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히어로가 공정위 결정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28일, 요기요와 배달통의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와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 간의 4조 7천억 원 규모의 인수합병은 결국 새드엔딩으로 끝 마침 하게 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합병 발표 1년 만에 기업 결합은 승인했으나, "6개월 내 요기요 매각"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에 대해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는 요기요 100% 지분 매각 결정을 수락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11월 전달된 심사보고서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었다. 다만 그때만해도 DH는 이에 반발하며, 끝까지 공정위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공정위가 끝까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자, 내부 검토 끝에 요기요를 매각하더라도 배민을 품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DH 입장에서 요기요는 그동안 소중히 길러온 집토끼다. 하지만 굴러들어 온 산토끼 배민을 위해, 이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 따라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에 인수합병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예측도 있었는데, 끝내 DH가 배민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기에 제 살을 떼어내면서까지 배민과 함께 미래를 맞이하려는 것일까?
1. 요기요 매각, 오히려 약이 될지 모른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무리 애지중지 키워온 서비스라도 돈이 안된다면, 과감히 버려 버린다. 물론 강제적인 매각 없이 인수합병이 승인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매각을 하면서까지 배민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비즈니스 관점에서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이번 공정위의 개입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우리가 이번 DH처럼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당연히 선택에 따른 편익과 기회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에서 이를 평가해야 할까? 아마 DH의 경영진은 아래 2가지 기준에서 저울을 달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1] 요기요 없이 배달의민족 만으로 배달 앱 시장 지배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2] 반대로 배민 없는 요기요 만으로 배달 앱 시장 내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DH가 배민 인수를 한다면, 결국 요기요 없이도 국내 시장 지배력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배민 인수를 포기한다면 요기요 만으로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우선 배민의 시장 지배력은 예나 지금이나 충분하다. 사실 DH가 결국 배민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배달 앱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패배하였음을 시인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DH는 배달앱 삼총사, 배민, 요기요, 배달통 중 무려 2개 플랫폼을 한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배민의 승승장구를 지켜봤어야 했다. 2020년 11월 기준으로, 배민은 여전히 배달 앱 시장 내에서 무려 62%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앱을 교차 사용하는 인원을 고려하면, 배달 앱을 1번 이상 사용하는 전체 이용자 중 무려 80% 이상이 배민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배달앱 시장은 배민천하다.
더욱이 양적 지표뿐 아니라, 질적 지표에서도 배민은 정말 오롯이 우월하다. 인당 사용시간 측면에서 배민은 1시간 정도로 30분 내외인 경쟁사 요기요와 쿠팡이츠보다 2배 가까이 높다. 방문주기를 알 수 있는 지표인 DAU/MAU에서도 11월 기준으로 배민은 24% 정도인데, 요기요, 쿠팡이츠는 모두 15% 내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DAU/MAU : 고착도 지표로, 얼마나 자주 해당 앱을 사용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보통 SNS 서비스들은 50% 내외 정도를 보이는데, 이는 평균적으로 사용자가 이틀에 한 번 꼴로 방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기요가 없더라도, DH가 배달 앱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배민 없이 요기요 혼자서는 어떨까?
냉정히 말해, 요기요는 현재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있다. 선두주자 배민은 따라잡기 불가능할 만큼 멀리 달아난 반면, 강력한 추격자 쿠팡이츠가 어느덧 턱 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다. 요기요의 형제 서비스 배달통은 이미 위의 점유율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경쟁에서 탈락한 지 오래이다. 사실 올해 초 쿠팡이츠가 무서운 성장세로 배달통을 제칠 때까지만 해도, 요기요는 여유가 있었다. 요기요와 쿠팡이츠 사이에는 여전히 엄청난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6월만 해도 MAU가 요기요의 1/12에 불과했던, 쿠팡이츠가 11월 기준으로는 1/4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쿠팡이츠는 이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이며 지금 이 순간도 진공청소기처럼 신규 고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요기요의 내일이 정말 암울해 보이는 이유는, 현재의 이용자 수는 여전히 상당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으나, 신규 설치자 수는 이미 쿠팡이츠에게 따라 잡혔기 때문이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신규 설치자 수 기준으로 쿠팡이츠는 이미 지난달에 요기요를 앞질렀다. 더욱이 최근들어 들쑥날쑥한 추이를 보이는 요기요와 달리 꾸준히 신규 설치자를 늘려가고 있는 쿠팡이츠이기에 내년에는 확실히 성장률은 물론 성장 크기에 있어서도 요기요를 추월할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질적 지표에서도 요기요는 쿠팡이츠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앞서 배민의 시장 지배력을 얘기할 때 인당 사용시간이나, DAU/MAU가 요기요나 쿠팡이츠가 비슷한 수준임은 언급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총 설치기기 대비 활성 이용자 수 비율에서도 쿠팡이츠는 60% 내외를 유지하는 반면, 요기요는 오히려 50% 초중반대에 그치고 있다. 이는 기존 고객의 리텐션 관점에서 요기요는 쿠팡이츠와 비슷한 수준 혹은 오히려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요기요에게 더 뼈아픈 것은 지난 9월 요마트 론칭이나, 11월 유노윤호를 모델로 발탁하여 벌인 대대적인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추세가 반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요기요가 샌드위치 위기에 빠진 사이 쿠팡이츠는 더욱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배민의 서버가 다운된 것을 기억하는가? 이번 서버 다운의 이면에도 쿠팡이츠의 공격적인 마케팅에서 시작된 출혈 경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쿠팡이츠가 론칭되면서 라이더를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걸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몰리는 주문 처리를 위해 배민도 이에 뒤질세라 최대 1만 5천 원의 프로모션을 걸었는데, 이에 라이더들이 갑자기 몰려 주문 접수 앱이 다운된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포인트는 이날 쿠팡이츠는 무려 최대 3만 원의 프로모션 비용을 내걸었다는 것. 이처럼 배달시장의 경쟁은 격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수익성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실제 배민은 이미 작년 적자로 전환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요금제 개편을 시도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포기하기도 하였다.
결국 DH는 이러한 판단을 하였을 것이다. 요기요를 팔더라도 배민으로 충분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요기요를 팔지 않기 위해 배민과의 인수합병을 무산시킨다면, 요기요만으로는 미래 전망이 너무나도 어둡다. 더욱이 오히려 회사 차원에서 역량을 하나의 플랫폼에 집중하는 것이 난적 쿠팡과의 싸움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요기요를 포기하더라도 배민을 품기로 결정한 것이다.
2. DH가 꿈꾸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DH가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DH가 앞으로 펼칠 전략은 현재 우아한형제들의 채용 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사업부의 여러 직군을 동시 채용 중이지만, 결국 B마트와 일본이라는 2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우선 B마트는 말 그대로 배민의 미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배달 서비스에는 인색한 쿠폰 플레이를 하는 배민이지만 B마트에는 정말 후하다. 아니 후한 수준을 넘어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초기 사용자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대체 왜 배민은 B마트를 이렇게 밀어주는 것일까? 그건 B마트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배민은 올해 초 수수료 제도를 개편하려다가 호된 수업료를 치른 바 있다.
배민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은 배달 앱 서비스로는 돈을 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배민상회 같은 B2B 커머스도 진행하고, 배민라이더스, 배민오더 등 다양한 서비를 통해 생태계 구축에도 성공했지만 결국 돈을 크게 벌려면 커머스를 해야 한다. 배달 앱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정치적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내부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지 않을까? 퀵커머스라는 다소 낯선 형태의 B마트가 대중화되기 위한 최적의 시점이니 말이다. 실제 B마트의 론칭과 확산 이후 배달의 민족은 사용자 수나 사용 지표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바 있다. 아직은 쿠폰으로 사용자를 억지로 끌어들이는 모양새지만, 백오피스를 개선하여 효율을 올리고, 일단 사용경험을 안긴 고객들의 리텐션을 이끌어낸다면 2번째 도약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B마트가 미래 먹거리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지만, 사실 DH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시아 시장 진출이었다. 단순 인수가 아니라 배민의 경영진의 지분을 인정하면서까지 일을 벌인 이유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배민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시아 배달 시장을 재패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타깃으로 정해진 곳이 바로 일본 시장이다. 이미 과거의 일본 진출이 실패한 적 있지만, 일본 역시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배달 시장이 급격히 성장 중이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승산이 있다는 것이 배민의 판단이다. 일본에서 론칭한 푸드네코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느냐는, 요기요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진행한 이번 인수합병의 성과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3. 요기요는 그럼 누가 살까?
이렇게 DH는 제갈길을 간다면, 요기요의 내일은 어떨까? 요기요는 대체 누가 사갈까? 우선 요기요는 결코 싸지 않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요기요의 기업가치는 무려 2조 원. M&A로 엑시트 한 여러 스타트업 사례를 떠올려봐도 본 적 없는 숫자이긴 하다. 따라서 그 누구도 쉽게 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분할 매각을 예견하거나, 6개월이라는 매각 기한이 정해진 만큼 예상외의 헐값 매각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냐는 전망도 많다.
더욱이 앞서 열심히 설명했던 것처럼 요기요는 엄청 매력적인 매물은 아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면, 애초에 DH가 이렇게 포기했을 리 없다) 하지만 단지 계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꽤나 큰 잠재력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성장성은 둔화되었지만 여전히 배달앱 시장의 30%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며, 아직은 테스트 단계지만 요마트와 같은 퀵커머스 등의 여러 신사업으로 확장 가능한 잠재력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달앱 시장에 관심이 있으면서, 동시에 커머스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곳이라면, 인수전에 흥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근데, 그런 회사라면 몇 없지 않나? 그렇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면서, 요기요를 인수할만한 자금을 보유한 곳은 네이버와 카카오 정도밖에 없다. 이외에는 은행권 정도가 인수후보로 꼽히는 데, 금융기업이 가진 보수성과 빈약한 운영 역량을 고려하면 결국 네이버나 카카오에게 안기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적어도 네이버 또는 카카오와 제휴를 맺은 곳이 인수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6개월 안에 요기요의 새로운 주인이 결정되고, 배달 앱 시장은 다시 대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정위가 우려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공룡 배달 플랫폼은 아마 당분간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이 과연 사회 전체의 이익이 커지는 해피엔딩일까?
공정위가 내린 요기요 매각을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이 꼭 DH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시에 매우 아쉬운 결정이란 생각이 든다. 정부나 국회가 플랫폼 산업의 가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배민뿐 아니라, 지난번에 타다가 그랬었고, 또 내일은 어떤 플랫폼 기업의 운명이 정책 이슈에 따라 결정될지 모른다. 더욱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에서 보인 태도와 오버랩되며, 더욱 큰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번 공정위 결정에 대해 국내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유감을 표했다고 한다. 배민의 인수합병은 단지 일개 기업의 일을 넘어서 국내 유니콘의 첫 엑싯 사례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결론이 내려진 이상, 배민이 이번 일을 계기로 소상공인 착취 논란, 게르만의 민족 등 안 좋던 이미지들은 떨쳐 버리고, 새롭게 브랜딩 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