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야! 이거 안 떼?!"
양파 창고가 떠나가라 비명 소리가 울렸다. 도지웅이었다. 그는 지금 의자에 묶인 채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모션 캡처 센서(점)'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만히 좀 계세요! 좌표 틀어지잖아요!"
인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도지웅의 이마에 다시 센서를 꾹 눌러 붙였다.
"아니, 이게 뭐냐고! 얼굴에 점을 왜 찍어!"
"이게 있어야 배우님 표정 데이터를 따서 AI가 딥페이크 합성을 하죠. 80년대 얼굴로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딥페이크? 나 그런 거 안 해! 나 도지웅이야! 내 얼굴로 연기할 거라고!"
"아유, 진짜 말 안 통하네. 배우님 지금 얼굴로 20대 대학생 연기 하실 수 있어요? 술독에 절어있는 40대로 보이는데?"
"뭐?! 야, 너 말 다 했어?“
도지웅이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창고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나와 남 대표, 김 작가가 달려들어 도지웅을 뜯어말렸다.
"지웅아! 진정해! 인아 씨가 기술 감독이야. 전문가 말 들어야지."
"형님! 나 이런 데서 못 찍어요! 카메라 어딨어요? 조명은? 메이크업, 헤어는? 딸랑 저 컴퓨터 한 대 놓고 무슨 영화를 찍어!"
도지웅이 150만 원짜리 '당근 1호' PC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양파 냄새 진동하는 창고. 조명이라곤 천장에 달린 형광등 몇 개. 카메라는 인아 씨의 아이폰 19 프로가 전부였다.
"아니 남 대표님, 이러려고 나 데리고 왔어요? 이게 무슨 영화야... 이건 완전 애들 소꿉장난이지. 나 다시 갈래. 차라리 순댓국집을 차리고 말지,"
도지웅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인아 씨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가세요. 안 말려요."
"뭐?"
"어차피 그 낡아빠진 연기 톤, AI 학습시키는 데 방해만 돼요. 전 처음부터 반대했어요. 데이터 값도 안 나오는 '감'에 의존하는 배우 따위 필요 없다고."
"야... 넌 뭐야? 니가 연기를 알아?"
도지웅의 눈이 뒤집혔다. 미친개의 본성이 나오려는 찰나였다.
남 대표의 표정이 안절부절 가관이었다.
"그만!!"
김 작가가 대본 뭉치로 책상을 내리쳤다. 짝! 소리가 창고를 울렸다.
"니들,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목숨 걸고 데려왔더니 싸움질이나 하고 자빠졌어?!"
평소 유순하던 김 작가의 호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김 작가는 씩씩거리며 도지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대본 한 권을 가슴팍에 던졌다. 며칠 밤을 새우면서 쓴 대본이었다.
"도지웅 씨 대본 제대로 읽어요."
"......?"
"이거 읽고도 도망가고 싶으면 가요. 안 잡으니까."
도지웅은 바닥에 떨어진 대본을 멍하니 쳐다봤다. <별을 쏘다 - 시나리오 김태수> 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본을 집어 들었다.
"하... 대본? 좋습니다. 뭘 찍으려고 이 난리를 치는지 저도 궁금은 하네요 "
그는 구석에 있는 의자 위에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우리는 숨죽이며 그를 지켜봤다. 인아는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었고, 남 대표는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10분. 20분. 30분. 도지웅의 자세가 점점 바뀌었다. 삐딱했던 다리가 모아지고, 구부정했던 허리가 펴졌다. 그가 대본을 넘기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
도지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남 대표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야, 박 감독. 통했다."
도지웅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작가님."
"어." "이 ‘선호’라는 새끼... 왜 이렇게 병신 같아요?"
"......뭐?"
”사랑? 그게 뭐라고... 지 목숨을 걸어. 미국 가면 꽃길이 열려 있는데.“
한숨을 쉬더니, 김 작가를 쳐다봤다.
"고스트 이 캐릭터... 딸 살리려고 자폭을 해? 미친놈 아냐? 자기가 살아야지, 왜 죽어?"
도지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 같으면... 나 같으면 절대 안 죽어. 억울해서라도 살 거야. 근데... 근데 왜 눈물이 나냐고 씨발!"
그가 대본을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의 20억 빚, 망가진 인생, 그리고 바닥을 친 자존감. '고스트'의 희생이 도지웅의 억눌린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다.
김 작가가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그게 아비 마음이에요. 지웅씨도...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테니까."
도지웅은 한참을 울다가 코를 팽 풀었다. 그리고 인아를 노려봤다.
"전문가 아가씨."
"......네."
인아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점찍어요."
"네?"
"얼굴에 점찍으라고! 천 개든 만 개든 다 찍어요! 대신..."
도지웅의 눈빛이 번뜩였다. 진짜 배우의 눈이었다.
"내 눈빛, 내 떨림. 눈물 이거 하나라도 놓치면 가만 안 둬. 기계가 못 잡으면 당신이 그려서라도 넣어요. 알았어요?"
인아 씨가 멍하니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제 배우 같아 보이네. 걱정 마세요. 제 아이폰은 모공 속 피지까지 잡아내니까."
"좋아요. 해봅시다."
"자! 그럼 다시 세팅해!"
난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인아는 센서 다시 붙이고, 형님은 짜장면에 탕수육 주문 부탁해요! 지웅이 배고프단다!" "오케이! 밥심이지!"
남 대표가 신이 나서 배달앱을 켰다. 양파 창고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먼지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기묘하지만 뜨거운 공기.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계와 인간, 미친개와 기술자.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불협화음들이, 조금씩 하나의 화음(Harmony)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 테스트 슛 갑니다!"
인아 씨가 아이폰을 들었다. 도지웅이 카메라 앞에 섰다. 얼굴엔 우스꽝스러운 점들이 찍혀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1982년의 '선호' 그 자체였다.
"레디... 액션!“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