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번 투자 유치는 무신사에게 있어 신의 한 수가 될지 모릅니다
무신사가 신규 투자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2021년 3월 1,300억 원의 자금을 수혈한 이후 2년 만에 일인데요. 기사에서 나온 숫자는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거론되는 기업 가치가 무려 4조 원, 희망하는 투자 규모가 4,000억 원 안팎이라고 알려졌거든요. 마지막 투자에서 평가받은 기업 가치가 2조 5,000억 원 수준이었으니, 60% 정도 상승한 셈입니다. 물론 작년 이맘때였다면 이러한 가격표가 수긍이 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니콘들의 기업 가치가 반토막 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무신사의 가치만 상승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무신사는 성장과 수익이라는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몇 안 되는 기업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매출은 41% 증가하고, 영업 이익률은 11.6%를 기록하면서 이른바 '40의 법칙'을 가볍게 충족시켰고요. 아마 작년에도 이 못지않은 실적을 기록했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40의 법칙 : 지속 성장하는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익률과 성장률을 더해 40%를 넘어야 한다는 이론
그렇기에 모두가 할인에 나선 이때, 무신사는 오히려 과감하게 본인의 몸값을 올릴 수 있었는데요. 이렇듯 무신사에게 비싼 가격표가 붙은 이유를 깨닫게 되면 문득 다른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무신사는 굳이 왜 지금 신규 투자 유치에 나선 걸까요? 다시 호황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어차피 흑자를 내고 있으니,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었을 거고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무신사를 비롯한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이 언젠가는 부딪혀야 하는 2가지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국내 시장의 한정적인 규모에서 오는 성장 정체이고요. 둘은 시장 지배적 플랫폼의 카테고리 전문성 강화에 따른 경쟁 심화인데요. 무신사는 비교적 슬기롭게 이러한 문제에 대처해 온 편이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29CM를 품으면서 여성 브랜드 패션으로 영역을 확장하였고요. 29CM는 2022년 연간 거래액이 무려 전년 대비 77% 증가한 6,0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입점 브랜드 지원을 강화하며, 패션 전문성을 끊임없이 강화해 왔고요. 이를 기반을 종합 플랫폼의 도전을 수차례 물리쳐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슬슬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무신사의 매출 성장률은 2019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일단 전체 패션 쇼핑 플랫폼의 이용자 수가 정체되면서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건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고요. 물론 아직은 시장 내 점유율을 키워가며 성장을 어떻게든 만들고 있지만, 예전과 같이 폭발적인 수준을 유지하기는 힘들 겁니다.
또한 동시에 쿠팡, 네이버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쿠팡은 '로켓 그로스 패션팀'을 신설하며 로켓배송 역량을 기반으로 무신사에 도전장을 다시 내밀었고요. 네이버의 크림은 무신사의 솔드아웃을 압도한 걸 넘어서, 브랜드관을 선보이며 패션 중심의 종합 커머스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견된 어려움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무신사는 내부적으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자고 결론을 내린 것 아닐까요? 그리고 무신사가 선택한 출구 전략은 바로 글로벌 확장입니다. 사실 이미 수년 전부터 무신사는 해외 진출을 계속 시도해 왔는데요. 작년 마르디 메크르디가 일본에서 연매출 3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소기의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어느 정도 가능성이 확인되자, 실탄을 확보하여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거죠.
그러면 4,00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가지고 무신사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왜 해외 진출에 추가 자금 수혈까지 필요했던 걸까요?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무신사는 풀필먼트 역량 확보에 베팅할 겁니다. 이미 무신사는 자회사인 무신사 로지스틱스를 통해 올해부터 패션 브랜드 풀필먼트 서비스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을 공개하였는데요. 이를 위해 오는 3월에는 여주에 위치한 신규 물류센터도 오픈할 예정입니다.
무신사가 가장 애지중지한다는 입점 브랜드들은 이렇듯 자신들을 위한 풀필먼트 서비스에 목말라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또한 당연히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물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만 하더라도 직구/역직구 시장이 통관과 관세에 있어서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브랜드 독자적으로 이를 극복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패션 브랜드들이 물류 역량을 내재화할 순 없었고요. 따라서 무신사가 물류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만 제공한다면, 앞으로도 패션 브랜드들이 이탈하지 않고 무신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락인 요소가 될 겁니다. 더욱이 무신사 입장에서도 맨손으로 해외 진출하기보다는, 검증된 브랜드와 함께 나가는 것이 성공 확률이 더 높을 거고요.
개인적으로 국내 버티컬 커머스들은 북미보다는 유럽의 플랫폼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거대한 내수 시장 덕분에 성장 정체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북미의 플랫폼들과 달리, 유럽의 업체들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패션 버티컬만 하더라도, 영국의 아소스나 독일의 잘란도 같은 성공 사례들이 존재하고요.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 역시 자체적으로 물류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무신사 역시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선, 이제 대대적인 물류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요. 참으로 좋은 타이밍에 추가 자금 수혈에 나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