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행

그리고 북경이라는 도시

by 신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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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기억에 남지도 않을 식어버린 감자튀김과 같다 느껴질 때, 특별히 재미있지도 슬프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내일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평범하고 밋밋한 나날들의 연속일 때, 오히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합니다. 이런 무정한 세상을 살면서 나쁜 일도 슬픈 일도 없이 그저 심심할 뿐이니까요. 그러나 흡사 날마다 마주하는 흰쌀밥과 같고 화장실 벽에 걸린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습니다. 머리론 소중함을 알겠으나 가슴으론 그저 무감각에 무감동이니까요. 심심한 너가 사.실.은.행.복.한.거.야. 라고 누가 말을 해줘도 대답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심드렁합니다.

이렇듯 심심함으로 상징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마치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를 마주한 사춘기 여중생의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요.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못 느낍니다. 그저 지겹고 따분해 가끔은 짜증도 나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평온하기 그지없는,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나날임에도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이런 나날이 계속될 때 우리는 현실에 만족을 못 하고 이곳과 다른 장소로의 여행을 꿈꾸곤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잠시나마 바꿔줌으로써 색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가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듯.



紫禁城 垓子

적의 침입을 막고자 자금성 주위를 파고 물을 채운 해자(垓子)를 따라 상의를 풀어 헤친 노인이 걷고 있다.




창밖으로 야자수의 푸른 줄기가 드리우고 강렬한 태양, 아름다운 쪽빛의 바다. 만년설로 뒤덮인 험준한 산봉우리, 하얀 서리 같은 차가운 입김, 그 끝이 가늠되지 않는 깊고도 깊은 거친 협곡, 붉은 석양을 등져 사막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대상을 태운 낙타의 무리, 혹은 버팔로 떼를 향해 눈보라를 헤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광활한 몽고 초원 위 게르에 앉아 노린내를 풍기는 양 갈비를 거칠게 뜯거나 북극고래 떼를 쫓아 카누의 노를 젓는 것이죠. 이런 상상 속의 자신은 굵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로 이리 말하곤 합니다.

“후, 악마의 미소처럼 찢어진 크레바스를 향해 몸을 던졌지! 그러지 않았다면 분명 놈의 앞발톱이 내 등을 마구 할퀴어 버렸을 거야~”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먼 산을 응시하며 가래 끓는 듯 걸걸한 목소리로 말이죠. 좋네요. 멋집니다. 그러나 북경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코파카바나 같은 근사한 해변에 누워 “부끄러워만 하지 말고 이리 와 썬크림 좀 발라 주셈~” 하며 속삭이는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비키니 아가씨들도 없고, 침입자에 약이 올라 야자열매를 집어 던지는 원숭이도 없고, 달콤한 스니커즈를 빨고 있는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굶주린 회색곰도 없으며, 작은 창끝으로 당신의 품격 있는 커다란 배를 콕콕 찔러대며 침을 흘리는 식인종들도 없습니다. 북경엔 그런 것들은 없습니다. 없어요. 그럼 무엇이 있느냐. 북경엔 무엇이 있을까요. 글쎄요. 딱히 생각나는, 글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무릎을 탁! 치시며 “아! 그래, 그거!” 하실만한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 글이 북경과 북경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러분은 북경만의 아이코닉한 무언가를 찾고자 지겨운 글의 홍수 속을 허우적거리고 계실테니.. 지금부터 북경만의 무엇, 여행지로서 여행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知春路

북경의 골목에서 만나는 고양이. 복경의 오래된 골목엔 고양이들이 많다.





인연이 닿아 북경소풍을 마주한 당신을 북경의 매력 속으로 퐁당(무척이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빠트릴 만한 건 무엇이 있을까요. 이제부터 북경이 여행지로서 우리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매력은 무엇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기로 해요. 하지만 먼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글들의 내용은 지극히 저자 개인의 경험과 감상이라는 겁니다. 더불어 제가 조금은 이상한 사람(혹은 성향)이라는 점도 미리 밝히고 시작할게요. 주관이 뚜렷하나 방향성에 있어 삐딱하고, 일관성 따위는 조금도 없으며, 전체적으론 지극히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을요. 남들은 출세를 위해 책가방을 싸 서울로 향할 때 홀로 제주로 건너가 왜 나는 말로 태어나질 못했는가를 고민하는 그런 타입인 것이죠. 하지만 북경과 북경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저도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써 내려가겠습니다. 개인적 치기 어린 감상을 배제하고 모두가 공감할 그런 관점을 유지하면서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러니 팔짱을 끼고 “그러등가 말등가~” 하시지만 말고 집중해 주세요.

책을 집어던지는 짓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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