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게티즈버그 격전지에서
링컨이 한 연설

2025 대륙횡단

by 질경이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1863년 7월 1일 리장군이 이끄는 남군은 우리가 전날 지나온 쉐난도어 계곡을 지나 이곳으로 진군했다. 리장군은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유능한 군인이었다. 리 장군은 적군의 능력을 알아내 과격하게 공격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링컨대통령이 북군을 위해 싸워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그는 그의 고향을 등질수 없다고 고사했다. 그는 수 백명의 흑인노예를 소유하고 있기도 했다.


북군도 수많은 병력을 투입해 단단히 준비했다.

7월 1일, 2일, 3일, 사흘간 전투에서 남북 합해 5만 명이 여기서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실종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포트 썸터에서 시작한 전쟁으로 미국은 남과 북으로 갈려 무섭게 싸웠다. 노예를 부려서 쌀과 목화를 유럽에 수출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이던 남부 사람들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의 건국이념을 주장하는 북부사람들의 전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전쟁이라고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시민전쟁(Civil War)라고 부른다.



기념관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찍은 것

그 당시 전쟁은 이랬다.

그 당시 인구 2400명이던 이 마을이 한여름 찌는 더위에 8000 명의 시신과 2만 명이 넘는 부상자와 포로를 감당해야 했다니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비참한 일이었다.


그 해 11월 전사자들 묘지가 완공되고 링컨대통령은 그들 앞에서 역사에 남는 " 국민의 , 국민을 위한 , 국민에 의한 국가는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10 문장, 271 단어 짜리 연설을 2분 만에 끝냈다.

연설을 마친 링컨대통령은 그 후 며칠 동안 무섭게 앓았다고 한다. 앓을 만도 하다.



2년 후, 1865년 4월 9일, 아퍼마톡스라는 이 작은 마을에 리 장군이 먼저 도착했다.


이 날 아침까지 총을 겨누고 싸우던 사람들이다. 리 장군이 4년 동안 벌여온 전쟁을 끝내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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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반으로 갈라지려는 상황에서 링컨은 전쟁은 이겼지만 암살당했다.

남북으로 갈라질 뻔한 미국을 무섭게 싸워 하나로 만든 애브라함 링컨대통령을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수많은 군인들이 이 전쟁에서 사망했다. 총 맞아 죽고, 물자 공급이 안되어 굶어 죽었다



이 참혹한 전투 이후에도 그들은 2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더 싸웠다. 더 많은 젊은 군인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은 그 젊은이들을 이렇게 묘비로 기억한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은 전쟁은 참 무섭다는 거였다.

3백 년도 안 되는 미국의 역사 중 가장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날 종일 비가 내렸다.

게티즈버그에서 링컨의 연설을 생각한다.

지금 미국을 보며 링턴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가 지켜지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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