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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Oct 27. 2020

북극의 문

게이츠 오브 디 악틱(Gates of the Arctic) 국립공원

북극의 문(Gates of the Arctic)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

'이 길을 달리는 트럭 운전사는 미국에서 가장 힘든 직업(Toughest job in america)' 등등 수식어가 붙은 길 달튼 하이웨이(Dalton highway)다.


여기서 북극해에 면한 푸르드호 베이까지 414 마일(666킬로미터)이다.

민간인은 데드 호스까지만 갈 수 있고 북극해에 면한 푸르드호 베이 까지는 기름회사의 사유재산이라서 

그곳까지 가려면 허가받고 셔틀버스 타고 들어가야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다.

프로스펙트 비행장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베틀스로 간다.



4년 전 왔을 때 비가 와서 고생스럽게 유콘강까지 갔다가 북극권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섰다.

이 날은 날씨가 좋아 천만다행이다.

이 길에는 알래스카 남쪽이나 캐나다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산과 빙하가 안 보인다.

끝이 안 보이는 비 포장도로만 눈앞에 이어진다.



누구 차가 더 깨끗하지?


8시 53분 유콘강을 건넜다. 이 다리는 특이하게도 바닥이 나무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다리 건너 왼쪽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공중전화로 이 지점에 왔다는 걸 경비행기 회사에 알려야 한다.

베틀스에 있는 비행기 회사에서는 우리가 프로스펙트  공항에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를 보내 주기로 했다.

너무 일찍 전화하는 게 미안해 유콘강 비지터센터에 먼저 들어갔다. 안내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의 일정을 듣더니 헤어질 때 '행운을 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예약이 되어있는 항공사에 전화하니 담당자 주디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파일럿트가 다쳐서 이날 비행기가 뜰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럴 수가... 그럼 다음날은? 물으니 그 파일럿트가 언제 회복될지 몰라 대답해 줄 수 없단다. 좀 전에 이유 없이 불안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너의 회사를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너 말고 다른 항공사라도 알아보아 줄 수 없느냐'라고 사정했다.

자기도 우리 처지를 이해하는지라  여기저기 알아볼 테니 30분 후에 다시 전화해달라고 했다.

30분 후 전화했다.

주디는 다음날 오후에 뜨는 비행기를 찾았다고 했다.

베틀스에서 자고 다음 날 목적지 코벅벨리 국립공원과 게이트 오브 악틱 국립공원을 볼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프로스펙트 크릭 공항까지는 80마일을 더 가야 한다. 비 포장도로이니 2시간 예상. 11시 반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주디는 12시에서 1시 사이에 프로스펙트로 비행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루 뒤에라도 갈 수 있다는 말에 힘이 솟아 험한 달튼하이웨이가 정답게 느껴졌다.

이 길은 하루에 트럭이 여름에는 평균 160대 달리고 겨울에는 250대가 달린다.

맞은편에서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면 되도록 오른쪽으로 빨리 피해야 한다.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유리장을 깰 수도 있다. 실제로 이날 우리 차 앞 유리창에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구멍이 생겼다.

역시 이 길은 모험이다. 



핑거 마운튼에 올라가 가야 할 길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달튼하이웨이는 1974년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을 따라 만든 길이다. 그래서 대부분 파이프라인과 평행으로 달린다.

그래도 2012년에 왔을 때 보다 길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 조금씩 포장된 길이 늘어나 지금은 414마일 중 109마일이 포장도로다. 포장이 된 길이라도 팟홀이 많아 마음대로 속도를 내면 위험하다.



414마일 가도록 사람이 사는 마을은 콜드 풋, 와이스 맨 그리고 데드 호스 단지 세 개뿐이다.

기름을 넣을 수 있는 곳도 오직 세 군데.



북극권(Arctic Circle)에 도착했다. 북위 66도 33

일 년에 한 번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일 년에 한 번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경계선이다.

이 원안에 지구 표면의 4%가 들어간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러시아, 아이스 랜드의 일부가 들어있다.


이 사람들은 저걸 타고 데드 호스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알래스카를 다니다 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용감한 사람들을 만난다.


프로스펙트 크릭 공항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작은 공항이다. 한 달 평균 41대의 비행기가 뜬다고 했다.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추운 10곳 중 하나로  1971년 화씨 -79.8도(섭씨 -62.1도)까지 내려갔던 기록이 있다.

아무것도 없고 황량한데 오기로 한 비행기는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비행장을 왔다 갔다 거닐다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땅을 쳐다보았다 하며 기다렸다. 


1시 45분 비행기가 왔다. 와 준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차는 여기 세워 놓고 간다.


저 아래 보이는 강 때문에 북극의 문 국립공원(Gates of the Arctic national park)을 육로로 가지 못한다.

젊고 용감한 사람들 중에는 저 강을 걸어서 건너가는 이도 가끔 있다고 했다.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방문자를 위한 아무런 시설도 없다. 

대부분의 방문자는 앵커리지나 페어뱅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틀스로 와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날 국립공원을 보고 다시 베틀스에서 일박하고 그 다음날 돌아간다.

Gates Of the Arctic 국립공원 사무실이 여기 있다.

안에 들어가 영화도 보고 전시물들도 보았다.

베틀스 라지, 역사적인 건물이다.


활주로에서 걸어 다니지 말고, 차 타고 다니지 말고 , 스노모빌 타지 말고

바이크도 타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다.


그런데 활주로에서 다 한다.


바이크도 타고 개들도 뛰어논다.



베틀스는 Arctic Circle에서 35마일 북쪽에 있다.

인구 63명, 해발 643피트

가장 추웠던 날  영하 62도. 

눈이 가장 많이 쌓였던 날 71인치.

눈이 가장 많이 왔던 해 1983년 207인치.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이해가 잘 안 된다.

밤 열 시가 넘었는데 해가 지지 않는다.

맥주 한  병 씩 마시기로 했다. 장부에 적어 놓고 두 병 집었다. 값이 좀 세지만 

이 마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으니 그러려니 하고 맛있게 마셨다.

걸어서 마을을 돌아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중전화박스다.

저 안에 들어가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한 옛날 친구에게 전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해는 아직도 땅속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다음날 나를 태우고 갈 비행기.

나이는 꽤 들어 보이는데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귀엽다.

내일 잘 부탁한다. 


이 날 나는 오리온에서 잤다.


 다음날

8시에 아침을 준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 만난 조종사 케빈이 날씨가 좋아 비행기가 뜨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 집 주인 에릭은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들을 먼저 먹이고 그다음에 손님을 먹였다.

아침은 무조건 15달러.

계란과 베이컨이나 소시지 그리고 커피.


커피를 따라 마시려는데 이런 게 붙어있다.

한잔에 2불, 하루 종일 5불, 한 주내네 20불.


그런데 나중에 계산할 때 몇 잔 마셨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가게다.

투숙한 손님들은 밥을 주문해서 먹는다. 그런데 매 끼니 돈을 내지 않고 카운터에 있는 장부에 이름을 쓴다. 장부에 쓰는지 안 쓰는지 보는 사람도 없다.

체크아웃할 때 그걸 보고 계산한다.

아마도 옛날부터 그렇게 해 온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가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예약할 때도 미리 계산하지 말고 나중에 하자고 했다.

바로 앞에 서있어도 돈을 미리 내지 않으면 기름펌프를 열어주지 않던 주유소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긴 여기서 돈 안 내고 도망갈 방법도 없다.

그들이 태워주는 비행기를 타야 나 여길 벗어 날 수 있으니 말이다.



불만이 있으면 여길 누르라고? 누르면 내손이 내손이 아니게 될 것이다.

"불만 없습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이 테이블로 다가와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전날 국립공원 두 곳을 다녀와서 이 날 오전 페어뱅크스로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38개를 보았는데 이번 여행으로 알래스카에 있는 국립공원을 다 보고 죽기 전에 미국의 국립공원을 다 돌아보기로 했다는 81세 패기라는 할머니다. 같이 온 사람은 조카라고 한다. 혼자 다닐 수가 없어 매번 가족들을 불러 모아 같이 가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주로 손녀들과 다니는데 이번에는 조카와 함께했다. 국립공원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목소리는 흥분에 떨렸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나 만큼 국립공원 예찬론자다. 자기가 본 국립공원은 한 군데도 같은 곳이 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좋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이렇게 씩씩하고 긍정적인 분과 이야기를 하면 나까지 힘이 난다.

전날 같이 갔던 일행 중 한 사람이 국립공원 버킷리스트의  마지막 두 개를 채워 샴페인을 터트리고 파티를 했다고 한다 우리처럼 미국 본토에 있는 국립공원을 다 보고 가장 오기 힘든 알래스카의 공원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아침을 먹고 비행기가 출발하는 오후 1시까지 무얼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이가 블루베리를 따러 가라고 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아주 많이 있다고. 그런데 곰도 블루베리를 좋아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원하면 블루베리를 따서 담을 그릇과 곰 쫓는 스프레이도 빌려주겠단다.

잠시 생각하다 '그냥 곰더러 다 먹으라고 하지요' 했다.

 아니면 배를 타고 7마일 가서 올드 베틀을 구경해도 좋다고 했다.

배로 데려다주고 래프팅을 해서 돌아오는 방법도 있고, 배로 가서 그 배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강물이 잔잔해 래프팅 하기 좋다지만 그걸 하면 오후 1시까지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 배로 갔다 배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숙소 주인 에릭이 아침식사를 끝내고 트럭에 배를 묶어 강으로 나갔다.

Old Bettles에 도착했다

그가 방금 지나간 듯 선명한 곰 발자국을 보여준다. 꽤 큰 놈 인 것 같다.

1896년 여기도 골드러시가 불어와 작은 마을이 생겼다.

너무 추워 금 캐는 것이 어려웠다. 사람들은 사냥을 해서 모피도 팔고 생계를 꾸렸지만 1930년대에는 모두 이곳을 떠나 지금은 유령 마을이 되었다. 지금도 이 강물을 퍼 올려 잘 거르면 금이 나오는데 너무 양이 적어 수익성이 없다고 한다.




 우리를 태우고 비행할 파일럿트 케빈은 참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일기예보를 믿지 않고 자기가 하늘을 보고 바람을 몸으로 느껴야 비행기를 띄울지 말지 결정한다고 했다. 그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 국립공원은 남한 넓이의 삼분의 일 만큼 넓다.

그 안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과 강과 호수와 툰드라 만 있다.

 록키산맥의 가장 북쪽 부분인 부룩스 산맥이 이 공원 안에 있다.

스위스 전체만큼 큰 공원 안에 길이 없어 차를 타고 다닐 수도, 걸어서 돌아다닐 수도 없다.

이 공원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아야 한다.

짧은 여름 동안 잠시 눈과 얼음이 녹아 숲이 있고 풀도 자라지만 

저 땅속 깊은 곳은 얼어 있어 물이 스며들지 못해 저만큼의 푸르름을 유지한다.


불을 낸 사람도 불을 끌 사람도 없는데 불은 도처에 나고 있었다.

번개로 인해 자연 발생한 산불이라고 했다. 최근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번개가 없을 때도 산불이 나는 것으로 보아 땅속에 묻혀있는 석탄과 같은 물질에 불이 붙어 겨울에는 얼어붙은 표면을 뚫고 나오지 못하다 여름에 눈이 녹으면 밖으로 나온다는 설도 있다. 

얼마 전 캠핑하는 사람들을 내려놓고 며칠 뒤에 데리러 갔는데 산 불 때문에 착륙을 할 수가 없어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나도 해 보고 싶지만 많은 경험과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코스이다.



록키산맥의 가장 북쪽. 애리 켓치 산. 가까이 갈 수 없어 더 신비해 보인다.


이 공원 안에서 시작되는 강이 다섯 개. 강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



케빈이 비행기를 강가 자갈밭에 사뿐히 내렸다. 내가 여기 왔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강물에 손도 담가 보고 조약돌도 만져 보았다. 

게이츠 오브 더 악틱 국립공원에 한 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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