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 호랑이를 농락하다

(영화 내용 포함)

내가 몰랐던 또 다른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 우리에게 절대 잊혀서는 안 될 역사를 영화로 만들어 준 이준익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인간사회에는 평균 이하의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가진 인간의 탈을 쓴 동물이 있는가 하면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인물들 역시 존재한다. 역사를 들춰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지른다.


1923년 관동대지진, 비극의 서막이 열리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시즈오카(靜罔)•야마나시(山梨)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 명에 달했다. 다음날 출범한 제2차 야마모토(山本)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혼란이 더욱 심해져가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이에 격분한 일본인들은 자경단(自警團)을 조직, 관헌들과 함께 조선인을 무조건 체포•구타•학살했다. 이 사건으로 몇 명의 한국인이 학살당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천 명•3천 명•6천 명 등의 설이 있다. 일본이 이 진재에서 입은 총 피해액은 65억엔이라 하며, 그 후 이의 복구를 위해 노력했으나, 무고한 한국인을 수천 명씩이나 학살한 일본 군벌의 잔학행위는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관동대지진 [關東大地震] (한국 근현대사 사전, 2005. 9. 10., 가람기획)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한 권력집단의 사기극, 어찌 손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단 말인가?


미즈노 曰 "조선인에게는 영웅, 우리한 텐 원수로 적당한 놈을 찾아."

박열 曰 “그들이 원하면 영웅이 돼줘야지”


박열, 일본 군부의 얄팍한 술수를 역이용하다. 박열은 기꺼이 죽어 주고자 했기에 일본을 농락 수 있었으며, 자신의 신념과 하나 된 박열에게 대의를 위해 내놓는 ‘목숨’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셈법으로는 절대 상상할 수 도 짐작할 수 도 없었기에 천왕의 패거리들은 박열에게 놀아날 수 밖 없던 것이다.


관복을 입고 재판장에 등장하다.

박열 曰 “재판장, 자네도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천왕의 패거리들이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한 명분이 절실함을 꽤 뚫어본 박열은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그들을 농락함과 동시에 일본 권력의 민 낯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다. 박열은 하루 빨리 자신을 재판장에 불러내어 대역죄인의 낙인을 찍고 싶어 안달 난 패거리들의 절박함과 조급함을 이용하여 죄인으로써가 아닌 일본 군부의 만행 되물을 조선의 청년이자 대표로서의 대우를 요구하였고 핑크색 관복을 입고 재판장에 등장하게 된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고 박열은 세상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다. 대의를 위해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은 한 인물의 존재가 조금이나마 수백수천의 억울함을 달래고 사람이기를 포기한 인간이 자신의 만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박열 曰 "내 일본 권력에 대해서 반감이 있지만 민중한테는 오히려 친밀감이 들지"


일반화의 오류, 모든 일본인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민족의 굴레를 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일본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극단적인 반일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박열의 대사 "내 일본 권력에 대해서 반감이 있지만 민중한테는 오히려 친밀감이 들지"처럼 우리가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일본 민중이 아닌 일본 권력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일본의 권력이 아닌 권력 그 자체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절대적 다수는(민중은)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사리사욕에 이용당하고 희생당하지 않았던가? 굳이 일본이 아니라도 권력집단의 만행은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한 '부림사건'과 곧 개봉을 앞둔 영화 '택시운전사'의 광주항쟁처럼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구든지 희생하려 하고 누구든지 희생시켜 왔다.


자신의 신념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어찌 박열이라고 보통의 우리와 같은 갈등이 없었을까? 그 또한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위한 삶의 환희를 알아버렸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꿈틀 되었기에 보통의 삶을 살 수 없었으리라 감히 가늠해본다.


사랑보다 더 강력한 신념으로 연결된 박열과 후미코, 나 자신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는 이상과 신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벅차게 한다. 영광스럽게도 박열에게는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고 함께 바라보는 후미코라는 영혼의 동반자까지 있었으니 어찌 용감하지 않을 수 있고 어찌 주저할 수 있을까. 박열은 그렇게 누구보다 단호하며 당연하게 자신의 신념이 이끄는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삶, 결국 그것 역시 나를 위한 삶이 아닐까? 행복한 인생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만연한 오늘, 나를 위한 만족과 행복이 아닌 우리의 만족과 환희를 통해 내가 더 충만해지는 삶을 가늠하고 상상해 보자. 스쳐가듯 흘러가는 인생, 한평생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만 바둥거리지 말고 인생의 의미를 조금게, 금 더 깊게 확장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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