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명품 플랫폼 매치스패션이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작년 12월 프레이저스 그룹에 인수된 지 고작 두 달 만의 일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명품 플랫폼은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팬데믹 기간에 늘어난 명품 수요 덕분에 한때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 둔화로 수요가 급감했고, 이전보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적자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전반적 시장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대중의 시선은 쿠팡에 인수된 세계 1위 명품 플랫폼 파페치에 쏠리고 있다. 사실 쿠팡의 파페치 인수는 충동에 가까웠을 것이다. 지난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에서 김범석 쿠팡 대표가 자신들의 전략이 M&A에 있지 않다고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 시점에 이들은 왜 파페치를 품은 걸까?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한때 시가총액이 무려 260억 달러에 달하던 플랫폼을 고작 5억 달러에 사들였으니, 거래 자체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파페치가 쿠팡에 정말 필요한 존재일까? 쿠팡 경영진이 단지 헐값이라는 이유만으로 파페치를 샀을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파페치는 쿠팡이 오래도록 품어온 꿈을 실현해 줄 마지막 퍼즐 조각에 가깝다. 쿠팡의 아킬레스건은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지속적 성장에 대해 주주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 1위 사업자가 된 데다가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성마저 둔화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쿠팡이 대만 시장에서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곤 하지만 쿠팡 전체의 실적에 기여하려면 갈 길이 너무 멀다 (출처: 쿠팡)
따라서 쿠팡은 일단 국내에서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하고, 동시에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문제는 둘 다 지지부진했다는 것이다. 쿠팡은 수년째 계속 패션 확장을 노크해 왔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해외 진출 역시 일본 시장에서는 실패했고, 최근 대만에서 일부 성과는 거두고 있지만 국내 매출에 비하면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이때 글로벌 1위 명품 플랫폼 사업자로 이미 엄청난 인지도를 지닌 데다 쿠팡이 취약한 명품과 패션에 전문성을 더할 수 있는 파페치가 무려 특가로 떴으니,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쿠팡의 파페치는 부활할 수 있을까? 올해 2월 파페치 설립자이자 CEO였던 호세 네베스가 물러나고 김범석 대표가 전면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호세 네베스는 개발자 출신이지만, 동시에 패션 피플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페치는 파리 패션 위크의 한 파티에서 탄생하는 등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러한 배경을 지녔기에 그는 명품 도매상이나 부티크에 집중했다. 이들에게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를 통해 파페치는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회사를 상징하던 호세 네베스의 퇴임 이후, 파페치는 과연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출처: 파페치)
김범석 대표는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이다. 그는 오로지 고객만 바라본다. 이처럼 다른 의미로 남다른 그인 만큼 파페치의 내일이 더 기대된다. 현재 명품 플랫폼이 겪는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시장의 주도권을 하이엔드 브랜드가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품의 공급을 제한하고 가격을 결정한다. 가장 큰 부담은 결국 약자인 명품 플랫폼이 지게 된다. 하지만 김범석 대표는 누구보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도권을 찾아오는 것에 능숙하다. 그는 이렇게 확보한 가격 결정권을 기반으로 쿠팡을 흑자로 전환시킨 바 있다. 물론 아직은 그가 파페치에 어떤 수를 내놓을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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