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더현대 서울의 성공을 다른 점포까지 확산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팝업스토어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리테일 업계에서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엔데믹 이후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갈증이 폭발하면서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은 덕분인데요. 이로 인해 성수동은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부상했고, 더현대 서울은 최단기간 매출 1조 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팝업스토어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7월 KBS2에서 방영된 신규 예능 프로그램 '팝업상륙작전'이 그 주인공이었는데요. 이는 연예인 출연진이 미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섭외한 현지 맛집을 팝업으로 선보인다는 독특한 기획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대백화점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고요.
마침내 7월 22일, 프로그램을 통해 들여온 미국 핫도그 브랜드 더트도그와 일본 계란구이 전문점 마루타케의 팝업이 더현대 서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이번 팝업은 오픈 30분 만에 대기 인원이 500명 이상 몰리는 등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는데요. 특히 박세리와 MJ 등 출연진이 직접 등장한 날에는 최대 4시간가량 기다려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팝업 대비 30~40%가량 고객이 더 몰렸고, 연예인들이 온 날에는 2배 이상 많은 고객들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지 이번 팝업의 흥행만을 노렸다면, 현대백화점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겁니다. 방송 없이도 엄청난 흥행을 거둔 팝업 기획은 기존에도 많았으니까요. 따라서 이번 팝업스토어는 매출이나 몰린 인파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현대백화점이 왜 '팝업상륙작전'을 기획하고 지원했는지, 그 진짜 목적을 추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팝업상륙작전 방송을 처음 접했을 때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던 것은 오프닝 장소였습니다. 출연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바로 더현대 서울 매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더현대 서울은 등장부터 '팝업의 성지'로 소개되며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었습니다. 해외 맛집을 다닐 때도 한국의 유명 백화점에서 팝업을 진행한다고 계속 언급되기도 했고요.
이러한 반복 노출을 통해 더현대 서울은 진정한 의미로 팝업스토어의 대명사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요? 물론 그 이전부터도 팝업으로 유명했던 더현대 서울이었지만, 지역이나 연령대 별로 인식의 차이가 있었고, 성수동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도 존재했습니다. 최근에는 신세계 강남과 롯데 잠실 등도 콘텐츠를 강화하며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기도 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팝업스토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업이었고, 더현대 서울은 공중파의 인증을 통해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게 된 겁니다.
특히 젊은 세대와 달리 기성세대들에게 팝업스토어 자체 역시 아직 낯선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중장년 시청자가 많은 KBS와의 협업을 선택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더현대 서울이 MZ세대의 핫플레이스를 넘어 전 국민의 명소로 떠오를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방송 콘텐츠는 충분한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현대백화점이 영상 콘텐츠를 통해 재미를 봤던 경험들이 쌓여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보는데요. 이번 방송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토스가 만든 인기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였습니다. 머니그라피에는 매주 특정 전문 분야를 대표하는 유튜버들이 게스트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낯선 이름의 게스트가 출연한 편이 조회 수 기준으로 최상위에 올랐으니, 바로 현대백화점의 이희석 부장이 나왔던 팝업스토어 편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더현대 서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열광했는데, 이 경험에서 더현대 서울이 뭔가 기회를 발견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고객을 방문 전부터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팬덤이 없는 브랜드도 콘텐츠를 통해 기대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아닐까요?
이처럼 방문 경험은 그곳을 체험하는 시간에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방문하기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기대하는 시간부터 이미 경험은 시작되기 때문인데요. 결국 어떤 기억을 가지고 방문하느냐에 따라 실제 경험의 인상도 달라지게 됩니다. 또한 방문 후에도 경험은 이어집니다. 방문 후기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거나, 기념품을 구매해 두고두고 보는 등, 방문 후의 경험 설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거든요.
더현대 서울을 비롯한 현대백화점의 공간 경험이 약점은 '방문 전 경험'이었습니다. 방문 중의 경험은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었고요. 백화점은 판매 공간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구매한다면 좋았던 기억은 방문 이후까지도 잘 연결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장을 오기 전부터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브랜드의 팬이 아닌 이상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기획 단계의 이야기를 먼저 콘텐츠로 풀어 보여준다면, 더 큰 규모의 사전 팬들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팝업상륙작전을 보다 보면, 단지 맛집 메뉴의 맛과 비주얼뿐 아니라, 가게를 컨택하고 섭외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직접 브랜드를 데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적 착각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고, 이로인 해 더 많은 인파가 팝업스토어로 몰려오게 했습니다.
이처럼 대성공을 거둔 팝업상륙작전의 팝업스토어,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더트 핫도그와 마루타케 팝업은 무역센터점을 시작으로 목동점, 디큐브시티, 판교점, 부천 중동점 등 주요 지점들을 순회할 예정이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바로 현대백화점이 이번 거창한 작전을 벌인 진짜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더현대 서울은 굳이 예능까지 만들지 않더라도 이미 매우 성공적입니다. 1조 원 매출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매출 성장률 1위 점포에 올랐으니까요. 아직은 격차가 크지만, 현대백화점은 내심 신세계 강남, 롯데 잠실과 경쟁하는 수위 점포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도 크고요.
하지만 문제는 이외의 다른 점포들입니다. 더현대 서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판교점 정도만 선방할 뿐, 주요 점포들의 성장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지역 1번점을 표방한 신세계의 점포들에게 매출을 빼앗기고 있으며, 심지어 서울에서마저 대형 점포들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의 성공 방정식을 이식하려 했지만, 아직은 유의미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방송국과 협업하여 거대한 붐을 만들어내고, 팝업의 바람을 다른 점포들까지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백화점의 노림수는 과연 먹혔을까요? 무역센터점에서 열린 팝업상륙작전 현장에 직접 방문해 보았는데요. 주말에 방문해서 그런지 놀랍게도 오픈런하는 인파는 꽤 보였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였는데, 처음에 몰렸던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금방 한산해졌습니다. 오후에 한번 더 상황을 살피고자 방문하였는데, 그때는 아예 웨이팅이 없기까지 했습니다. 콘텐츠만큼이나 더현대 서울이 가진 상징성이나 장소의 힘이 강하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지만요. 동시에 팝업스토어를 통한 콘텐츠 전략이 다른 점포들까지 살리기엔 아직 힘이 부족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더현대 서울과 달리 무역센터점은 딱히 음식을 먹을 장소도 없어서 들고 무조건 이동해야 했고요. 그러다 보니 현장감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처에 먹을 장소가 있었다면 이를 보고 더 많은 고객이 줄을 설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방송을 본 고객이 아니라면 찾아오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때일수록 더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팝업상륙작전 방송이 파리 올림픽으로 인해 결방되었다는 건데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더현대 서울 팝업의 열기가 꺼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방송이 지연되면서 덩달아 팝업의 인기마저 시들해진 모양새였습니다. 애초에 스케줄을 협의할 때 올림픽 역시 분명 고려되어야 했을 텐데, 이러한 디테일을 놓친 것이 더욱 아쉬웠고요. 방송 자체도 아주 크게 흥행하지 못했던 점도 한몫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습니다. 비록 절반의 성과로 끝나긴 했지만 이번 팝업상륙작전의 기획 의도만큼은 훌륭했다고 평가하고 싶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콘텐츠를 활용한 리테일의 공간 경험 강화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콘텐츠 커머스의 진화가, 아직은 일부 점포에 국한되었던 성공을 더욱더 확장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도 재밌는 사례가 나올 때마다 공유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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