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시너지를 내야 합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년 5월, 무신사가 29CM를 인수했습니다. 당시에는 남성 패션이 중심이던 무신사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확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는데요. 그런데 업계에서는 무신사의 첫 인수 대상이 사실 29CM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신사가 원했던 것은 불과 한 달 전 신세계 그룹에 인수된 W컨셉이었지만, 인수에 실패하자 대안으로 29CM를 선택했다는 거죠.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9CM가 여성 브랜드 패션 플랫폼 1위 자리에 오르며 에이블리, 지그재그와의 경쟁 구도를 흔들 정도로 성장한 반면, W컨셉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W컨셉의 성적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대비 13% 성장했고, 2020년 이후로는 영업이익에서도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29CM의 성장세가 무서울 만큼 가파르다는 점입니다. 29CM는 올해 상반기 거래액이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고 밝혔고, 특히 핵심 카테고리인 여성 패션에서만 65%의 성장을 기록했다고 하니까요.
2022년을 기점으로 W컨셉은 이미 여성 브랜드 패션 커머스 분야의 1위 자리를 29CM에 내주었는데요. 양 플랫폼의 성장률 격차는 점점 벌어지며 W컨셉이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수 직후인 2022년 상반기에는 56%라는 높은 거래액 성장률을 기록하던 W컨셉이, 어떻게 이렇게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된 걸까요?
최근 무신사, W컨셉 등으로 대표되는 브랜드 패션 커머스와 지그재그, 에이블리 같은 동대문 패션 커머스 간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장의 핵심은 여전히 브랜드와의 협업과 동반 성장에 있습니다. 잠재력은 있지만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를 발굴하여, 플랫폼을 통해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플랫폼도 함께 커가는 방식이죠. W컨셉은 이러한 전략을 가장 잘 실행해 온 플랫폼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W컨셉은 SK네트웍스가 운영하던 해외 직구몰 위즈위드에서 출발했습니다. 위즈위드에서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W컨셉 바이 프로젝트’가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점차 확대되면서 독립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W컨셉입니다. 신진 브랜드 발굴과 육성에 꾸준히 집중한 덕분에 잉크, 렉토, 마뗑킴, 닐바이피와 같은 브랜드를 성장시키며, 자연스럽게 여성 브랜드 패션 1위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W컨셉은 브랜드 인큐베이팅의 대표주자라는 입지를 점차 잃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무신사와 29CM의 인수 이후 시너지에 비해, W컨셉의 성장 동력이 예상만큼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무신사는 파트너 브랜드와 독점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며, 플랫폼 내 노출 보장 외에도 생산 자금 지원, 시즌 프리뷰 행사 등 다각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파트너 브랜드 입장에서도 무신사와 29CM 두 플랫폼에서 고객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매력적인 선택이 되었죠. 무신사는 무신사 테라스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고객 접점을 확장해가고 있고, 29CM 또한 이구성수와 현대백화점 내 이구갤러리를 통해 오프라인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반면 W컨셉은 신세계백화점에 빠르게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경기점을 시작으로 대구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등 주요 백화점에 매장을 확장했으나 단지 운영에만 그쳐, 오프라인에서의 성과는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던 건데요. 아무래도 W컨셉은 신세계백화점 계열이 아닌, 이마트 계열 SSG닷컴의 자회사이다 보니,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걸로 보입니다. 또한, 타깃 차이와 조직 구조의 차이로 인해 SSG닷컴과의 시너지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W컨셉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브랜드들이 점점 무신사-29CM를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신사-29CM는 스탠드오일, 글로니, 다이닛과 같은 새로운 스타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며 화제성을 높여갔지만, W컨셉은 이와 같은 후발 주자들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고요.
W컨셉의 전략적 실수 또한 이러한 상황에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화점을 브랜드 성장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4050 타깃의 백화점 브랜드 입점을 우선시하면서 W컨셉의 정체성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고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동영상 콘텐츠 예산을 줄이면서 브랜드 지원도 줄어든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W컨셉은 뚜렷한 색깔을 잃어가며 경쟁자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만 겁니다.
이렇게 W컨셉은 본진인 디자이너 브랜드 패션 시장에서 경쟁자들에게 조금씩 밀려나는 상황에서 신사업 확장마저 타이밍을 놓친 듯합니다. 최근 패션 버티컬 커머스들은 패션을 넘어 다양한 카테고리로 외연을 확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무신사, 에이블리, 지그재그가 뷰티에 집중하고 있으며, 29CM는 프리미엄 리빙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29CM는 카테고리 확장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상설 오프라인 매장인 이구성수에서 다수의 리빙 브랜드 팝업을 진행했으며, 작년에는 프리미엄 리빙 편집샵 TTRS를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러 프리미엄 리빙 브랜드를 단독 입점시키며 리빙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죠. 이는 해당 카테고리에서 절대 강자로 자리 잡은 오늘의집마저 바이너리샵을 개편하며 견제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반해 W컨셉 역시 뷰티 분야에 일부 진출했으나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더 많은 트래픽을 무기로 빠르게 규모를 확장한 에이블리나, 무신사 뷰티 페스타 같은 대형 행사로 빠르게 체급을 키운 무신사와 비교했을 때 W컨셉은 차별화할 지점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코르를 샵인샵 형태로 입점시키는 등 상당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시장 내 유력 플레이어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이후 신세계 그룹 내에서 수익성에 대한 압박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그룹의 지원을 받아 큰 투자를 단행하기도 어려웠던 것이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데요. 이렇게 시기를 놓치면서 여기서도 주도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잃고 만 겁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W컨셉은 한때 차지했던 1위 자리를 빼앗기고, 점차 뒤처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최근에는 반등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과거 잘했던 부분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며 명성을 회복하고자 하는데요. 올해 1월에는 '브랜드위키'를 시작으로 'W이슈', '뉴컨셉' 등의 콘텐츠를 선보이며 ‘브랜드 인큐베이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뷰티 카테고리에서도 ‘월간뷰티’를 통해 새롭게 뜨는 브랜드를 소개하고, 단독 브랜드와 단독 상품 라인업을 강화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하지만 진정으로 잃어버린 입지를 회복하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사인 29CM는 이미 더 큰 생태계를 구축하며 브랜드가 성장할 기회를 다방면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며 브랜드에 투자하는 무신사 파트너스와 국내외 브랜드를 발굴하는 무신사 트레이딩까지 힘을 합쳐, 브랜드 육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W컨셉이 진정한 반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세계 그룹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세계 백화점, 신세계 인터내셔날과 협력해 W컨셉이 발굴한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장기적 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동반자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백화점 입장에서도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기에, W컨셉은 그룹사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W컨셉이 이러한 노력으로 다시 반등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데요. 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면, 반등의 기회마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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