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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Feb 22. 2021

사바나의 두 얼굴

조지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사바나는 사바나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있어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인 1773년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번성했던 도시이다.

담배와 목화 농사로 부유한 농장주들이 많이 늘어나며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19세기까지 꾸준히 번성했다. 

남북전쟁 당시 마지막까지 버티었지만  애틀랜타에서 사바나까지 무서운 파괴를 하며 쳐들어 온 북군의 셔먼 장군에게 1864년 크리스마스에 항복한다.


셔먼 장군은 링컨 대통령에게 "사바나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립니다."라는 소식을 날렸다.


성 요한성당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목화를 수출해 남부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했고 독립 후에도 남부 경제의 중심지였던 사바나는 화려했던 옛 모습을 다시 복원시켜 관광객들을 부른다.


이른 아침 햇살이 라이브 오크 나무 사이로 흩어져 내려올 때 

남부 도시 다운 사바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좋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좀 무서운 내용의 소설을 쓰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플래너리 오코너의 어릴 적 집도 있다.


       "Mama always said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Forrest Gump가 앉아서 

"Life is a box of Chocolate, You never know what you going to get" 하며 

지난날 들을 이야기 하던 텔페어 스퀘어의 벤치.

 수 백 년 된 유적지보다 사람들이 더 찾는 명소가 되었다.



시청 청사가 금빛으로 빛난다.


화려한 유람선이 사바나 강을 지난다.


 대서양 연안에서 첫 번째로 목화 수출을 많이 했던 목화 교환소가 있다.

한해 200만 베일을 수출했다니 엄청난 량이다.

참고로 한 베일의 목화는 청바지 217개, 침대 시트 247장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로 수출했고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이 항구를 봉쇄하여 남군의 목줄을 조였다.




목화 재배는 완전히 흑인 노예들에 의해 지었다.




관광객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이곳에 사죄라도 하듯이 시청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흑인 가족의 동상이 서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도둑맞아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서 팔려 왔다.

우리는 노예선 바닥에  누워 서로의 배설물과 오줌  위에서 함께 왔다.

목숨이 없는 몸뚱이는 함께 바다 밖으로 던져졌다.

오늘, 우리는 믿음과 약간의 기쁨으로 함께 서 있다.           

- 마야 안젤루-

사바나에 가면 꼭 가 보라는 레오폴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떠 준다.

이 아이에게서  왠지 서글픔이 느껴진다. 




목화밭의 이 흑인 노예와도 닮았다.





영국으로 목화를 수출하던 이 항구로 아시아의 물건들이 들어온다.



한때 아주 잘 나가던 화려했던 도시 


노예를 들여와 목화를 재배하고 

한때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이 화려했던 도시는 이제 나이 들고 쇄락해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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