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의 첫 설법지 사르나트.

by 질경이

불교에서 말하는 성지로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부처님이 깨달은 후 설법을 한 사르나트 부처님이 열반하신 쿠시나가라 네 곳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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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가야에서 고행 끝에 해탈하신 후 11일 동안 걸어서 바라나시 북쪽 10킬로에 있는 사르나트에 도착한 부처는 다섯 명의 제자를 놓고 설법을 시작하셨다. 그의 설법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부처님 사후 굽타시대에는 30개의 사원에 3000명의 스님들이 정진하던 불교의 성지였다.

우리의 혜초스님도 이곳에 오셔서 "소원을 이루었노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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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세기 터어키군이 쳐들어와 사원을 파괴하고 그 후 사람들은 이곳의 벽돌을 떼어다 건축자재로 썼다고 한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남은 터만으로 옛날 얼마나 대단한 불교 유적지였는지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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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꽃밭을 보다. 여기는 부처님 설법하실 때부터 아름다운 동산이었다

사르나트의 옛 이름은 "므리가드바" 사슴의 동산이라는 뜻이고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녹야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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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무너진 땅 속에서 꺼낸 절터의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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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참 대단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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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바쳐야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얇은 금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치는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벽돌 틈 사이에 소박하게 꽃을 끼워 놓은 사람도 있다. 믿음의 형태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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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 성지의 대표적 건물 다메크 스투파, 굽타시대에 세워진 이탑은 상층부가 허물어져있다.

남아있는 높이가 43미터 기단의 직경이 36미터이다. 벗겨지고 깨어졌지만 남은 부분의 조각이 아직도 선명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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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이 근처 어디쯤에서 최초의 설법에서 "세상에는 두 개의 치우친 길이 있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열중하는 것인데 둘 다 천하고 무익하다.

두 개의 치우친 길을 버리고 올바른 길 중도의 길을 깨달아 통찰과 인식을 얻었고 평안과 깨달음과 눈 뜸과 열반에 이르렀노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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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려고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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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탑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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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을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사람들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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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왔다


녹야원 한쪽에 사르나트 박물관이 있다 그 안에 인도의 국장인 사자 석상이 있고 최초의 설법을 하고 있는 5세기에 만들어진 부처상이 있다.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젊은 부처가 미소 짓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을 못 찍게 해 대단히 아쉬웠다. 한참을 바라보다 뒤돌아섰다

몰래라도 찍어올걸 그랬나?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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