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통>의 버려진 창고이자 우리의 작전 본부. 오전 11시.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바로 '냄새'와의 전쟁.
"야, 뿌려! 더 뿌려! 구석구석!"
남 대표가 다이소에서 사 온 '라벤더 향 방향제'를 소화기처럼 난사했다. 나는 대걸레로 바닥을 미친 듯이 훔쳤다.
"형, 냄새가 더 이상한데? 썩은 배추 냄새에 라벤더가 짬뽕됐어. 무슨 하수구에 꽃 꽂아놓은 냄새야."
"닥쳐. 이게 바로 '인더스트리얼 힙(Industrial Hip)'이야. 성수동 카페 가면 다 이래."
남 대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짝짝이 책상 위를 닦았다. 어제 인아에게 "사무실이 좀 내추럴하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이건 내추럴이 아니라 그냥 '야생'이었다.
오후 1시. 창고 밖에서 하얀색 테슬라 모델 Y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주변의 지게차들과 녹슨 1톤 트럭 사이에서, 그녀의 차는 마치 진흙탕에 떨어진 진주처럼 이질적이었다.
"왔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차 문이 열리고, 인아가 내렸다. 깔끔한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 한 손에는 맥북, 다른 한 손에는 스타벅스 캐리어를 든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여기야!"
외부 계단에서 내가 손을 흔들었다. 허인아가 코끝을 살짝 찡그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남 대표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동시에 가장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마중 나갔다.
"아이고, 우리 허 수석님! 누추한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했어!"
남 대표가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으로 인아를 안내했다. 철문을 열자 끼이익- 하는 그로테스크한 소리와 함께 우리의 본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 낀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급조한 짝짝이 책상들. 벽에 걸린 노래방 TV, 번쩍이는 중고 게이밍 PC.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괴상망측한 향기.
인아는 선글라스를 벗고 창고 안을 천천히 훑었다. 정적이 흘렀다. 1초, 2초, 3초.
"......."
"좀... 환경이 그렇지...?"
"됐어요. 어차피 기대도 안 했으니까."
그녀는 쿨하게 가방을 내려놓고, 가져온 커피를 우리에게 건넸다.
"드세요. 감독님 거는 라떼에 샷 추가했고, 대표님은... 그냥 뜨아 드세요."
그녀가 150만 원짜리 우리들의 보물, '당근 1호' PC 앞에 앉았다. 현란한 LED 불빛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거 어디서 주워오셨어요? PC방 폐업 정리?"
"아냐 아냐. 젊은 친구가 무지 아끼던 건데... 당근에서 쿨거래로 업어왔지."
"그래픽 카드 3080이면 뭐... 8K 렌더링은 무리겠지만, 일단 프롬프트 짜는 용도로는 쓸만하겠네요."
그녀는 익숙하게 맥북 프로를 연결하고, 노래방 TV와 연동시켰다. 화면에 [가수왕] 번인 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 '가수왕'은 또 뭐예요?"
"아! 저거? 우리도 어차피 ‘영화왕’이 될 거라는..."
"형, 조옴!"
남 대표의 아무말 대잔치에 내가 급제동을 걸었다. 너무 수치스럽기도 했고. 인아는 어이없는 헛웃음을 짓더니, 안경을 고쳐 썼다. 눈빛이 변했다. 그녀가 프로로 살아왔다는 걸 증명하는 눈빛이었다.
"자, 환경 탓은 나중에 하고. 일합시다."
그녀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제가 어제 감독님 말씀 듣고 밤새 고민해 봤거든요."
"어제 그거...? 아직 아이템이 정해지지 않았..."
"디지털 노숙자니, 업데이트 거부니 하는 거요."
그녀가 말을 끊으며 화면에 폴더 하나를 띄웠다.
"근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요즘 다들 미래지향적이고 예쁜 것만 만드는데, 반대로 아주 '구질구질하고 아날로그적인' 질감으로 승부하면 틈새가 있을 것 같아요. 디지털 세대들이 못 가진 결핍이랄까."
"오! 역시! 영화계 출신은 달라! 센스가 있어!"
남 대표가 물개박수를 쳤다. 인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시나리오 한 번 보여 주세요."
"......어?"
"대본이요. 기획은 들었으니까, 구체적인 텍스트가 있어야 AI한테 구성을 짜게 하죠. 아직까지는 캐릭터 설정, 지문, 대사는 사람이 쓴 게 더 좋아요."
순간, 창고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나와 남 대표는 서로의 눈만 쳐다봤다. 어제 삐져서 가방 싸 들고 나간 김 작가. 그리고 그가 가져간 외장 하드.
"왜요? 설마... 시나리오가 없어요?"
인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니... 그게..."
남 대표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이... 있지! 당연히 있지! 근데 지금... 수정 중이야."
"수정이요?"
"어, 어! 청룡상 각본상 받았던 김태수라고 들어봤지? 그 양반이... 창작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지방 펜션에 들어갔어. 김작이 영감이 안 떠오르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스타일이라."
"......"
인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지금 공모전 마감이 2달도 안 남았는데, 작가가 글 쓰러 지방엘 갔다고요?"
"금방 온대! 오늘내일 해! 하하하!"
남 대표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창고를 울렸다. 인아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녀도 그걸 안다.
"감독님.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요."
"......도망갔어."
"네?"
"우리가... 올드한 감성이라고 쿠사리 줬더니, 삐져서 나가버렸어."
"하..."
인아가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맥북을 탁 덮어버렸다.
"저 갈게요. 내년에 다음 공모전 준비하세요 그냥."
"아악! 안 돼! 인아야! 아니, 인아 씨!"
남 대표가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로 매달렸다.
"인아야, 김 작가님 없어도 돼! 우리도 시나리오 써놓은 거 많아! 그리고 박 감독 이 친구도 글빨 죽여주잖아!"
"아... 그랬죠."
인아가 싸늘하게 웃었다.
"감독님 기획 회의 할 때, 작가가 시나리오 탈고해 오면 '와... 진짜 이걸 발로 썼냐' 그러면서 저희 연출부들한테 '시나리오란 이런 것이다', '3막 구조란 무엇인가' 열변을 토하셨던 거 기억나네요."
"그치? 너 기억력 죽인다. 그걸 다 기억하네. 그러니까 내가..."
"근데."
인아가 말을 잘랐다.
"감독님이 수정하신 거, 저희 연출부도 다 읽어 봤거든요."
"......"
"그때 저희끼리 그랬어요. '우리 감독님은 연출은 모르겠는데, 글은 안 되겠구나...'"
"......"
인아의 뼈 때리는 돌직구에 갑자기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 우리 연출부 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일까지 시나리오 없으면, 저도 못 도와드려요."
"소재만 있으면, 요즘 AI가 글도 잘 써준다며?"
"감독님. 그건 누구나 다 해요. 감독님만의 방식, 감성, 촌스럽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이, 우리 선배님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 아니었어요?"
그녀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업계 경력이 도합 몇 년인데, 영화도 모르는 어린놈들 참교육 시킨다 어쩐다 했던 치기 어린 자만감이, 우리의 처참한 현실을 마약처럼 덮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시나리오 준비 안 되면, 해봤자 뻔한 결과밖에 안 나와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 PC 쿨러 청소 좀 하세요. 소리 때문에 집중 안 되니까."
그녀는 스타벅스 컵만 남겨둔 채, 바람처럼 사라졌다. 다시 남겨진 우리 둘. 그리고 지독한 양파 냄새.
"야... 어떡하냐?"
"어떡하긴. 방법 있어?"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김 작가의 번호를 눌렀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잡으러 가자."
"어디로?"
"김 작가가 어디 있을지 감이 왔어. 삐지면 꼭 가는 곳."
남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현대 유통>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맞아 맞아. 스토리가 순탄하기만 하면 그게 영화냐?"
우리의 '맹수 조련사'는 구했지만, 정작 맹수에게 먹이를 줄 '사육사'가 집을 나갔다. 이놈의 프로젝트는 산 넘으면 절벽이고, 절벽 넘으면 늪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