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by 질경이

오십 년 전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일 년에 두어 번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때 본 영화 중 하나가 그레고리펙이 출연한 원제 “To kill a mocking bird” , 우리말 제목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중 하나다.


책을 읽으며 긴 세월 앞에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이 희미해지는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렵던 시절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영화 속의 활발한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아이의 아버지가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 에티커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야.”

“커닝햄 아저씨도 바탕은 좋은 분이야. 다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저씨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뿐이지”

“모든 폭도들도 우리가 늘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단다.


충실한 흑인 가정부 칼퍼니아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 먹지도 않고, 옥수

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 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말을 올바로 한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고집쟁이 듀보스할머니 (고집이 세고 독립심이 강한 이 분은 우리 엄마를 생각나게 했다)

“핀치 가문 사람이 식당에서 웨이트리스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은 법원에서 깜둥이를 위해

변호를 하고 있단 말이야.”

“네 아빠는 네 아빠가 도와주고 있는 쓰레기 같은 깜둥이들보다 나을 게 없어!”

말은 독하게 해도 독립심이 강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분이다. 병 때문에 얻은 마약 중독을 자신의 의

지로 이겨낸 사람.


흑인과 결혼해 혼혈 아이들을 낳은 레이먼드아저씨

“사람들 중에는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거든”

“너희 아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는 아직 몰라 그걸 깨달으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할 거야”


말괄량이 주인공 스카우트

“아빠는 흑인을 속이는 일은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쁘다고 말씀하세요”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고 , 누구에게도 특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게이츠 선생님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일은 얼마나 나쁜지 말씀하셨어, 그런데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며 누군가가 흑인들에게 본 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점점 분수도 없이 군다고,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 히틀러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어떻게 돌아서서는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나쁘게 대할 수가 있어?”


에티커스변호사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이 독립 헌장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교육

자들은 뒤에 처진 아이들이 무서운 열등의식에 시달리고 있다고 심각하게 말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왜곡되게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다른 사람보다 더 기회가 많으며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 보다 돈을 더 잘 벌고, 또 어떤 부인은 케이크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만들며,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도록 창조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거지도 록펠러와 평등하고 바보도 아인슈타인과 동등하며 무식한 사람도 대학 총장과 동등한 하나의 제도가 있지요. 그 제도가 바로 사법제도입니다”



에티커스 아빠가 딸에게

“스카우트,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Most people are nice,

Scout, when you finally see them.)”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 한지 300년이 되어가지만 1935년 미국의 남부지방에서 흑인은 소유물이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열 살짜리 순진한 소녀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의 모순과 그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해 보려는 변호사 아빠 에티커스의 이야기가 1960년 이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다. 미국에서 한 동안 용감한 변호사 에티커스를 보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이 생겨 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흑인여성이 대통령후보로 나오지만 1986년 우리가 그린즈버러로 이사했을 때 Ku Klux Klan이 시내에서 당당하게 행진을 한 적도 있을 만큼 그곳은 아직 남부였다.

학교에는 동양학생이 거의 없어 내 아이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집에서 가까운 쇼핑센터 안에 지금은 없어진 “Atticus”라는 작은 책방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갔었다. 책방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친절한 할머니 두 분이 언제나 친절하게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때는 그 에티커스가 무슨 의미 인지도 모르고 다녔다.


지난 주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앵무새 죽이기 읽었다.” 했더니 “가끔 애티커스 책방(Atticus Book Store) 생각나요. 참 좋아했었는데”한다. 그리고 “엄마 그거 알아요? 그 책 속에 나오는 스카우트의 친구 딜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쓴 작가 얘요.”이 책을 쓴 하퍼 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쓴 트루만 카포티가 실제로 어릴 적 친구라고 말해준다. 이젠 내가 딸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니 “일이 너무 많아 바빠요”

“거 참 나쁜 애들이 너무 많아서 네 일이 많구나” 했더니

“엄마, 나쁜 애들은 없어요, 그냥 나쁜 짓을 한 애들 일 뿐이 얘요.”한다. 가난한 청소년 범죄자들을 위해 일하는 내 딸의 대답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 집 새 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