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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Dec 09. 2022

2022 회고 ③ - 시장과 사회

'나노사회'의 명과 암

시장과 사회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본다면 2022년의 변화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트렌드는 ‘나노사회’였다. ‘나노’는 10-9 크기를 일컫는 말로, ‘1나노미터’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1미터(M)를 10억 개로 쪼갠 크기를 말한다. 즉, 나노사회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 산업의 형태, 사회적 가치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극소단위로 쪼개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노사회 키워드가 전망한 대로 2022년의 시장과 사회는 ‘나노화’의 흐름을 보였다. 시장은 더 작은 집단의 정밀한 수요에 ‘맞춤화’하고, 사회는 부정적 측면에서는 ‘갈등과 분열’, 긍정적 측면에서는 ‘다양성’의 화두가 주요하게 떠올랐다.




먼저 시장의 나노화를 잘 나타내는 현상 하나를 뽑자면, ‘C2C(Consumer to Consumer)’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기업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 간에 생산-판매가 이뤄지는 새로운 거래 형태이다. 대단한 기술력이 없더라도 컵·티셔츠·문구 등 기존 제품에 이미지를 입히기만 하면 되는 ‘굿즈’ 상품의 경우 이러한 C2C가 활발하게 일어난다. 굿즈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이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보다 팬의 마음을 저격하는 디자인 도안이기 때문에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는 팬이라면 직접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C2C 커머스 플랫폼 '마플샵'


‘마플샵’은 C2C계의 주목받는 POD(Print on Demand·주문 제작 인쇄) 커머스 플랫폼이다. 즉, 판매자가 디자인만 설정하면 상품의 제작부터 판매, 배송까지 대신해주는 것인데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굿즈를 판매하려는 크리에이터들, 독특한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2022년 트렌드 키워드로 제안한 ‘Like 커머스’는 바로 이처럼 소비자들에게 ‘좋아요(Like)’를 받는 것들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시장이 된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였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구조적으로 표현해본다면, 전통적으로 생산자가 물건을 만들어 선보이면 소비자가 살지 말지 고르는 ‘생산→소비’의 흐름이 이제는 역류하여 소비자가 먼저 사고 싶다고 표현하면 생산자가 그에 맞게 만드는 ‘수요→공급’의 흐름이 된 것이다. 마플샵의 경우 제작 수량이 한 개부터라도 생산이 가능하고 등록된 판매자는 5만여 명에 달한다. 이는 시장이 점차 단 한 명의 소비자를 위해 작동할 만큼 나노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제조업에서는 특히 화장품 산업의 나노화가 눈에 띈다. 화장품의 경우 화장품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개인이라도 기획만 있으면 ‘화장품책임판매업자’로서 제품을 위탁 생산해 판매할 수 있다. 새로이 화장품책임판매업자로 등록한 건수를 보면 2021년 2632건, 2022년 5333건으로 화장품 유통 및 판매처가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화장품 산업에서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업자 개발 생산)이라 부르는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일어났다. 앞서 언급한 POD의 경우, 이미 속성이 정해진 제품에 겉옷만 입히는 방식이지만 화장품은 원료나 제형 등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ODM은 제조업체에서 이러한 연구·개발 단계를 대신 수행해주는 것이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화장품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해온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이러한 ODM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코스맥스 플러스’, ‘플래닛147’을 시작했다.




시장의 나노화와 달리, 사회의 나노화는 ‘갈등’을 수반해 다소 암울하게 비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서로 다른 입장이 대치해 사회적 갈등이 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에서는 ‘내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할 만큼 분열이 극심해진 이슈가 대두했다. 바로 미국 연방 대법원의 ‘낙태제도’에 대한 판결이었다. 판결이 나온 이후로 잠시 수그러드는 듯했으나 11월 중간선거를 치르며 다시 정치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대립의 심각성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 중간선거를 대비하는 보안 대책이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설치된 30개의 선거사무소 중 15곳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경찰을 호출할 수 있는 ‘패닉 버튼’을 만드는 등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노사회의 일면을 잘 드러내는 것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고립’ 이슈이다. 통계청은 2009년부터 2년마다 ‘인적·경제적·정신적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사회적 고립도’ 조사를 해왔다. 2022년 1월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 전 조사 때보다 6.4% 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27.2%),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20.4%)는 응답도 나왔다. 이러한 변화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노사회가 부정적으로만 해석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혼인·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중 매체에서도 그러한 가치관 변화를 솔직하게 마주한다. 예를 들어 연애 예능은 항상 인기가 많은 주제지만 최근에는 결혼·이혼·재혼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연애를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심이 높다. MBN ‘돌싱글즈’는 이혼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에 문제를 제기하고 TVING ‘결혼과 이혼 사이’는 관계가 위기에 처한 부부의 심리변화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더 파격적으로 여겨지는 주제도 등장하고 있다. OTT 서비스인 ‘웨이브’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 소수자 관찰 예능 2편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으나 사회가 다양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떻게 다양성이 갈등과 분열이 되지 않고 포용과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개개인의 욕구가 중시되고 선택이 보장되는 나노사회로의 전환은 거스르기 어려운 큰 흐름이다. 다만 자유가 반드시 단절이나 충돌로 이어질 이유는 없다. 2023년에는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자유로움 속에서도 연대와 연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기를 기대한다. 






본 내용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2022 트렌드>에 연재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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