인 것이라면 영화에서의 낭만은 허술하기 그지없던 70년대의 한국 영화를 떠올려줍니다. 당시의 영화판이 소수에게 라도 낭만적이었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은정교(银锭桥)
교복 대신 수수한 운동복을 입은 북경의 학생들은 들꽃처럼 예쁘다.
반면 제목의 가벼움과는 달리 영화 “품행제로”는 시대의 낭만을 나름대로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기억해요. 청바지와 통기타, 롤러스케이트라는 전통적인 소재(시대를 나타내주는 식상한 영화적 장치들)의 도움 말고라도 그 시절, 그 세대의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이 영화 전반에 비교적 잘 살아 있으니까요.
後海
묘족 소녀.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나를 보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얼마든지 찍어줄 수는 있겠지만 사진을 전해줄 방법을 모른다 했지만 상관없으니 찍어 달라며 부탁했다. 촬영 내내 남자친구는 우리의 옆에 서서 연신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짧은 지식으로 영화평이나 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상대 여배우를 향해 보여줬던 풋풋한 짝사랑의 감정(그래서 단순한 스토리의 학원 드라마를 시대의 낭만이 깃든 청춘물로 끌어올린)은 엉뚱하게도 북경에서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합니다. 엉뚱한가요? 제가 생각해도 조금은 엉뚱하지만 글재주가 부족한 저로서는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가 없어요.
福祥胡同
카페의 연인. 북경에선 흔치 않은 정장을 입은 남성과 마주 앉은 여성의 두꺼운 머플러가 눈에 띄었다. 창 너머 중정의 풍경이 무척이나 예뻤다.
북경의 중고등학생들은 우리와 같은 교복 대신 운동복을 입어요. 그게 중국학교들의 교복입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운동복을 입죠. 심지어 오래 입어와 익숙해진 학생들은 대학생이 되어도 일상에서 자주 입습니다. 학교마다 색상과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긴 해도 이 옷들은 어린 학생들을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게끔 해줘요. 과장된 멋을 내지 않은 수수한 머리에 단순한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은, 품과 기장을 줄여 교복 같아 보이지 않는 옷을 걸치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온갖 멋을 내며 어두(語頭)에 “졸라”, “열라”를 붙이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한국의 또래들과 정말이지 많은 비교가 되곤 합니다. 실제론 그들의 입에서 하루종일 욕과 험한 말만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라도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저의 눈엔 그저 학생답고 순수해 보이는 것이죠.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하나같이 예쁩니다.
연대사가 맥도날드
구러우 인근 맥도날드에서 공부중인 여고생. 미국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지금은 결혼도 했겠구나
그들이 백주대낮에 대로변에서 애로 물을 찍어대고 떼를 지어 천안문 지붕 위에 기어 올라가 주삿바늘을 팔뚝에 꼽고 흔든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해 보여요. 똑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남학생은 남학생답고 여학생은 여학생다워요. 요란한 어른들의 장식을 빌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구별이 되게 행동합니다. 텔레토비처럼 똑같은 운동복을 입었는데도 말이죠. 이런 모습이 특별하다기보단 북경의 학생들은 그저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기특하고 예쁜 것이고요.
大钟寺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기찻길을 걷기 좋아한다. 아마 연인들은 이래야 한다는 고착관념(固着觀念)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낭만도 좋지만 위험하게 철로는 걷지 마....
제 앞으로 교복 대신 운동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자전거를 함께 타고 지나갑니다. 남학생은 자전거의 핸들을 잡고 여학생은 옆으로 다리를 가지런히 펴고 앉아 두 손은 남학생의 허리를 감았습니다. 까까머리의 남학생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렸네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튼튼할 두 다리로 페달을 힘껏 밟으며 한껏 과장된 목소리를 내고, 긴 머리를 고무줄 하나로 질근 묶은 뒷자리의 여학생은 앞자리 남학생에게만 겨우 들릴 만큼 수줍게 웃습니다. 빨리 달릴 이유가 없는 자전거는 느릿느릿 후통을 가르며, 그렇게 제게서 멀어져 갑니다.
知春路
북경의 어린 연인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달리는 내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북경에서 이들 순수한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만 싶습니다. 수소문해 북경에서 여학생들이 가장 예쁜 학교를 다니는 것이죠. 그리고 튼튼하고 뽀대나는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부러운 것은 나이나 순수함 따위가 아닌 예쁜 여자친구였던 것이죠. “졸라”예쁜 여고생을 꼬셔내 “열나” 달려보는 겁니다. 낭만은 언제나 바라보는 입장에서나 느껴지는 것, 내가 어떤 심보로 패달을 밟는지 알게 뭐람.
오빠! 달려!!!
오우~ 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