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양파 창고의 스티브 잡스들

by 배윤성

문짝이 뒤틀려 있어 겨우 열어젖혔다. 오랫동안 방치된 뽀얀 먼지가 밀가루처럼 날아다닌다.

"콜록! 콜록! 으악, 이게 뭐야!"

"야, 숨 참아! 폐병 걸리겠다!"

우리는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허우적거렸다.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본진, <현대 유통>의 버려진 창고였다. 바닥에는 말라비틀어진 양파 껍질이 화석처럼 굴러다녔고, 구석에는 쓰다 버린 기계 부품이며, 마대자루가 고물상처럼 쌓여 있었다. 창밖에서는 지게차의 후진 경고음(삐- 삐- 삐-)과 경매사들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랩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허허... 거참. 환경 한번 다이내믹하네."

남 대표가 먼지를 털어내며 애써 웃었다.

"야, 원래 위대한 기업들도 다 차고(Garage)에서 시작했대. 스티브 잡스도, 구글도."

"남 대표, 거기는 미국 캘리포니아고. 여긴 서울 변두리 시장바닥이잖아."

김 작가가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단 눈치였다. 그는 벌써 빗자루를 찾아들고 구석의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대걸레로 묵은 때를 벗겨내고, 주워 온 짝짝이 책상 세 개를 적당하게 배치했다. 8년 동안 방구석에 처박아 놨던 낡은 노트북이 이제야 빛을 보나 싶다.

"후우... 이제 좀 사무실 같네."

우리는 믹스커피 한 잔씩을 타 들고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았다. 땀이 식으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썩은 배추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디퓨저 향기보다 달콤했다.

"근데 참 이상하다."

남 대표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이 오십 먹고, 쫄딱 망한 제작자가 이 먼지 구덩이에 앉아 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냐?"

"......"

"뭔가 존나 설레는데? 처음 제작부 막내로 영화판에 들어갔을 때처럼. 뭔가 시작한다는 게... 이렇게 설레는 건 줄 몰랐어."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그랬다. 시간제 배달 미션이 뜰 때마다 만오천 원에 마음 졸이던 배달 기사가 아니라, 무언가를 저지를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게 우리를 다시 숨 쉬게 하고 있었다.


"자, 감상 그만 젖고. 회의합시다, 대표님."


내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스크리너스> 접속 페이지를 띄웠다.

"일단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지. 근데 형들 요즘 AI 영화들은 본 적 있어요?"

내 질문에 남 대표와 김 작가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영화 본 게 3년 전, 아바타 4편인 것 같은데? 그거 AI 영화 아니었어?"

”이 형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네.“

"나도 그냥 틱톡에서 AI 아이돌이 춤추는 짤방 같은 거나 봤지 뭐."

"내 그럴 줄 알았다. 스크리너스 아이디 있는 사람?“

”... ...”

남 대표의 되물음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전쟁터에 나가겠다면서 총 쏘는 법은커녕, 군복 입는 법도 모르는 훈련병들.

"일단 가입부터 합시다. 이거 유료 회원 아니면 분석도 못 해요."

우리는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돋보기안경을 쓴 김 작가가 독수리 타법으로 남 대표의 인적 사항을 입력했다.

[정부 공인 휴먼 쉴드 Human shield 인증을 진행합니다. 안면 인식을 위해 카메라에 얼굴을 표시되는 점선 안에 넣어 주세요.]

“???”

최근에 도입되었다는 안면 인식 인증을 해본 사람이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서로 의아해하다가 얼떨결에 김 작가가 얼굴을 노트북 카메라에 들이밀었다. “등록이 되지 않은 얼굴입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

“잠깐 이거 노트북 누구 거야? 그럼 주인이 얼굴 넣어야지.”

김 작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어서 내 얼굴을 집어넣었다. “등록이 되지 않은 얼굴..”

?? 내 노트북 맞는데? 이상하다 싶어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3회 연속 오류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주십시오”

우린 멍청했다. 디지털 문명의 기계치들. 결제 명의자인 남 대표의 얼굴이 필요했던 거였다. 몇 번을 반복한 인증 소동 끝에 겨우 월 10만 원짜리 '프리미엄 멤버십' 결제에 성공했다.

"드럽게 비싸네. 국밥이 몇 그릇이야..."

"조용히 해봐. 이제 들어간다."

드디어 스크리너스의 메인 화면이 열렸다. <TOP 10 Trending Now> 화면을 가득 채운 썸네일들은 압도적이었다. 실사인지 그래픽인지 구분이 안 가는 초고화질 영상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1위부터 보자. <네오 서울의 연인들>."

재생 버튼을 눌렀다. 8K 화면 속에서 조각 같은 남녀 주인공이 비 내리는 사이버펑크 도시를 배경으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튀는 질감, 네온사인의 빛 번짐, 배경 음악의 고조까지. 기술적으로는 완벽했다.

"와... 때깔 죽이네. 저걸 AI로 다 만들었다고?"

남 대표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눈앞에서 아바타가, 어벤저스가, 헐리우드 스케일이 모니터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5분쯤 지났을까. 노트북 쿨러가 비행기 이륙하는 소리를 내더니, 화면이 심하게 버벅대기 시작했다.

[경고: GPU 메모리 부족. 프로세스를 강제 종료합니다.] [시스템 온도 과열. 3... 2... 1...]

피유웅-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까맣게 꺼져버렸다.

"뭐야? 야, 왜 이래?"

"아...씨. 뻗었어. 노트북이 고화질 영상을 못 버티네."

"아니, 대체 언제 적 노트북이길래 동영상 하나를 못 돌려?"

김 작가가 짜증 섞인 손길로 엔터키를 두들겼지만, 노트북은 싸늘한 시신처럼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AI를 정복하러 왔는데, 입구 컷 당한 꼴이었다.

사실 무리도 아니었다. 저 노트북은 내가 8년 전, 배달 일을 시작하면서 "언젠가 시나리오 쓸 거야"라는 다짐으로 샀다가, 영수증 정리용으로 전락해버린 고물이었으니까.

정적 속에 양파 썩는 냄새만 맴돌 때, 직진남 남 대표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야야! 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장비부터 제대로 맞추자."

"장비요?"

"그래! 명색이 AI 영화사인데, 최신형 컴퓨터 한 대쯤은 있어야지! 용산 가서 최고 사양으로 쫙 뽑고, 모니터도 100인치짜리 벽에 딱 박자. 폼이 나야 영감이 떠오르지!"

그의 호기로운 제안에 내가 찬물을 끼얹었다.

"형. 요즘 AI 돌리려면 그래픽 카드만 200만 원이 넘어. 본체만 500은 될 걸."

"......뭐? 오... 백?"

"거기에 모니터, 소프트웨어, 구독 비용까지 하면... 마우스랑 키보드 사면 끝나겠는데?"

"!!!"

남 대표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랬다. 우리는 꿈과 희망에 부풀었지만, 손에 쥐고 있는 자본금은 너무나 초라했다. 벤츠 S-클래스를 판 돈으로 사무실 비품 사고, 회식하고, 빚 좀 갚고 나니 500이 남았는데, 그 돈은 이 바닥에선, 입장권조차 살 수 없는 푼돈이었다.

"하아..."

우리는 말없이 식어버린 믹스커피만 홀짝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지게차 소리가 요란했다. 최첨단 8K 영상과 시장통 양파 창고 사이의 괴리감. 그 아득한 거리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그때, 남 대표가 먼지 쌓인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야... 너무 기죽지 마라." "......"

"원래 스티브 잡스도, 구글 창업자들도 다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했어. 걔네라고 처음부터 맥북 썼겠냐? 다 땜질하고 지지고 볶고 그랬겠지."

"남 대표. 걔네는 천재였고, 우린 컴맹이잖아."

김 작가의 팩트 폭격에도 남 대표는 굴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더 대단한 거지. 천재가 성공하면 다큐지만, 바보가 성공하면 드라마잖아. 우린 언더독 신화를 찍는 거라구, 지금."

그 뻔뻔한 긍정론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스티브 잡스에겐 쾌적한 캘리포니아의 차고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생존 본능이 꿈틀대는 서울의 양파 창고가 있다.

비록 지금은 화면 꺼진 노트북과 믹스커피뿐이지만. 언젠가 이 냄새나는 창고가 전설의 시작점이 되리라 믿으며.

"마시자. 커피 식겠다."

우리는 건배하듯 종이컵을 부딪쳤다. 쓰고 달달한 믹스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우리의 무모한 도전은, 이제 막 부팅을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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