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수렁에서 건진 우리 작가

by 배윤성

콰앙-!
고요한 낚시터의 정적을 깨고, 쌍라이트 불빛이 김 작가의 방갈로를 덮쳤다.

비포장도로를 미친 듯이 달려오는 낡은 트럭 한 대. <현대 유통> 트럭이었다.
"아오, 저 거머리 같은 인간들..."
트럭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 대표가 씩씩거리며 뛰어왔다.
"야! 김태수! 너 여기 숨으면 못 찾을 줄 알았냐?!“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선 김 작가는 이미 허벅지까지 저수지에 담근 상태였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설마...“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남 대표가 솥뚜껑만한 손으로 김 작가의 멱살을 잡고 물 밖으로 던지듯이 끄집어냈다. 그 자리에서 김 작가는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난 얼마나 놀랐는지 손이 덜덜 떨렸다.
”이 미친놈아. 지금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냥 인생 끝내면 다야?
"어떻게들 알고 왔어?"
"이 새끼야. 우리가 남이냐? 너 똥 싸는 곳까지 다 알아!"
남 대표가 찢어진 돈 봉투와 물에 둥둥 뜬 지폐들을 봤다. 그리고 김 작가의 퉁퉁 부은 눈을 봤다. 그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너 뭔 일 있지? 혹시... 민지 만났냐?"
"......"
"도대체 뭐랬는데, 그 기집애가?"
김 작가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간 참았던 설움이 터져 나오듯이 울음 섞인 신음이 나왔다.
"나보고... 결혼식 때 숨어 있으란다. 지 외삼촌이랑 들어간단다. 나는... 애비 자격도 없대."
"뭐?? 하... 미친년... 지가 누구 등골 빼먹고 컸는데."

남 대표가 내 앞에 소주잔을 탁 내려놓았다.
"야, 김태수. 잘 들어."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너 그래서 어쩌려고? 결혼식 날 구석에 처박혀서, 네 딸이 딴 놈 손 잡고 들어가는 거 구경만 할 거냐고!"
"그럼 어떡해! 지금 내가 이 꼴인데!"
"그러니까 증명해야죠!"
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작가님. 딸한테 아빠를 증명해 보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뭐?"
"스크리너스에 있는 제 후배가 그랬어요. 작가님 오랜 팬이라고. 작가님 글이 '진짜'라고. AI는 흉내도 못 내는 진짜라고."
내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 우체부요. 네 발로 기어가는 거, 쪽팔린 거 아니에요. 편지 전해주려고, 약속 지키려고 기어가는 거잖아요. 그게 아버지잖아요."
"......!"
"작가님. 우리 100억 탑시다. 그래서 결혼식 날, 보란 듯이 10억짜리 수표 민지 손에 쥐여주고, 당당하게 아빠 손 잡고 들어가라고 해요."
남 대표가 씨익 웃었다.
"야. 우리가 너 세탁 한번 제대로 시켜줄게. 아비 노릇하게 해 줄게. 그러니까 일어나. 죽는다 고 난리 피지 말고."
한참을 눈을 감은 채 말을 잇지 못하던 김 작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야, 박감독."
"네?"
"그 우체부... 기어서라도 간다고 했지?"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쳐 쓰자. 기어서라도 가는 게 아니라, 기어서라도 한 번 살려내 보자."

경기도 안성 낚시터. 새벽 2시. 자욱했던 물안개가 걷히고 차가운 밤공기만 남았다. 트럭 헤드라이트는 껐지만, 우리 셋 사이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기어서라도 살려낸다... 말은 좋네."
남 대표가 식어빠진 족발 뼈를 뜯으며 투덜거렸다.
"근데 태수야. 냉정하게 까놓고 말하자. 그 우체부 이야기는 좀 그렇긴 해"
김 작가의 손이 멈칫했다. 방금 전까지 비장하게 타올랐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
"솔직히 말해서, 우리 감성에는 맞어. 근데 요즘 애들이 보기엔 그냥 '틀딱' 감성이야. 네 딸내미가 왜 질색했겠냐? 걔네 눈엔 그런 게 구질구질해 보이는 거야."
남 대표의 말은 아팠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어제 AI가 그려낸 '괴물 우체부'. 그건 어쩌면 대중이 우리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럼 어쩌라고! 다 엎어? 이제 와서 뭘 새로 써!"
김 작가가 소주잔을 바닥에 집어던질 듯 소리쳤다. 그때,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작가님... 저한테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한 번 들어 보실래요?"
"뭔데?“
"오랫동안...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저 혼자만 가슴속에 묵혀뒀던 얘긴데요.“
”그래! 박 감독! 너 뭐 하나 있을 것 같더라. 싹 한 번 풀어봐.“
남 대표가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10년 전, 내가 감독으로 ‘이걸로 마지막 작품이다’ 생각하고 썼다가 도저히 절절한 사랑의 감정선에 자신이 없어서 서랍 속에 처박아둔 아이템이었다.
"제목은... <별을 쏘다>라고 지었는데."
"별을 쏘다?"
"네. 배경은 1982년 군사 정권 시절 서울이고요. 주인공은 로켓 설계자를 꿈꾸는 천재 공대생 '선호'와, 그를 포섭하려는 북한 공작원 '보영'의 사랑 이야기예요."
남 대표가 족발을 내려놓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간첩? 멜로? 약간 ‘쉬리’ 냄새가 나는데?”
“아이... 이 인간 또 버릇 나오네. 소재만 비슷하면 초치는 버릇. 그래 좀 더 풀어봐.”
김 작가가 조금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주인공 보영은 대남 당국의 지령을 받고 선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요. 근데 선호란 놈이 참 골 때려요.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물리 공식만 아는 바보인데, 한없이 긍정적이죠. 그냥 '고장 난 건 고치면 됩니다' 주의예요. 근데 완전히 보영이한테 뻑이 간 거죠. 당연히 보영이가 처한, 목숨이 걸린 사정은 상상도 못한 채.
나는 김 작가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둘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정체가 들통나고 안기부에 쫓기는데... 보영은 선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기로 결심해요. 그리고 보영에게 그 명령을 내린 게, 바로 고정간첩이자 보영의 아버지인 일명 '고스트'라는 요원이고요."
정적이 흘렀다. 남 대표가 무릎을 탁 쳤다.
"야... 괜찮은데? 시대극에 첩보, 거기다 신파까지! 상업영화 공식이네! 게다가 '고스트'? 딸한테 총 겨누는 아버지? 야, 이거 완전 자극적인데?"
하지만 김 작가는 말이 없었다. 그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 감독."
"네."
"구성은 좋네. 사건도 촘촘하고, 근데 네가 연출하고 네가 쓰면 되겠네. 내가 왜 필요해? 대사나 손 봐달라고?"
그의 자격지심이 튀어나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쓰면 그 감정이 안 나오죠."
"뭐?"
"작가님도 알잖아요. 제 영화... 완전 드라이한 거. 잘난 척좀 하자면 전 액션 장면이나 미장센은 기가 막히게 짜죠. 근데 감정씬만 들어가면 덜컥거리는 거. 평론가들이 맨날 그랬잖아요. '박찬혁 영화엔 뼈는 있는데 뜨거운 피가 없다'고."
나는 진심을 담아 김 작가의 손을 잡았다.
"이 이야기, 뼈대는 제가 세웠는데... 피랑 살이 없어요. 공대생 선호가 보영을 보며 느끼는 그 바보 같은 순수함,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사랑. 청춘. 그리고 딸을 사지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찢어지는 심정... 저는 절대 작가님처럼 못 써요."
"......"
"작가님의 그 '아날로그'한 진정성이 필요해요. AI는 흉내 못 내고, 저 같은 연출쟁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사람 마음을 후벼 파는 작가님의 그 '진짜 감정'. 그 영혼을 이 대본에 넣어줘요."
김 작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낡은 감성이, 사실은 이 뼈다귀 같은 아이템에 생명을 불어넣을 유일한 무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김 작가의 관심이 '고스트'라는 캐릭터에 꽂히는 듯 했다.
"......딸을 죽여야 하는 운명에 놓인 아버지라."
김 작가가 씁쓸하게 웃었다. 민지의 얼굴이 떠오른 듯했다. 자신을 결혼식장에 오지 말라며 밀어내던 딸. 그런 딸을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태워버리려는 자신. 이 '고스트'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운명이 가슴에 박혔다.
"하... 나 참."
김 작가가 헛웃음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박찬혁이... 사람 꼬시는 재주는 여전하네."
"형님. 같이 해요. 민지한테 보여줍시다. 아빠가 쓴 시나리오가 얼마나 대단한지."
남 대표가 끼어들었다.
"그래! 야, 100억 타면 반땅... 은 좀 그렇고, 공평하게 N분의 1로 하자. 민지 혼수? 30평대 아파트 한 채 해줘 버려! 떵떵거리면서 식장 들어가자고!"
김 작가가 피우던 담배를 낚시터 바닥에 비벼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박 감독."
"네."
"이 '고스트'라는 놈 말이야."
김 작가의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단순한 악역으로 그리면 재미없어. 냉전 시대가 만든 괴물이어야 해. 그래야 마지막에 자폭할 때, 관객들이 가슴을 쥐어뜯지."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해보자. 선호 캐릭터도 너무 단순해. 천재 공대생이라도 사랑을 느낄 땐 시인이 돼야지."
김 작가는 낚시 가방을 둘러메며 남 대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일어나, 이 예술도 이해 못 하는 장사꾼아. 시동 걸어."
"어? 오케이! 가자! 서울로!"
새벽 4시. 서울로 돌아오는 트럭 안. 술 먹은 남 대표 대신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덩치 큰 남 대표와 김 작가는 좁아터진 조수석에 절절한 연인처럼 몸을 부대끼며 몸을 구겨 앉았다. 술 냄새와 족발 냄새가 진동했지만, 마음만은 칸 영화제 레드카펫 위였다.

(다음 화에 계속)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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