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수 작가의 이야기
종로3가 익선동의 단골 식당. 식어 빠진 명태 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빈 막걸릿잔을 쭉 채웠다.
"......괴물."
아까 낮에 본 그 흉측한 이미지가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편지를 입에 물고 네 발로 기어가는 우체부. AI가 내 시나리오 <마지막 편지>를 읽고 그려낸 결과물이었다.
"멍청한 기계 새끼…."
욕을 뱉어보지만, 속이 시원하지 않다. 사실 내가 도망친 건, 그 그림이 기괴해서가 아니었다. 낡은 감성 쪼가리를 입에 물고, 차가운 현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짐승. 그게 딱 나, 김태수였기 때문이다.
까톡- 그때 휴대폰 알림창에 딸 민지로부터 톡이 왔다.
“아빠 내일 약속 잊지 않았지? 톡으로 장소 보내놨으니까 늦지 않게 와.”
민지는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사위라고 하는 녀석은 내일 처음 얼굴을 본다. 그러고 보니 민지 얼굴 본 지도 벌써 1년도 넘은 것 같다. 지 엄마 그렇게 되고 나서, 딸은 집을 나가 직장 근처 원룸으로 독립했고, 생계도 각자 알아서 꾸려나간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남들처럼 오붓하게 같이 살지는 못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밥이라도 꼭 먹자고 약속한 것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다 이 애비가 못난 탓이지...
다음 날 오후 12시. 청담동 명품 거리 안쪽 블럭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찾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은 2000년 초반에는 참 많은 영화사들이 있던 곳이다. 벤처기업 투자 붐을 타고, 영화계가 돈이 넘쳐났던 시기이기도 하고,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이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장화, 홍련> 등 저마다 걸출한 영화를 탄생시켰던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이기도 하다. 벌써 그게 27년 전이라니... 참 그땐 나도 어렸고, 소문난 유망주이기도 했다. 여기저기 영화사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빗발쳤고, 2년 치 집필 스케줄이 꽉 차있기도 했었다. 그 시절, 강남의 고급 술집들을 호령하던 영화사 대표님들은 지금쯤 뭘 하고 지내시려나.
감상에 젖을 때쯤, 단독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美友(미우)”.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서 핫해진 셰프가 운영하는 고급 파인 다이닝이라는데. 나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자리로 들어갔다. 딸아이의 얼굴을 반갑게 볼 생각을 하니 설레었던 마음도 잠시, 내 낡은 재킷 소매 끝이 닳아 실밥이 터져 있는 게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아빠. 저 번에 말했던 사람이야”
"아버님, 처음 뵙겠습니다. 최진혁입니다."
딸아이가 데려온 예비 사위는 번듯했다. 판교에 있는 대기업 게임 회사 임원이라더니, 입고 있는 수트 때깔부터 나와는 종족이 달라 보였다.
"반가워. 이렇게라도 결혼 전에 보게 돼서 정말 다행이네. 우리 민지... 잘 부탁하네."
"네. 민지 씨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교육 사업 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지금은 조용히 전원생활 하신다고요."
"......어?"
나는 숟가락을 든 채 멈칫했다. 교육 사업? 전원생활? 나는 민지를 쳐다봤다. 민지는 내 시선을 피하며 물만 들이켰다.
"어,.. 뭐. 그런지 좀 됐어."
나는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딸은 나를 '한물 간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은퇴한 사업가'로 포장해 놓았다. 예비 시댁에 내 진짜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웠던 거다.
식사가 끝날 무렵, 사위가 화장실에 간 사이 민지가 핸드백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받아. 양복비야."
"아빠 돈 있어.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냥 받아. 제발."
민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날 입을 양복, 내가 골라준 걸로 입어. 아빠가 입는 그 촌스러운 거 말고. 그리고 이발도 좀 하고. 손톱 밑에 때도 좀 빼고."
"민지야."
"그리고 아빠. 부탁이 있어."
민지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눈에는 애정이 아니라, 독기가 서려 있었다.
"결혼식 날... 혼주석에는 앉지 말아 줘."
"......뭐?"
순간, 귀가 멍해졌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시댁 어른들이 좀 까다로우셔. 아빠... 솔직히 말해서 지금 아빠 모습 누구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 진혁씨 부모님이 아빠 보시면... 나 이 결혼 엎어질 수도 있어."
"야, 김민지. 너 말이 심하다. 나 네 친아빠야!"
"친아빠?"
민지가 피식 웃었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엄마 암 수술하던 날, 아빠 어디 있었어? 시나리오 마감한다고 작업실에 처박혀 있었잖아. 엄마 임종은 지켰어? 그래놓고 이제 와서 아빠 대접을 받겠다고?"
"......"
말문이 막혔다. 10년 전의 일. 내 인생 가장 큰 죄책감. 그걸 민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난 내 결혼식, 완벽했으면 좋겠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인공 되는 날이야. 그날까지 아빠의 그 '구질구질한 실패'를 전시하고 싶지 않아."
민지가 결정타를 날렸다.
"입장은... 외삼촌이랑 할 거야. 아빠는 그냥 하객석 뒤쪽에 앉아 있다가, 밥이나 먹고 가. 내 마지막 부탁이야."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것. 그게 내 남은 인생의 유일한 꿈이었는데. 딸은 나를 철저히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나는 도망치듯 레스토랑을 나왔다. 뒤에서 사위가 "아버님, 벌써 가십니까?"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볼 수 없었다. 내 눈에서 떨어지는 게 빗물인지 눈물인지 들키기 싫어서.
그 길로 한 달음에 도착한 경기도 안성의 한 낚시터. 이곳은 내가 글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찾아오던 나만의 아지트다. 물안개 짙게 깔린 시커먼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끝에 달린 야광찌를 쳐다보고 있으면, 어떤 개같은 시련이 생겨도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멈추지를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나는 민지가 준 돈 봉투를 찢어발겼다. 5만 원짜리 지폐들이 물 위로 힘없이 흩어졌다.
"나쁜 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민지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서.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놈이 그 화려한 식장에 서면, 민지 얼굴에 먹칠이나 할 게 뻔해서. 그게 너무 비참했다.
"죽자... 그냥 죽어, 태수야."
나는 남은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작가 김태수는 죽었다. 아버지 김태수도 죽었다. 이제 남은 건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낡아빠진 껍데기뿐이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저수지를 향해 한 발씩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콰앙-!
고요한 낚시터의 정적을 깨고, 쌍라이트 불빛이 내 방갈로를 덮쳤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