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활극(活劇)

by 배윤성

장례식장 주차장 뒤편 화단. 우리는 덤불 속에 납작 엎드렸다. 마치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들처럼... 아니, 범죄 현장을 체크하러 온 갱들처럼.
"저기 있다."
내가 턱짓으로 가리켰다. 폴리스 라인이 쳐진 주차장 한복판.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이는 그곳에, 남 대표의 분신인 <스마일 홈케어 진드기 청소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체포된 포로처럼 처량한 몰골이었다.
상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젊은 대원에게 지시했다.
"아니, 무슨 장례식장에서 육개장 그릇을 던지고 싸워? CCTV는 확보했지?"
"예. 보니까 50대쯤 돼 보이는 아저씨들이 저 청소기 들고 설치던데요. 혹시 몰라서 물건은 확보해 놨습니다."
"일단 증거물로 가져가야 하니까 차에 실어 놔."
"허억!"
남 대표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증거물 압수. 그것은 곧 파멸의 신호탄이었다. 큐알 코드 조회 → 남정식 신원 확보 → 회사 통보 → 해고 및 손해배상 → 가정 파탄.
"야, 어떡하냐? 경찰이 지키고 있어."
"형들, 지금부터 콘티 짠다. 잘 들어요."
나는 8년 차 배달 기사다. 개미집처럼 얽힌 다세대 주택의 현관을 1분 안에 찾아내는 '길바닥의 네비게이션'이다. 현장 스캔은 이미 끝났다.
"작가님, 저기 가서 술 취한 척해요. 억울한 유가족인 척 시비 걸고 어그로 끌라고."
"나? 야~ 나 관절도 성치 않은데..."
"연기를 하라고요! 평소 작가님이 입에 달고 살던 그놈의 메소드 연기!"
"그럼 나는?" 남 대표가 물었다.
"형은 내가 신호 주면 장례식장 쪽으로 침투해. 관리사무실 배전반 찾아서 조명 스위치 다 내리는 거야."
"불 꺼지면 쟤들이 당황할 거고, 그 틈에 네가 들고 튄다. 이거지?"
"피디 출신이라 눈치는 빨러. NG 없다. 원테이크야. 집결지는 북쪽 펜스 옆 놀이터. 물건 확보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는 거야. 오케이?"
"야... 이 새끼 연출 솜씨 녹 안 슬었네."
"좋아. 저 경찰, 지금 무전 받는다. 작가님, 큐!"
"아... 연기는 자신 없는데..."
김 작가가 비틀거리며 폴리스 라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고~ 경찰 양반! 내 얘기 좀 들어줘~~ 우리 엄니가 이렇게 가실 분이 아녀~ 이거슨 의료 사고여! 저 의사 놈들 싹 다 잡아넣어야 혀! 으헝헝!"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세요."
"못 가! 대한민국 경찰이 힘없는 사람 얘기는 안 들어주고! 우리 엄니 살려내! 살려내라고!!"
김 작가의 발연기.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경찰 두 명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지금이야!"
남 대표는 화단을 넘어 멧돼지처럼, 하지만 쥐새끼처럼 은밀하게 움직였다. 100kg 거구가 날렵하게 장례식장 뒷문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불이 안 꺼진다. 배전반을 못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 작가의 연기력이 밑천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러다간 주취 소란으로 현행범 체포당할 판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내 손에는 화단 구석에 있던 싸리비가 들려 있었다.
"야 이 미친놈아! 동네 창피하게 왜 경찰들한테 행패야!!"
"어? 어?"
"그런다고 죽은 엄니가 살아와? 정신 좀 차려 이 인간아!"
퍼억-! 나는 싸리비로 김 작가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악! 야! 너 왜 진짜로 때려!"
김 작가의 비명이 터지자 경찰들이 당황해서 달려들었다.
"아저씨들! 그만하세요! 왜들 이러십니까!"
경찰들이 난동을 제압하려던 찰나.
팟-!
사방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지금이다.
나는 어둠을 틈타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청소기 손잡이를 낚아채고 질주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토꼈다.
"어? 야! 저거 뭐야!"
뒤늦게 경찰의 고함이 들려왔지만, 이미 우리는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20분 뒤. 놀이터 공원. 남 대표가 헐떡거리며 도착했다.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청소기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하아... 하아... 살았다. 형, 진짜 빨랐어."
"그럼. 내가 옛날에 사창가 도둑 촬영할 때, 조폭들 피해서 스태프들 데리고 도망치던 짬밥이 있는데."
남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청소기를 쓰다듬었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표정이었다.
"자, 이제 집에 가자. 내일 아침 일찍 예약 있어서 이거 충전해놔야 돼."
그가 청소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가볍게 '윙-' 소리가 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틱.
"어?"
남 대표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틱. 틱.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남 대표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가 기계를 들어 흔들자 안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달그락. 덜그럭. 내부 모터가 박살 난 소리였다.
"아까... 싸울 때 이걸 휘두르다가..."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충격받았나 봐."
정적이 흘렀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만 스산하게 들렸다. 남 대표는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다.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 토끼 같은 아이들의 학원비가... 저 '틱' 소리와 함께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씨발!! 아, 씨발!! 이 좆같은 인생 그냥 끝내버려? 으아아아!!”

남 대표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김 작가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는 미친 듯이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털썩 놀이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절을 하듯이 고개를 처박는다.
아... 이거 어떡하지... 저 형 저렇게 절망하는 거 처음 보네...
한참을 숙인 채 움직이지 않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서늘한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찬혁아."
"어? 어..."
"나... 벤츠 팔아야겠다."
"형, 아직도 그 벤츠 가지고 있어?"
내가 놀라서 물었다.
"2011년식 S-클래스. 지하주차장 명당에 고이 모셔놨지."
"와... 근 이십 년이네. 그거 <도화선> 대박 났을 때, 황 배우가 타던 거 물려받은 거잖아."
"황 배우가 나한테 그 키 넘겨주면서 그랬어. 형 덕분에 재기했다고. 언젠가 자기가 꼭 은혜 갚겠다고."
남 대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서 못 팔았어. 내가 지금 이 꼬라지로 살아도, 언젠가 황 배우가 날 다시 찾아줄 거라는 믿음... 그 차가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니까."
"......"
"근데 팔아야 될 것 같아. 이제 더 이상 헛된 기대 같은 거 안 하려구."
그는 부서진 청소기를 발로 걷어찼다. 청소기는 도롯가 쓰레기 더미에 처박혔다.
"무조건 100억 딴다. 못 따면 우리 셋 다 한강 가는 거야. 알았어?"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선택지가 사라졌다. 이제 '스크리너스' 도전은 객기가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중년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유일하고도 처절한 비상구였다.
"가자. 등록하러."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확인했다. 가진 것 없는 세 마리 늙은 짐승의 눈동자가, 다시 맹수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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