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도 델리이다.
1911년 영국이 콜카타에서 델리로 수도를 옮겨 이루어진 도시이다. 독립 후 심각한 종교분쟁으로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가고 힌두교도는 인도로 유입될 때 갑자기 인구가 너무 늘어나 과밀 상태이고 슬럼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길에서 사는 사람들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의 화장터 라지가트에 갔다. 인도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이다. 인도 가기 전 그의 자서전도 읽었다. 비 폭력 무 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고 자신이 남아프리카와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받아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그는 인도에 수천 년 뿌리내려있는 카스트를 폐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고 천한 불가촉천민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덕은 모든 것의 토대이다. 그리고 진실은 모든 덕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도 배웠다."
"사랑을 체험해 본 사람만이 사랑을 알고 자비의 화살을 맞아본 사람만이 자비의 힘을 안다."
"진리는 단단할 때는 금강석 같고 부드러울 때는 꽃과 같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평등 시 하려면 우선 자기 정화부터 해야 한다."
그는 성직자도 부끄러워할 만큼 검소하게 먹고 입고 살았다.
우리의 안내자는 입구에서 30분 안에 갔다 오라고 했다. 걷는 시간 신발 맞기는 시간 빼고 겨우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다. 도무지 여유 있게 볼 시간이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니 바로 맞은편에 "GANDHI MEMORIAL MUSEUM"간디 기념 박물관이 있었다. 그곳에는 그의 안경을 비롯한 죽기 전 그의 소지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여행사 안내문과 책에서 보았던 터라 나 저곳에 얼른 뛰어갔다 올 테니 15분만 달라고 했더니
"거기 아무것도 없어요 기념품 가게예요" 한다..
버스에 타서 마이크에 대고 "저거는 간디 기념관 아니에요."하고 다시 한번 방송했다.
다른 일행들은 다 그렇게 믿었다.
그는 그 시간을 아껴 비누와 향료를 파는 기념품 가게로 갔고 여자들은 한 시간 동안 비누를 사며 좋아했다.
연꽃 모양의 바흐이 사원으로 갔다.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들의 좋은 점들을 가져다 만들었다는 신흥종교이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나온다.
전쟁에서 죽어간 7만여 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 인도의 문이다.
해가 저물고 우리는 아잔타 석굴을 보러 가기 위해 밤 기차를 타고 17시간을 남쪽으로 가야 한다
인도의 기차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제시간에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 가이드의 결론은 아잔타석굴을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못보면 아쉬운건 우리지 자기는 아무상관 없다는 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