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는 달라진 접근법으로 새로운 전성기대를 열 수 있을까요?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12월 21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이 국내 최초로 연 매출 3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번 신기록의 배경에는 당연하게도 탄탄한 VIP 고객층이 이었습니다. 구매 고객 중 절반 가량이 VIP일 정도로 신세계 강남을 향한 충성도는 높았는데요. 이와 동시에 핵심적인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2030 세대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내부 관계자 역시 지난해부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대거 들여온 것이 영패션 수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하였는데요. 신세계 강남뿐 아니라, 더현대 서울이나 롯데 잠실점에도 이러한 흐름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올해 또 주목할만한 트렌드는, 국내에서 이렇게 성공을 거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하나둘 해외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반응도 뜨겁습니다. 올해 매출 1,000억 원 고지를 넘으며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브랜드가 된 마뗑킴은 일본 첫 팝업 스토어에서 단 12일 만에 매출액 5억 원을 기록하였고요. 무엇보다 팝업 기간 내내 매일 100명 이상의 대기줄이 이어질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무신사가 오사카에서 연 팝업스토어 또한 큰 호응을 얻으며, 일주일간 2만 명 넘게 인파가 몰렸다고 하는데요. 내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 러시가 이어질 걸로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타진하게 된 데에는, 해외 관광객들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과거 해외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주로 사가는 건 아무래도 화장품이었습니다. 명동 화장품 거리는 이를 상징하는 곳이었는데요. 올해 기준으로도 명동 상권에 위치한 올리브영 매장들의 외국인 매출 비중이 73%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관광객들의 관심이 패션 브랜드로 옮겨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고무적이었던 건 이들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정식으로 해외 진출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들 자체가 인스타그램 등 SNS를 기반으로 성장하여, 이미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국 고객들에게도 알려졌고요. 수년간 이어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강제 해외 진출을 하게 된 겁니다.
예를 들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의 경우, 블랙핑크 제니가 이를 착용한 사진이 다수 노출되면서 해외에서도 본국 프랑스가 아닌 한국발 글로벌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요. 플래그십 스토어 매장이 해외 관광객들의 투어 리스트에 오르며, 한남점과 홍대점의 외국 고객 비중이 70% 이상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신세계 강남점 같은 백화점들 역시 이에 편승하여 외국인 매출 증가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고요. 무신사 같은 경우, 무신사 홍대와 같이 마련한 오프라인 거점들에 외국어 가이드는 물론, 외국어 사용이 가능한 직원들을 다수 배치하여 적극적으로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디자이너 브랜드들 역시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해외 고객들이 먼저 찾아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속하는 브랜드가 되려면 반드시 글로벌 시장 개척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요. 소비 트렌드 변화로, 국내에서 메가 브랜드로 성장하는 길 자체가 매우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과거만 하더라도, 국내 시장 만으로도 충분한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매출 1,000억 원 이상의 브랜드를 지칭하는 메가 브랜드는 모두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을 이끄는 메가 트렌드 자체가 소멸하는, 취향의 파편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처럼 획일적인 트렌드가 존재하고, 이를 활용하여 큰 볼륨을 만드는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들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들의 창업자들 자체가 이를 원하지 않기도 합니다. 박화목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르디 메크르디는 절대로 멋없는 건 안 하는 브랜드라고 확고하게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대중성과 타협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색깔을 지키는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덕분에 요즘 고객들의 열렬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브랜드가 영속하려면, 어찌 되었든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긴 해야 합니다. 대중성을 쫓기보단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성장까지 놓치지 않으려면 결국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글로벌까지 염두에 두고 기획하는 브랜드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물론 과거에도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브랜드들은 다수 있었습니다. 첫 중국 신화를 열었던 이랜드의 티니위니부터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F&F의 MLB까지, 다양한 선례들이 존재하는데요. 다만 이들은 모두 대기업들이 만든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앞선 사례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선 현지화를 통해, 해당 국가의 고객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캐치하였고요. 자본력과 현지 유통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단시간 내에 공격적을 확장하여 대중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만이 택할 수 있었고요. 또한 지나친 현지화로 다른 국가로 확장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현지화보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고, 역으로 이를 좋아하는 고객들을 찾는 식으로 확장을 해 나갑니다. 그렇기에 개별 국가의 규모는 작더라도, 북미, 유럽,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동시에 공략하는 브랜드들도 꽤나 보입니다.
특히 이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에이전시와 플랫폼 기업들의 존재는 이들의 최대 약점인 부족한 자본마저 극복하게 돕고 있는데요. 아이디얼피플 같은 글로벌 에이전시 회사들은 단순히 해외 바이어들에게 브랜드를 소개하는 걸 넘어서서, PR과 물류 등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며 패션 브랜드들을 지원 사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신사, 29CM, W컨셉과 같은 플랫폼들도 브랜드와의 동반 해외 진출에 매우 적극적인데요. 이들 플랫폼들도 국내 시장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글로벌 확장을 꿈꾸고 있는 데다가, 브랜드와의 관계성을 강화하는 것이 플랫폼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무신사는 앞서 소개한 아이디얼피플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기까지 했고요.
여기에 더해 마뗑킴을 키운 하고하우스처럼 아예 브랜드 인큐베이팅을 전문적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브랜드들을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고요. 개별 브랜드 단위로는 갖출 수 없는 강력한 지원 조직 및 자본력을 가지고 있어, 가깝게는 신진 브랜드들의 오프라인 진출, 멀게는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푸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아마 곧 신진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들 중에서도 티니위니, MLB, 휠라처럼 거대한 성공을 거두는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2024년은 이들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본격적을 해외에 진출하는 원년이 될 전망입니다. 과거 해외 진출은 상당히 긴 호흡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바이어들을 거쳐 편집샵에 입점하는 건, 최소 6개월 정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었고요. 따라서 고객 반응을 확인하여 다시 준비하려면 1,2년은 우습지 않게 지나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해외 관광객들을 통해 1차 검증을 이미 마친 상황이고요. 에이전시나 플랫폼을 통해 팝업스토어를 열어 빠르게 고객 반응을 체크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예 이제는 매장을 오픈하는 형태로 해외에 진출한다고 하는데요. 내년 3월 일본에서 매장을 오픈할 거라고 밝힌 마르디 메크르디가 대표적입니다.
박화목 대표는 한국에서 3년에 걸쳐 이룬 것을 일본에서는 1,2년 안에 이룰 각오로 달릴 거라며 포부를 밝혔는데요. 이처럼 한국에서 검증된 성공 공식이 그대로 통하기만 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여러 브랜드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지도 모릅니다. 과연 이들의 도전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BTS 이후, 케이팝의 성공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듯이,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빠르게 등장하고, 시장 전체를 바꿔나가면서 성공사례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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