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중요한 건, 빠르게 반응하되 핵심은 지키는 겁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직원 복지 및 혜택 축소, 채용 동결은 기본이고요. 심지어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연이어 정리해고 소식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러한 '감원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애플은 빅테크 기업 중 유일하게, 그 어떤 감원 방침도 발표하지 않은 채, 독야청청하고 있어 오히려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애플의 마지막 구조조정이 바로 그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직후 진행했던 1997년의 일이라 하니, 더욱 놀라울 따름입니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에선 이렇듯 유별난 애플의 고용안정 비결을 3가지로 정리하기도 했는데요. 다른 경쟁 테크 기업들에 비해 팬데믹 기간 동안 보수적으로 채용을 진행하였고, 수익화가 어려운 사업에 과도한 투자를 집행하지 않았으며, 흔히 공짜 점심으로 칭해지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복지 경쟁에서도 한발 비켜나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운영 기조에 더해, 애플이 영위하는 사업 구조의 특성도 경기 침체를 견디기에 더 유리한 측면이 있었는데요. 일단 광고가 아닌 제품 판매가 주력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타격이 덜했고, 생산 인프라는 대부분 아웃소싱한 데다가, 애플 스토어를 직접 운영 중이긴 하나 전체 사업 규모 대비 수가 적어서 큰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애플은 특유의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경영 기조와 비즈니스 구조 덕분에 위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모든 기업이 애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성장하는 기업이라면, 때론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과감하게 판돈을 걸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아예 산업군 자체가 아예 경기를 심하게 타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최근 미국뿐 아니라, 국내 테크 기업들도 많이들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커머스 부문만 하더라도, 작년 오늘회의 갑작스러운 운영 중단에 이어, 올해 초 전해진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 플레이의 파산 위기 소식까지 많은 기업들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작은 업체들뿐 아니라, 컬리, 11번가 등은 이러한 엄혹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해 상장 철회를 선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분명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만들고 있는 곳들도 존재합니다. 작년 비록 분기 기준이긴 하지만, 첫 흑자를 기록한 쿠팡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결국 상장을 해내고 손익 분기점마저 돌파한 쏘카가 대표적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위기가 가시화되기 전부터 미리 준비했다는 겁니다. 즉 시장의 변화를 빨리 읽고, 빠르게 준비하면, 불안정한 사업 구조를 가졌더라도 경기 침체로 인한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건데요. 우선 쏘카의 경우, 박재욱 대표의 22년 회고에 따르면 22년 3-4월부터 시장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빠르게 사업계획을 큰 폭으로 수정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성장 기조에서 수익 기조를 기업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에 내부의 혼란이 당연히 뒤따랐지만, 이처럼 과감하게 방향을 튼 덕분에 쏘카는 어려움 속에서도 상장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연간 실적이 나오진 않았지만, 3분기 기준으로 영업이익이 7배나 성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연간 흑자까지 노리고 있기도 하고요.
근데 쿠팡은 쏘카보다도 더 빨랐습니다. 이미 재작년, 아니 그 이전부터 비용을 줄이고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요. 올해부턴 신사업 투자도 과감하게 줄이면서 더 적극적인 수익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를 잘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쿠팡의 고용 인원수인데요. 혁신의숲이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끝을 모르고 올라가던 고용 인원은 작년 1월을 정점으로 오히려 서서히 줄기 시작합니다. 작년 12월부턴 배송 인력인 쿠친을 자회사로 이관하는 등 인력 운영 효율화에도 나서고 있고요. 물론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여러 잡음을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쿠팡이 이러한 노력 끝에 손실을 줄이고, 결국 흑자까지 만들어낸 걸 간과할 순 없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애플처럼 안정적인 비즈니스 구조는 가지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결국 이처럼 경영진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같은 위기라도 기업이 체감하는 정도는 달라지게 됩니다. 애플은 처음부터 보수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비교 기업 대비 성장 속도 자체는 느렸지만, 대신에 구조조정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영 전략이 항상 옳진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쿠팡과 쏘카의 의사결정에도 분명 어느 정도는 내부 반발이 있었을 겁니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여전히 시장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이들이 핑크빛 전망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전략적인 일보 후퇴가, 위기가 왔을 때는 더 큰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실제 쿠팡은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이 주춤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거래액을 늘려가고 있고요, 쏘카는 새로운 신사업 비전을 밝히며 다시 도약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대책들을 연일 발표 중입니다. 대부분은 채용을 비롯한 투자를 줄이고, 복지를 축소하는 등 비용을 무조건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혹시 성장기에 내렸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트렌드를 쫓아 무조건적인 비용 절감에 나서기보단 지킬 건 지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