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전국구 백화점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요?
아래 글은 2021년 09월 29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9월 23일 대구 신세계백화점의 1조 원 클럽 가입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백화점 단일 점포로 연매출 1조 원을 달성한 곳은 고작 5군데에 불과한데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센텀시티점,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 모두 각사를 대표하는 점포들입니다. 이처럼 1조 원의 상징적인 의미가 큰 데다가, 판교점이 세웠던 기록(5년 4개월)을 3개월 앞당기면서 최단기간 달성이라는 타이틀마저 가져가게 된 것인데요.
이러한 소식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대구 신세계의 존재감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1조 원 클럽의 면면들을 살펴보면요. 일단 대부분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유일한 지방 점포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 상권이 대구보다 크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1조 원 매출을 달성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현재의 더 현대 서울처럼 오픈 초기부터 온갖 화제를 다 모았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배후 상권도 비교적 작고, 화제성도 덜했던 대구 신세계가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했어요" 역대 수능 만점자들이 인터뷰 때마다 하는 단골 멘트인데요. 대구 신세계의 성장 스토리를 보면 정말 몰링의 교과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구 신세계는 부산 센텀시티점에 버금가는 규모에 아쿠아리움, 실내 테마파크 등의 콘텐츠를 보유한 복합 쇼핑몰 형태의 백화점으로 시작했는데요.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하여 고객을 모으는 몰링의 정석을 그대로 적용한 겁니다.
반면 기존 대구에 있던 백화점들은 전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쇼핑을 위한 공간 구성에 집중했었던 겁니다. 물론 이들은 대구 최대 상권인 동성로나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수성구 등의 배후상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몰링에 신경을 덜 쓴 측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대구 신세계가 입점한 동대구 지역은 복합환승역이 생기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몰링으로 승부를 걸었던 겁니다. 사업비 8,800억 원을 들였던 도박은 결국 성공을 거두고요. 개장 1년 만에 지역 내 백화점 1위 자리에 올라선 것은 물론, 오픈 3년 차에는 대구 소비지형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합니다.
그런데 복합 쇼핑몰, 수도권에 사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개념입니다. 2000년대 후반에 이미 본격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신세계는 특히 2009년 선보인 영등포 타임스퀘어, 2016년 오픈한 하남 스타필드 등으로 연타석 홈런을 때린 몰링의 명가이기도 합니다. 결국 신세계는 수도권에서 검증된 모델을 대구에 구현하면서 예측된 성공을 거둔 거라 볼 수 있고요. 그랬기에 현대백화점 판교점처럼 화제성을 낳지는 못했지만, 연매출 1조 원이라는 영광은 오히려 더 빨리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몰링은 고객뿐 아니라, 브랜드들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의 매출을 좌지우지한다는 3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이른바 에루샤가 대구 신세계에 모두 입점하게 된 것인데요. 이로써 향후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되었고요. 특히 현대백화점은 부산에 이어, 대구에서도 에루샤를 신세계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산 센텀시티점, 대구 신세계 등 몰링형 점포들에게 주력 명품 브랜드들을 내주며, 코너에 몰린 현대백화점은 절치부심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을 통해 더 고급화된 몰링을 선보였고요. 올해 더 현대 서울을 오픈하며 광역형 점포를 넘어서, 관광 명소가 되는 전국구 매장이라는 새로운 미래를 제시합니다.
더 현대 서울은 기존 복합형 쇼핑몰의 요소를 갖춘 것은 물론이고, 이름부터 알 수 있듯이, 서울의 랜드마크를 표방하였는데요. 파격적인 공간 구성과 혁신적인 MD를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엄청난 수의 고객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특히나 매출의 절반은 지방 거주 고객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인데요. 사실 기존 복합 쇼핑몰도 전통적인 점포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을 배후로 두었을 뿐, 특정 지역을 기반이라는 한다는 점은 동일하였습니다. 하지만 더 현대 서울은 아예 지역 상권을 초월한 매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요. 그 덕에 에루샤 없이도 오픈 첫해부터 매출 8,000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혁신의 바람은 빠르게 지방까지 퍼져 나가고 있는데요. 지난 8월 27일 오픈한 신세계 아트&사이언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세계 아트&사이언스는 단순히 매장의 대형화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상 최초로 과학관을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등 과학도시와 엑스포라는 대전의 헤리티지를 매장에 담았다는 것이 차별점인데요. 대전 등 중부 지방의 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전국구 명소로 떠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