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주도권, 오히려 개선된 이익, 꾸준히 성장 중인 해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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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CJ제일제당 간의 납품가를 두고 일어난 갈등, 이른바 '햇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발발 초기만 하더라도, 업계에서는 한두 달 이내에 해결될 거라고 전망하곤 했는데요.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쿠팡에서는 여전히 로켓배송을 통해 햇반과 비비고를 구매할 수 없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쿠팡과 갈등을 벌이고 있던 제조사들이 거래를 재개하며 상황이 다시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8월 크린랲을 시작으로, 올해 1월 LG생활건강이 다시 쿠팡 로켓배송에 입점한 것인데요. 이들이 결국 쿠팡과 다시 손을 잡은 건, 쿠팡의 영향력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쿠팡은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가장 매출 규모가 큰 유통기업이 되었고요. 이에 따라 이미 수년 전부터 LG생활건강이 쿠팡에 다시 물건을 공급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물론, 주요 제조사들이 쿠팡 전담 조직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이제 업계의 시선은, 과연 CJ제일제당마저 쿠팡과 거래를 재개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는데요. 나름의 취재를 해본 결과, 아직까진 화해의 기미가 보이진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CJ제일제당은 올해 경영계획에서 쿠팡 납품 매출을 아예 제외하기까지 했는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CJ제일제당은 유독 물러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쿠팡과의 결별 이후 CJ제일제당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매출이 점차 줄어들며,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거래가 끊긴 직후인 2023년 1분기 국내 가공 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역신장으로 전환합니다. 더욱이 23년 1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선 직전 분기 실적 발표까진 공유하던 온라인 채널 매출 성장률 지표마저 은근슬쩍 사라졌는데요. 아마 햇반 전쟁으로 인해 어느 정도 타격이 있었고, 이를 감추려 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다만 이후 분기를 거듭할수록 매출 추세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마침내 작년 4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5.6% 성장으로 돌아섭니다. 주력 상품인 햇반과 만두 모두 매출이 증가한 것은 물론, 온라인 채널 역시 전년 대비 8% 성장했다는 걸 자랑스레 공개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렇게 매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쿠팡에게 내주었던 가격 결정권과 프로모션 주도권을 되찾아 왔기 때문이라 합니다. 제조사들은 일반적으로 쿠팡과 직매입 계약을 맺고 상품을 공급하곤 하는데요. 이 때문에 할인 행사 유무는 물론, 가격마저 쿠팡의 주도 하에 정해지게 됩니다. 제조사 입장에서 관리 소요는 줄어들지만, 쿠팡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건데요. CJ제일제당은 의도치 않게 이러한 주도권을 강제로 되찾게 되면서,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매출을 늘려가기 시작합니다. 특히 네이버, 컬리 등 복수의 플랫폼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진행했던 것이 유효했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4분기 기준으론 빠졌던 쿠팡 직매입 매출을 오직 디지털 실적으로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행사 위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 수익이 악화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쿠팡에서 나온 이후, CJ제일제당의 이익 지표는 오히려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는 그만큼 쿠팡의 지배력이 압도적이라는 걸 반증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간 쿠팡은 흑자 전환을 위해 공격적으로 공급가 인하나 성장 장려금 등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체 입장에서 매출은 늘어날지 몰라도, 이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반대로 CJ제일제당은 아마도 타 플랫폼 판매 시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공급가의 차이를 잘 활용하여, 기존의 수익성은 유지하면서, 프로모션을 강화할 수 있었을 거고요.
더욱이 대체 채널들 CJ제일제당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기보다는 쿠팡 견제를 위해 협력 관계를 맺은 것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걸로 보입니다. 단지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걸 넘어서서, 아예 공동 기획 상품을 선보이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한 컬리가 대표적입니다. 네이버도 브랜드스토어 활성화를 위해, CJ제일제당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또한 압도적인 CJ제일제당의 브랜드 자산 역시, 이러한 버티기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햇반, 스팸, 비비고 등 CJ제일제당의 가공식품 브랜드들은 현재도 적게는 60%에서, 높게는 8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고객들은 즉석밥을 찾을 때 '햇반'을, 통조림 햄을 찾을 때 '스팸'을 검색할 정도로, 이들 제품은 아예 카테고리 그 자체를 대변하기도 하는데요. 덕분에 마케팅 효율이 경쟁사 대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이는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도 합니다. 2월 13일 쿠팡 판매가 기준으로 백미 210g 상품 36개 묶음의 100g당 가격이 오뚜기밥은 395원, 쿠팡 PB인 곰곰은 383원인데 반해, 햇반은 423원에 달하는데요. 이러한 프리미엄 덕분에 CJ제일제당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수익성을 지킬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CJ제일제당이 쿠팡과 갈등을 벌이면서 잃은 기회비용도 분명 있긴 했습니다. 매출 방어에 성공하였지만, 추가적인 성장의 기회를 상실한 부분이 있었을 거고요. 쿠팡에서 고객들이 새로이 경쟁 브랜드를 경험하면 할수록 장기적으로 CJ제일제당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해외 매출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4분기 기준으로 CJ제일제당의 해외 매출은 최초로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고 하는데요. 특히 핵심 권역인 북미 시장에서 만두와 피자 카테고리는 시장 1위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유럽과 호주라는 신시장 개척에도 성공하여, 권역 매출액이 1,000억 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CJ제일제당은 국내 시장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해외에서 이를 상쇄 가능하니 더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거고요. 심지어 우려와 달리, 국내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선전 중이다 보니, 더욱 물러설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어쩌면 LG생활건강 역시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쿠팡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의 성과 개선을 위해선 국내 시장에서라도 반등을 해야 했고요. 이로 인해 결국 화해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CJ제일제당이 쿠팡 없이도 잘 살 수 있었던 요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이처럼 CJ제일제당의 홀로서기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쿠팡과의 갈등이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 오히려 극적으로 화해를 할 가능성이 보다 더 높아 보이고요.
솔직히 둘 모두 서로가 없어도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고 있기에,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플랫폼들에게 쿠팡이 큰 위협을 느낀다거나, 혹은 CJ제일제당의 해외 매출 성장세가 주춤하는 등 아쉬운 포인트가 생긴다면 언제든 이들은 자존심을 굽히고 손을 내밀 겁니다.
다만 반대로 말하면, 특별한 이슈가 생기지 않는다면, 햇반 전쟁이 지금 이상으로 더 장기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특히 어느새 이들의 갈등은 유통사와 제조사 간 힘 겨루기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기도 했는데요. 과거 나이키가 아마존과 결별 이후 D2C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듯이, CJ제일제당이 국내 제조사들의 새로운 롤모델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과연 이들의 갈등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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